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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김정은 제거와 ‘키신저 구상’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후 70여 년 세계 질서는 미·소 냉전에서 미·소·중 3국 데탕트 시기를 거쳐 미·중 경쟁 체제로 재편됐다. 체스판의 파트너를 바꾼 거대한 변화의 설계자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다. 94세의 이 전략가는 요새도 멀쩡한 정신으로 트럼프·시진핑·푸틴을 만나 그들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미군 철수와 맞교환 … 중국도 손해 없어
‘북·미 협상’‘핵 동결 우선’은 비현실적

키신저는 "북한의 비핵화는 체제를 흔드는 문제이기에 경제적 압박만으로 도달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이 비핵화 이후 북한 정치에 대해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월스트리트저널 8월 14일자)”고 기고했다.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성공한다면 하나의 한국이나 두 개의 한국, 아니면 북한 영토 내에 군사 배치 문제 같은 정치적 전개에 지분(stake)이 생긴다”며 중국 최우선론을 폈다. 북한은 그의 사고체계에서 문제 자체일 뿐 문제 해결의 주체가 아니다.
 
키신저의 대북 해법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주체는 미국과 중국이다. 북한은 배제한다. 미·북 평화협상은 중국의 의심을 살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로 목표는 ‘한번에 완전한 핵 폐기’다. ‘현재 수준에서 핵 동결’ 같은 중간 단계는 없다. 핵 동결이란 중간을 설정하면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게 돼 한국·일본·베트남의 순차적 핵무장을 피할 수 없다. 셋째로 대가(代價)는 미군의 한국 철수. 비핵화 이후 짜일 동아시아 정치질서엔 중국의 입장이 반영돼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미군 철수가 있을 수 있다. 미군 철수는 키신저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키신저는 그 보름 전쯤 “미국과 중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 이후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 대부분을 철수시키기로 사전에 합의하면 좋을 것”이라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제안(뉴욕타임스 7월 29일자)했다고 한다. 키신저는 미·중(주체)이 단번에 핵 폐기(목표)를 하고 미군 철수(대가)를 단행하자는 것이다.
 
키신저 구상을 직설적인 언어로 바꾸면 ‘중국이 북한에서 김정은을 제거해 주면 미국은 한국에서 군사를 철수시킨다’가 된다. 핵폭탄이 장착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본토 공격 가능성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미 정부로서는 키신저 구상이 중국과 공유할 수 있는 최적의 목표일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미군이 사라진 한반도에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만족스럽게 행사할 수 있다면 북한 정권의 붕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키신저 구상이 은밀히 무르익어 간다고 보고 우리 정부가 주의깊게 살필 게 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뉴욕 채널 등을 통한 북·미 간 협상 움직임이 무슨 대단한 해법이라도 되는 양 관심을 쏟지만 미국의 블러핑, 즉 이중 플레이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또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협상의 경로에 대해 ‘핵 동결이 입구이고 핵 폐기가 출구’라는 그림을 제시한 바 있지만 핵 동결은 한국·일본 등 지역 국가의 두려움을 해소하지 못하며 핵 폐기는 김정은 체제가 존속하는 한 괜한 소리에 불과하다는 걸 온 세상이 안다. 현실 노선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급진전해 2만7000명의 주한 미군이 하루아침에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태가 문 대통령 재임 중 발생할 수 있다. 한반도 경영의 운전대를 잡은 집권세력과 이 정부가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제질서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키신저의 견해는 지나치게 강대국 중심이어서 종종 거북하고 불길하다. 그렇다 해도 체스판 전체를 보는 그의 냉엄하고 대국적인 현실 인식을 외면할 수 없다. 약자는 강자를 이기기 힘들어도 활용해야 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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