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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올림머리” … 노숙인이 풀어낸 ‘촛불의 기억’

연극 ‘노숙의 시’의 한 장면. 잘 짜인 현대 영미 희곡 ‘동물원 이야기’의 골격에 한국 사회 동시대성을얹어 촛불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떤 꿈을 향해 가야할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사진 연희단거리패]

연극 ‘노숙의 시’의 한 장면. 잘 짜인 현대 영미 희곡 ‘동물원 이야기’의 골격에 한국 사회 동시대성을얹어 촛불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떤 꿈을 향해 가야할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사진 연희단거리패]

역사적 사건이 예술 작품이 되려면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사실과 가치와 상상력을 결합해 새로운 의미와 화두를 던지는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겨울 촛불 광장의 이야기가 벌써 무대에 오르다니. 그것만으로도 연극 ‘노숙의 시’는 흥미롭다.
 

이윤택 각색·연출 연극 ‘노숙의 시’
명계남·오동식 두 배우 에너지 발군

각색·연출을 한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2017년 한국 사회 담론을 담아내는 틀로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부조리극 ‘동물원 이야기’(1959)를 빌려왔다. 뉴욕 센트럴파크 벤치에서 두 남자가 설전을 벌이며 현대인의 고뇌를 표현한 작품을 한국 현대사의 수난을 온몸으로 관통한 두 노숙자의 이야기로 재창작했다. 이미 검증받은 구성과 극적 장치를 활용해 지금 당장 우리 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하숙집 안주인과 검둥개·벤치 등 작품의 키워드는 원작 그대로지만, 이들이 상징하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이 예술감독은 “현대 영미 모더니즘 희곡은 대부분 가정비극을 다룬다. 역사적인 거대 서사를 갖고 있는 우리 눈에는 ‘기저귀 연극’으로 비친다. ‘동물원 이야기’의 등장인물에 역사성을 부여해 세상에 말을 걸었다”고 밝혔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노숙의 시’는 순전히 두 배우의 대사로 진행되는 언어 극이다. 자칫 지루할 법한 흐름을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끌고 가야 할 책임은 배우의 몫이다. 해직 기자 출신 60대 노숙자 ‘무명씨’는 명계남이, 40대 실직자 ‘김씨’는 오동식이 연기한다. 연기파 두 배우의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다. 객석 60석 남짓, 그야말로 소극장인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를 한 치 빈틈없는 연기력으로 채운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과 핑크 플로이드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등 강렬한 음악도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은유와 상징으로 일관하는 ‘동물원 이야기’에 비해 ‘노숙의 시’는 상당 부분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한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던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살다 2016년 겨울 귀국한 무명씨가 “여기 광장은 환하게 촛불을 밝히고(…) 사람들이 모두 광장으로 나와 스스로 역사가 되는 거야”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작품의 깊이는 이런 직설적인 대목에서보다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넘긴 ‘검둥개’와 ‘숲’ 부분에서 훨씬 두드러진다. 당연히 ‘권력의 개’를 상징했음직한 하숙집 안주인의 개 ‘검둥개’를 두고 “바로 내 그림자란 생각이 들었다”는 무명씨의 말은 일상 속에 갇혀사는 소시민의 비겁함에 대한 경종이다. “온종일 텔레비전 앞에” “싸구려 올림머리 단장” 식으로 노골적으로 현실을 암시한 대목이 전체적인 작품의 결을 흩뜨린다고 느껴질 만큼, 풍자 수준이 세련됐다. 공연은 9월 17일까지.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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