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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동의 없이 사후에 만든 복제 조각 … 위작일까?

여성을 담은 테라코타 작품 등으로 이름난 조각가 권진규.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이정훈]

여성을 담은 테라코타 작품 등으로 이름난 조각가 권진규. [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이정훈]

조각가의 사후 만들어진 작품은 진품일까. 이는 의외로 복잡한 문제다. 로댕의 ‘지옥의 문’은 그가 죽은 뒤 9년 만인 1926년 처음 청동 작품으로 주조됐다. 이뿐만 아니라 여러 조각품이 작가의 뜻에 따라 다시 만들어지곤 한다. 작가가 남긴 틀 등에 바탕해서다. 엄격한 관리로 제작된 작품은 진품에 준하는 대접을 받기도 한다.
 

‘구상 조각 거장’ 권진규 전시 계기
청동‘지옥의 문’은 로댕 사후에 주조
작가가 남긴 틀 등 바탕, 진품 대접
권진규는 죽기 전 틀 대부분 없애
기념사업회 “유족 동의 복제작 합법”

한국 구상 조각의 거장 권진규(1922~ 73)의 작품은 좀 더 복잡하다. ‘비운의 조각가’로도 불리는 그는 51세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작품 틀을 대부분 없애버렸다. 대신 그가 남긴 작품에서 본을 뜨는 방식으로 사후에도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런 ‘사후 복제작(Posthumous Casting)’의 존재와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권진규기념사업회는 23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권진규 자료집 발간 계획과 함께 ‘진작(Original)’과 사후 복제작을 구분, 사후 복제작의 거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권진규의 에센스’전 출품작들. 작품‘애자’를 만들었던 석고틀.[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PKM갤러리]

‘권진규의 에센스’전 출품작들. 작품‘애자’를 만들었던 석고틀.[사진 권진규기념사업회·PKM갤러리]

이 자리에서 박형국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교수는 “사후 복제는 작가가 뭘 원했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로댕과 달리 권진규는 죽기 전 틀과 제작기법을 다 없앴고 사후 복제에 비판적인 글을 여러 곳에 썼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작품에서 본을 떠 만드는 경우 “아무리 잘 만들어도 수평수축이 이뤄져 원래 작품보다 핼쓱해진다”며 “원래 있던 권진규의 지문 등도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은 2009년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숱한 졸업생 가운데 권진규를 선정,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등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그에 대한 관심과 평가를 새롭게 한 곳이다. 박 교수는 그 준비 과정에서 국내 이름난 미술관들에 사후 복제작이 여럿 소장된 것을 확인한 사실도 공개했다.
 
테라코타 작품 ‘스카프를 맨 여인’. [사진 권진규기념 사업회·PKM갤러리]

테라코타 작품 ‘스카프를 맨 여인’. [사진 권진규기념 사업회·PKM갤러리]

 
간담회에서는 여러 의심이 들 만한 경우를 비롯 다양한 사례도 공개됐다. 허 이사는 공립미술관 전시에 테라코타 작품인 ‘지원의 얼굴’이 유화로 출품됐다. 권진규 그림이 아니란 지적에 미술관이 작품을 내렸던 일 등을 처음 밝혔다. 박 교수는 복제작을 만든 전문가가 남긴 서명을 지운 흔적이 보였던 경우, 작업실에서 발견된 제자들 작품이 과거 전시에 권진규 작품으로 소개돼 이를 근거로 감정서가 발행된 경우, 복제작을 다시 복제한 경우, 테라코타 작품을 다시 테라코타로 복제한 경우 등을 소개했다.
 
기념사업회는 유족의 동의 없이 만든 사후 복제작은 ‘불법적 작품’이자 ‘위작’으로 본다. 하지만 실제 판단은 미묘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는 간담회 이후 “국제협약 가입 등 저작권 관련 법규가 지금보다 미비하던 시절에 저작권자 동의 없이 만든 것을 모두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내놨다.
 
사후 복제작에 대해 이처럼 상세한 내용을 유족 등이 직접 밝힌 것은 퍽 이례적이다. 지금껏 권진규 작품에 대해 공개적인 위작 논란이 벌어진 적 없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일단 일이 터지면 방법이 없다”며 “미리 작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가 무사시노미술대학, 국립현대미술관과 협력해 펴낼 권진규 자료집은 그래서 더 주목된다. 총 5권(1권 조각, 2권 유화·드로잉, 3권 자료, 4권 연구사, 5권 연구)으로 탄생 100주년인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발간할 계획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자료집에는 진작과 사후 복제작을 아울러 각 작품에 대한 관련 정보가 수록될 예정이다. ‘카탈로그 레조네’ ‘전작도록’ 등으로도 불리는 자료집은 국내에서 굵직한 위작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그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실제 나온 것은 2000년 ‘장욱진 카탈로그 레조네’, 1994년 ‘운보 김기창 전작도록’ 등 손에 꼽는다.
 
한편 PKM갤러리의 ‘권진규의 에센스’(10월 14일까지)전에서는 다양한 조각, 드로잉과 함께 작품 ‘애자’를 만들었던 석고틀을 볼 수 있다. 권진규의 작품 틀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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