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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피카소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이?… 포스텍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가보니

경북 포항시 남구 지곡동 포스텍(POSTECHㆍ포항공대)에 있는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지난 25일 견학온 학생 10명이 과학관 전시실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한 학생이 빔프로젝터 버튼을 누르자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1901년 그림 ‘푸른 방(The Blue Room)’이 흰 벽에 비쳤다. 여인이 화실에서 목욕하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허공에 손을 대 그림을 문지르니 일부가 지워지면서 다른 그림이 나왔다. 수염이 많은 한 남성의 초상화였다.
 

지난 5월 개관한 경북 포항 포스텍의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학생들, 미술·역사·과학 등 가속기 활용 분야와 원리 배워
방사광가속기, 빛 가공해 사물 들여다 보는 거대한 현미경
3, 4세대 방사광가속기 연구소엔 매년 과학자 2000여명 몰려

미술학계에서는 당시 캔버스를 살 돈이 없던 10대 피카소가 남성의 초상화를 그린 뒤 그 위에 덧칠해 '푸른 방'을 완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술학계가 추정하는 가장 유력한 초상화 주인은 파리의 그림 상인인 앙브루아즈 볼라르(1866~1939). 그는 세잔·피카소·마티스 등의 작품을 주로 다뤘다. 현재 화가들이 그린 수많은 그의 초상화가 남아있다. 
경북 포항 가속기연구소 과학관. 기자가 피카소의 '푸른 방' 그림을 마주하고 손을 허공에 댄 뒤 문지르니 한 남성의 초상화가 나왔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포항 가속기연구소 과학관. 기자가 피카소의 '푸른 방' 그림을 마주하고 손을 허공에 댄 뒤 문지르니 한 남성의 초상화가 나왔다. 프리랜서 공정식

차영은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홍보담당은 "피카소뿐만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처럼 유명한 화가들이 돈을 아끼기 위해 캔버스를 여러 번 사용하곤 했다"고 말했다. 실제 2008년 고흐의 또 다른 그림들을 찾아낸 네덜란드 연구진에 따르면 고흐 초기 작품의 3분의 1이 캔버스를 재사용한 그림이었다. 어떻게 원본 손상 없이 그림을 복원할 수 있었을까.
 
차 홍보담당은 “비밀은 빛에 있다”며 과학관 내부에 전시된 '방사광(放射光)가속기' 부속품 일부를 가리켰다. 방사광가속기는 방사광으로 물질을 분석하는 기계다. 빛을 가공하기에 포스텍에서는 '빛 공장'으로도 부른다.  
경북 포항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1층 로비에 가속기연구소 일대의 모형이 알아보기 쉽게 제작돼 있다. 둥근 모양이 3세대 가속기, 길게 뻗은 모양이 길이 1.1㎞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포항 방사광가속기 과학관 1층 로비에 가속기연구소 일대의 모형이 알아보기 쉽게 제작돼 있다. 둥근 모양이 3세대 가속기, 길게 뻗은 모양이 길이 1.1㎞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다. 프리랜서 공정식

단백질 분자 구조 같은 미시세계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매우 짧은 파장의 빛인 방사광(0.1㎚ 이하)을 강하게 가공해 쪼이면 내부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사물의 경우 물리적 손상이 없다. 네덜란드 연구진이 방사광을 이용해 그림 속의 그림을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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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포스텍이 유일하게 캠퍼스 내에 3,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가지고 있다. 포스텍은 지난 1994년 세계 다섯 번째로 3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한 뒤, 지난해 말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지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고정된 물체를 관찰하는 거대한 현미경이었다면,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하는 사진기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의 수십억분의 1초보다 빠른 광원으로 순식간에 일어나는 변화과정을 모두 담을 수 있다. 포스텍과 경상북도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지으면서 연구부지 내에 과학관도 함께 만들었다. 미래에 방사광가속기를 연구할 학생들을 위해서다. 
 
과학관은 방사광가속기의 원리와 활용 분야를 설명해 놓은 곳으로 특히 진로를 고민하는 고등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진숙현 방사광가속기연구소 홍보담당은 "학교·학부모의 과학관 투어 예약 문의가 쏟아진다"며 "학생들이 방사광가속기의 무궁무진한 활용분야에 대해 알고 나면 구체적 진로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 포항 포스텍의 방사광가속기를 둘러보는 학생들. 백경서 기자

경북 포항 포스텍의 방사광가속기를 둘러보는 학생들. 백경서 기자

이날 방사광가속기 과학관을 찾은 청도고등학생 110명은 1시간 반 동안 가이드 교사와 함께 과학관을 둘러봤다. 학생들은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해 실험실 내부에서 직접 방사광가속기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가 됐다. 또 축구장의 100배 규모(4세대 가속기 12만620㎡·3세대 가속기 12만6800㎡)의 방사광가속기 일부를 실제로 보는 시설물 투어도 했다.
 
직접 투어를 예약했다는 심상효 청도고 교사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방사광가속기 과학관이 있는 걸 알고 오게 됐다"며 "가속기의 일부를 볼 수 있고, 활용 사례가 많이 전시돼 있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방사광가속기 과학관은 그림뿐만이 아닌 과학ㆍ역사 등 활용 사례를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다. 94년 3세대 방사광가속기 건설 이후 매년 2000명이 넘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연구한 결과물이다.
모기의 흡혈과정을 들여다 보기 위해 방사광가속기로 모기를 찍은 사진. 백경서 기자

모기의 흡혈과정을 들여다 보기 위해 방사광가속기로 모기를 찍은 사진. 백경서 기자

과학관에는 지난 2002년 방사광가속기 연구소가 서양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 소금유약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세계최초로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낸 과정이 전시돼 있다. 도자기를 구울 때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기 위해 바르는 유약 중에서도 소금유약은 푸른빛이 나는 귀한 재료다. 원래 15세기 서양에서부터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포스텍이 3세대 방사광가속기로 전남 영양군 토기 가마터에서 발견된 유물을 관찰한 결과, 국내에서 10세기 이전부터 소금유약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업들의 연구 사례도 볼 수 있다.  LG화학은 스마트폰·노트북 등에 활용되는 초소형 배터리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오류를 잡기 위해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했다. 또 아이들 기저귀에서 오물을 흡수하는 흡수섬유 등 실생활에 활용되는 다양한 화학소재 개발에도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쓰였다. 신약 분야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 등의 개발에 3세대 방사광가속기가 활용됐다.    
경북 포항 가속기연구소 과학관에 전시된 기저기용 흡수제.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포항 가속기연구소 과학관에 전시된 기저기용 흡수제. 프리랜서 공정식

이날 과학관을 찾은 박모(16)양은 "막연히 공대를 가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방사광가속기의 연구분야를 보면서 구체적으로 뭘 하고 싶은지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나중에 과학자가 돼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연구를 꼭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포스텍이 1500억원을 들여 설치한 '방사광가속기'가 밝혀낸 DNA 결합구조가 실린 네이처지. [중앙포토]

포스텍이 1500억원을 들여 설치한 '방사광가속기'가 밝혀낸 DNA 결합구조가 실린 네이처지. [중앙포토]

진숙현 홍보담당자는 "지난 6월 정식 가동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 과학관도 하나의 과학박물관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3, 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연구소, 과학관은 단순 교육·연구뿐만 아니라 미래의 과학자들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25일 문을 연 과학관은 포스텍 캠퍼스 내의 방사광가속기연구소 부지에 있다. 입구에서 신분 확인을 거친 다음에야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견학을 위해서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매일 오전·오후 하루 두 번 투어가 진행되며 가이드 교사가 동행해 직접 1시간 반가량 설명을 한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포항방사광가속기 3,4세대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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