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한국미 꿰뚫은 미술黨 당주 혜곡 최순우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성북동 옛집 사랑방의 서안 앞에 앉아 생각에 잠긴 생전의 혜곡 최순우. 단순하고 담백한 목가구를 사랑했던 선생은 집 치장도 꾸미기보다는 간결하고 검소하게 다듬는 쪽이었다. [사진 혜곡 최순우기념관]

성북동 옛집 사랑방의 서안 앞에 앉아 생각에 잠긴 생전의 혜곡 최순우. 단순하고 담백한 목가구를 사랑했던 선생은 집 치장도 꾸미기보다는 간결하고 검소하게 다듬는 쪽이었다. [사진 혜곡 최순우기념관]

한국미(韓國美)를 알아보는 우리 시대 최고의 안목으로 혜곡(兮谷) 최순우(19 16~84)를 꼽는 이들이 많다. 그 특질을 우리말로 풀어 내는 일에 평생을 바친 이 또한 혜곡을 으뜸 친다. 선생이 남긴 글모음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는 그 백미라 할 수 있는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 중 한 대목을 들며 “거의 환상적”이란 표현을 썼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 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혜곡의 그 빼어난 눈썰미와 인품에 반한 이들이 자진해 ‘미술당(美術黨)’을 만든 뒤 그를 당주로 모실 정도였으니 자연스레 유물을 감정해 달라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함께 일한 정양모 한국미술발전연구소장은 선생이 하시는 말씀만 들어도 작품의 진위(眞僞) 여부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잘 모르겠다” “집에 가서 잘 보존해라” 하면 가짜였다는 것이다.
 
혜곡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최근 출간된 『그가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면서』(진인진)에는 이렇듯 고인과의 인연을 그리움에 사무쳐 털어놓는 이들 33인의 육성이 담겼다. 선생이 살던 서울 성북동 옛집이 2002년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지켜낸 일을 계기로 시작된 사업이 ‘역사인물가옥박물관’이다. 김홍남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은 이 한옥이 “그의 안에 오랫동안 묵힌 생각들을 글로 풀어 내고 생활 속에서 고즈넉이, 아주 단아하게 실천한 장소”라고 썼다.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본 이 집의 가치는 한옥이 어떻게 명품이 되는가를 설명한다.  
 
“규모도 크지 않고 그리 풍성하지 않지만 사람 사는 생활의 기쁨이 담긴, 꼭 있어야 할 것이 있는 그 공간 처리는 미술사가 최순우의 산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