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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커튼콜

커튼콜 
-신철규(1980~) 
  
파라솔도 없이 의자가 햇볕을 받고 있다
누군가 읽다 만 책이 그 위에 뒤집혀진 채 놓여 있다
  
파도는 금세 의자를 덮칠 것이다
  
무지개색 공을 주고받던 연인들
재잘거리며 파도와 장난치던 아이들
모래무덤 속에 들어가 누워 있던 사람들
  
발자국만 무성하게 남아 있다
발이 녹아버릴 만큼 뜨거운 모래다
  
누군가 사람들을 지워버렸다
  
파도가 밀려갈 때마다 색색의 자갈돌이 선명하게 빛난다
틀니 하나가 입을 벌린 채 모래 속에 박혀 있다
(…)
의자는 쉬지 않고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을 기다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칼이 물려 있다  
  
석양의 발꿈치가 칼에 닿자 피가 번진다
  
의자가 물속으로 서서히 잠긴다.  
제목을 알 수 없는 책이 뗏목처럼 둥둥 떠 있다
(…)  
 
 
여름 바다의 성수기가 끝나고 있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의자만 해변에 남아 있다. 커튼콜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도만 돌아와 의자와 책을 삼켜버린다. 결국 커튼콜은 없었다. 무심한 태양만 지고 뜨고 한다. 
 
<김승희·시인·서강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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