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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얼음 얇아진 북극 항로 … 쇄빙선 없이 유럽~한국 첫 항해

쇄빙선 도움 없이 북극 항로를 처음으로 통과한 수송선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 [EPA=연합뉴스]

쇄빙선 도움 없이 북극 항로를 처음으로 통과한 수송선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 [EPA=연합뉴스]

역사상 처음으로 쇄빙선의 도움 없이 대형 수송선이 북극 근처 항로를 통과했다.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전통 항로에 비해 시간을 대폭 단축시키는 북극 항로 개발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지구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얇아지면서 가능해진 일이어서 환경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영국 BBC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러시아 선적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인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가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를 출발해 북극 해상을 지나 충남 보령항에 19일 만에 도착했다. 유럽에서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인도양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남방 항로’에 비해 운항시간이 약 30% 단축됐다. 이 선박을 소유한 운송회사 소브콤플로트에 따르면 북극권 통과 소요시간에서도 역대 최단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31일 러시아 북쪽 북극권을 지나는 ‘북동 항로’의 서쪽 기점인 노바야제믈랴제도 젤라니야곶을 출발해 아시아 동쪽 끝인 데즈뇨프곶에 지난 6일 도착했다. 6일 반나절이 걸린 셈이다.
 
이 배는 선체에 쇄빙 기능이 더해져 약 1.2m의 얼음을 뚫고 지나가는 세계 최초의 쇄빙 가스 수송선이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지난 6월 러시아에 인도했다. 이번 항해에서는 북극 얼음을 헤치면서도 평균 14노트(시속 25.9㎞) 속도로 이동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외신들에 따르면 마르주리호는 러시아가 서시베리아 야말반도에 매장된 천연가스를 유럽과 아시아로 운송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수송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야말반도 사베타항에서 열린 취항식에서 “북극을 여는 거대한 이벤트”라고 말할 정도로 주목을 받았던 배다. 러시아는 올 연말부터 야말의 천연가스를 이 선박에 실어 아시아로 수출할 계획이다. 향후 같은 종류의 선박 14척을 추가로 건조한다. 소브콤플로트의 빌 스피어스 대변인은 “과거에는 북극 항로가 여름에서 가을까지 4개월 정도만 이용됐고, 그나마도 쇄빙선의 호위가 필요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사베타항에서 북극권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서부 항로는 1년 내내, 아시아쪽으로 가는 동부 항로는 7월부터 12월까지 쇄빙선의 도움 없이 항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북극 항로의 이용 기간이 늘어난 것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해양학자인 사이먼 복설 사우샘프턴대 교수는 가디언에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도 북극의 얼음이 줄어드는 것은 당분간 막을 수 없다. 북극 항로는 2020년이면 더 활발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의 얼음은 지난 30년간 꾸준히 감소해 왔다. 미 국립설빙데이터센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북극의 얼음 규모는 역대 최저치를 매년 경신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해운업계도 북극 항로에 주목하고 있다. 부산항을 떠나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남방항로로는 24일이 걸리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14일 만에 운송이 가능하다. 운항 거리가 2만1000㎞에서 1만2700㎞로 짧아져 연료비도 크게 절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극 항로는 여러 요인으로 애용되지 못했다. 북극 통과라는 리스크 때문에 화물 발주처가 내켜하지 않는 데다 보험료도 비쌌다. 특히 러시아 정부가 쇄빙선 이용료를 포함해 통행료를 비싸게 물렸다. 일부 국내 물류회사가 북극 항로 이용에 도전했지만 모두 단발성 운항에 그쳤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북극 항로 이용이 활발해질 경우 이런 문제들이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문재인 정부는 한·러 경제협력의 일환으로 북극 항로 개척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북극 항로 개발을 포함한 양국 경협을 논의했다. 다음달 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동방경제포럼에선 경협 내용이 구체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북극 항로의 활성화가 북극 환경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다의 위기를 감시하는 기구의 존 매그스는 BBC에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얇아져 북극의 상업 항로가 열렸는데, 많은 선박이 항해하면 공해 물질 배출이 늘어나는 등 예민한 북극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그 대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30% 정도 운항 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큰 이득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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