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화학 농법 독한 악순환 끊어야, 사람·땅·가축 상생 길 열린다

조영상 ‘자닮’ 대표가 보는 살충제 계란 파동 
살충제 계란 사태가 나라 전체를 휩쓸었다. 안전하다던 친환경 제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도 칼바람을 피한 곳이 있다. 바로 유기축산 농가다. 유기축산물 마크를 받은 전국 15곳의 농장에서는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지 않았다. 유기축산물 인증을 받으려면 항생제나 성장호르몬을 사용하면 안 되고, 농약이나 화학비료 없이 재배한 사료를 먹여야 한다. 닭 한 마리당 사육 공간도 일반 사육장(0.05㎡)보다 훨씬 넓은 0.22㎡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하 자닮)’은 1991년 시작한 친환경 유기농업인 모임이다. 친환경 농약 제조, 초저비용 유기농법 개발 등에 관한 각종 연구를 진행한다.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지 않고, 농약 제조법과 유기농법을 전부 공개하는 게 특징이다. 조영상 대표는 국내 친환경 농업 1세대인 조한규 전 자연농업협회장의 아들로 대를 이어 자닮을 이끌고 있다. 23일 대전 유성구 자닮 연구소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최근 계란 파동과 관련해 그는 “정부의 총체적 관리 실패가 드러났다”며 “(친환경으로의) 확실한 패러다임 전환을 각오하지 않으면 문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영상 ‘자연을 닮은 사람들’대표가 23일 대전 대덕의 천연농약 연구소에서 천연농약 샘플을 담은 병을 들어보이고 있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1991년 시작한 친환경 유기농업인 모임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조영상 ‘자연을 닮은 사람들’대표가 23일 대전 대덕의 천연농약 연구소에서 천연농약 샘플을 담은 병을 들어보이고 있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1991년 시작한 친환경 유기농업인 모임이다. [프리랜서 김성태]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현장에선 오래전부터 문제를 제기했는데 유럽에서 사건이 확산하니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평균 기온이 오르면서 이나 진드기 등의 번식이 더욱 활발해졌다. 농약을 쓸 수밖에 없는데 내성이 생기니 상황이 갈수록 나빠진다. 농가 탓만 할 수도 없다. 닭이 진드기와 이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생산량이 떨어지는데 보고만 있을 순 없는 것 아닌가? 잘못은 처벌해야겠지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검사가 허술하다는 지적도 나왔는데.
“일반 농장은 27종만 검사한다. 27종 이외의 성분이 있어도 검사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을 땐 320종의 농약 성분을 검사한다. 이것도 원래는 240종이었다. 일부 농약 제조업체들이 검사 항목에 없는 성분을 활용해 제품을 만들다가 적발됐고, 이후 320종으로 늘렸다. 그러자 농장에서 많이 쓰던 제품의 판매가 중단됐다. 그래 봐야 잠깐이다. 또 다른 성분이나, 기존 성분을 기준치 미만으로 조정해서 ‘뉴XX’ ‘XX2’ 이런 식으로 새 제품을 내놓는다. 규제가 시장을 뒤따라가는 셈이다.”
 
해결 방법은 없나.
“공장식 축산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랬더니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방목해 키우는 동물복지 농장을 30%까지 늘리겠다고 한다. 방향은 맞다. 그런데 30%는 무리다. 케이지에선 분변을 모아 긁어내지만 동물복지 농장은 분변을 사료화하는 순환 방식이다. 분변이 너무 많으면 안 되기 때문에 특정 공간에 키울 수 있는 닭의 숫자가 한정돼 있다. 생산량(공장식 축산의 10분의 1) 또한 문제다. 급하게 바꾸면 수급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화학 살충제 대신 천연 살충제를 쓰도록 하는 게 그나마 유용한 방법이다.”
 
천연 살충제는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화학 살충제는 효과가 있어서 이 사단이 났나? 2014년에 한 양계농가의 요청으로 자체 개발한 ‘자닮유황’을 닭 개체에 뿌려봤더니 95% 정도의 억제 효과가 있었고, 내성도 없었다. 자닮유황은 유황에 황토와 천일염, 수산화나트륨(가성소다) 등을 넣어 만든다. 재료에다 물만 섞으면 되고, 가열 과정이 없기 때문에 제조법이 매우 간단하다. 재료비 5만원 정도면 100L를 만들 수 있어 가격도 기존 농약의 10분의 1 수준이다. 아직 케이지 형태의 사육장에 뿌려본 적은 없지만 필요하다면 공개 실험에 나설 의향도 있다.”
 
왜 지금 유기농업인가.
“유기농업은 좁은 의미에서 화학 제품이나 항생제 대신 무기물 등 자연재료를 활용하는 걸 말하지만 진짜 의미는 토양과 생태계, 사람을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은 축산 항생제와 농산물 농약, 화학비료 사용량이 최상위에 속한다. 예를 들어 돼지에 쓴 항생제는 고구마나 감자 등 근채류를 통해 결국 사람에게 전달된다. 직접 미치는 영향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뜻이다.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수십 년 전 사용이 금지된 DDT가 아직도 검출되지 않나. 농업을 대하는 근본 틀을 하루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안전은 담보할 수 없다.”
 
한국은 유기농업 비중이 매우 낮다.
“관행적으로 농약과 비료를 써왔던 사람을 유기농업으로 전환시키려면 그만한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상 없다. 친환경 인증도 받아봐야 큰 실익이 없다. 오히려 잦은 검사와 감독 탓에 불만만 쌓인다. 미국은 친환경 인증 시스템이 매우 간단하다. 최종 농산물 검사만 통과하면 되고, 생산 단계에서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서 농가를 괴롭히지 않는다. 장관의 말대로 정부가 진짜 유기농업의 확산을 원한다면 나와선 안 되는 물질을 제대로 찾아내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 유기농업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일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하면 된다. 공무원들이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면 앞으로도 변화를 기대하긴 어렵다.”
 
자닮의 유기농법을 활용하는 곳이 있나?
“전국 각지에 6만 명의 회원이 있다. 유기농업에서 가장 힘든 건 병충해 방지다. 자닮은 연구 결과와 노하우를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기 때문에 유기농업에 관심이 있는 많은 농민이 이용하고 있다. 뜻을 같이 하는 분도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영농법인 ‘봉하마을’의 김정호 대표(전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가 있다. 1.32㎢(약 40만 평) 규모의 땅에서 유기농업 방식으로 벼와 고추·배추 등을 기른다. 10년 만에 지역을 굴지의 친환경 농업 단지로 키워냈다.”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데 자닮은 어떻게 운영하나?
“1629명의 후원자가 있다. 자닮이 공개한 농약 제조법 등으로 효과를 본 농민 등이 자발적으로 후원하면서 숫자도 많이 늘었다. 나를 제외한 14명 직원의 월급은 이 후원금 계좌에서 정기적으로 지급한다. 책 판매 수입이 있고, 강연도 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저비용 유기농법을 담은 책을 해외에서도 출간했는데.
“유기농업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큰 분야다. 영어·일어·중국어판이 출간돼 있다. 영어판은 미국 아마존 판매량 기준으로 유기농업 분야 7위에 올랐다. 최근엔 해외 후원자도 생겼다. 이탈리아와 말레이시아에서 각각 1명인데 책을 보고 자발적으로 후원을 약속한 거라 반가웠다. 10년 안에 해외 후원자를 10만 명으로 늘려 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S BOX] 값만 비싸고 믿음 잃어 유기농산물 열풍 시들
국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한동안 ‘웰빙’ 열풍이 불면서 전국 친환경농식품 판매장은 2010년에 4122개에서 2015년 5366개로 증가했다. 매출액도 2010년 7544억원에서 2015년 1조352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최근엔 정체가 뚜렷하다. 부실 인증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 반복됐고, 소비 확대를 견인할 정책적 지원도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유기농산물 인증 농가 수는 연평균 37.9%, 인증 면적은 45.0% 증가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연평균 각각 11.5%, 10.7% 감소했다. 전체 경지면적에서 유기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1.47%로 정점을 찍었다가 다시 축소돼 2015년 기준 1.08%에 머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유기농산물 구입을 꺼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싼 가격(74%)이었다. 인증제도의 이해와 신뢰성 저하(14%), 적당한 구입처를 찾지 못했다(5%)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2006년 이후 주요 품목의 가격을 살펴보면 유기농산물의 가격이 일반농산물보다 평균적으로 약 1.7배 비쌌다. 조영상 대표는 “품질이 좋아도 가격이 비싸면 시장을 키우기 어렵다”며 “유기농법의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도록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