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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망원경으로 감상해야 하는 신석기 때 암각화, "후손들 위해 현실적 보존대책 찾아야"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최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그림이 새겨져 있다. 최은경 기자

저는 누구일까요. 4년 전 울산 명촌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이래규 군은 저를 ‘조상들의 숙제’라고 부르며 저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육지 동물, 바다 동물 하나하나 채워가고 우리 조상들도 그려지네
우리에게 신비함도 주지만 의문도 주고 가네
아직 풀리지 않은 불가사의라도
우리에게 많은 사실을 가르쳐주네’
 
네, 저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번지에 있는 '바위 그림'입니다. 바위에 새겨졌다고 해 사람들은 저를 암각화(岩刻畵)라고 부릅니다. 제 발밑으로 흐르는 대곡천을 따라가다 보면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한 바위산 반구대(盤龜臺)가 나오는데 이 지명을 따 제 이름이 ‘반구대 암각화’가 됐습니다. 
가까이서 본 반구대 암각화. (확대해서 보세요) [사진 이선종]

가까이서 본 반구대 암각화. (확대해서 보세요) [사진 이선종]

 
제가 태어난 것은 무려 6000~7000년 전인 신석기시대 후기입니다. 이 시대 고래를 잡고 사냥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이 오랜 기간 날카로운 도구로 선을 새기고 바위를 쪼거나 긁어 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소개된 것은 한참 뒤인 1971년 12월 25일입니다.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팀이 1970년 불교 유적을 탐사하러 왔다가 바위에 추상적인 문양과 신라 시대 그림과 글자가 새겨진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을 발견했죠. 그 때 ‘바위에 호랑이 그림이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라 1년 뒤 저를 발굴하게 됐습니다. 제가 세상에 나온 건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어요. 문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암각화인 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유적으로 북태평양의 선사시대 해양문화를 보여주는 세계적 수준의 암각화”라고 저를 극찬했습니다. 
멧돼지 새끼. [사진 반구대포럼]

멧돼지 새끼. [사진 반구대포럼]

도끼창을 맞은 고래. [사진 반구대포럼]

도끼창을 맞은 고래. [사진 반구대포럼]

포획한 고래. [사진 반구대포럼]

포획한 고래. [사진 반구대포럼]

바위에 새겨진 호랑이와 표범. [사진 반구대포럼]

바위에 새겨진 호랑이와 표범. [사진 반구대포럼]

문 교수가 저를 칭찬한 이유를 알아볼까요. 바위산 절벽에서 가로 10m, 세로 4m 크기의 칠판처럼 평평한 곳에 제가 있습니다. 저에게서 고래·거북 같은 바다 동물과 사슴·멧돼지·호랑이 같은 육지 동물을 볼 수 있죠. 뿐만아니라 사람·배·작살·그물과 고래 잡는 모습 등 300여 점의 그림도 볼 수 있어요. 
지구촌 각지에 많은 암각화가 있지만 저처럼 동물 종을 구분할 만큼 상세하게 표현된 곳은 드물다고 합니다. 
특히 고래 그림이 58점으로 가장 많습니다. 선사시대에 이 지역 바위산 중턱까지 바닷물이 흘러들어왔어요. 많은 고래가 이곳에서 새끼를 낳았습니다. 선사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저를 그린 것이지요. 
 
처음 저를 보면 ‘저게 뭔가’ 싶을 겁니다. 멀리서 보면 뭐가 뭔지 그림을 알아보기 어렵거든요. 
하지만 이형진 문화관광해설사는 “보면 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깨닫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고 말합니다. 가령 고래를 잡으려면 10~20명이 협동해야 합니다. 우리 조상이 협동심을 바탕으로 공동체사회를 이루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또 고래잡이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지능이 있었다는 사실도요. 고래잡이 배를 건조할 기술도 있었겠군요.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 망원경으로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 망원경으로 바위에 새겨진 그림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이형진 해설사는 바다와 육지의 여러 동물과 새끼 밴 동물, 교미 중인 동물, 남성의 성기 같은 그림을 보더니 “당시 선사인들이 먹는 것과 종족번식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설명합니다. 
일반인들은 80m정도 떨어진 거리에 세워진 전만대에서 망원경으로만 저를 볼 수 있어요. 반구대 암각화 전망대는 하루 100~400명이 찾는 울산의 명소입니다. 부산·경기·강원 등 전국 각지는 물론 외국에서도 저를 보러 관광객이 온답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오후 3시 30분~4시에 저를 가장 잘 볼 수 있어요. 
 
1995년 국보 285호로 지정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천전리 각석, 주변 공룡 발자국까지 합쳐서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정식 등재 신청은 어렵다고 해요. 보존·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사진 울산시청]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사진 울산시청]

저는 수십년 전부터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대곡천에 있는 사연댐에 물이 가득 차면 60m 높이인데 저는 해발 53m에 있기 때문에 저수량에 따라 1년 중 길게는 8개월 정도 물에 잠겨 있었어요. 
올해는 가뭄이 들어 사정이 좀 달랐지만 지난해의 경우 태풍 ‘차바’ 때문에 한 달 정도 물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면 풍화작용이 빠르게 진행돼 얼굴 표면이 갈라지고 피부가 떨어지거나 색이 바뀌면서 제 모습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몇몇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가 이미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하네요. 
 
저를 보존하기 위해 울산시와 문화재청 등 많은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17년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보존 대책은 크게 댐 수위를 낮춰 물에 안 잠기게 하거나 물이 못 들어오는 장치를 하는 방법으로 나뉩니다. 
구체적으로 임시 물막이 건설, 사연댐 수문 설치, 소규모 댐 신설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됐지만 모두 무산됐습니다. 
올해 울산시가 제 앞에 길이 357m, 높이 15m의 생태제방을 건설해 물 유입을 막겠다는 새로운 안을 내놨어요. 하지만 지난 7월 20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저와 주변 환경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이를 부결하면서 울산시도 손을 놓은 상태입니다. 

지난 6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주변 환경과 훼손 정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울산시청]

지난 6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들이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 주변 환경과 훼손 정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울산시청]

제 주변 물 높이를 조절하는 것은 울산시민의 생활용수 공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더 어렵다고 하네요. 울산시민들이 1년에 필요한 식수가 1억3000만t 정도인데 제 키보다 낮은 52m로 댐 수위를 유지하면 유효저수량이 34%에 불과해 댐 기능을 못한다고 합니다. 
 
저를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문화재청은 ‘경북·대구권 및 울산권 맑은물 사업’을 추진해 울산의 물 문제를 해결하고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울산시는 현실적으로 다른 지자체와 함께 물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고 수위를 낮췄을 때 폭우가 내리면 한꺼번에 많은 물이 내려와 저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울산 암각화박물관.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울산 암각화박물관.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제가 바라는 것은 더 이상 물에 잠기지 않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땅의 많은 후손과 만나는 것입니다. 
문명대 교수는 “인위적인 장치를 배제하고 물에 잠길 시기를 예상해 그때만 수위를 조절하는 등 구체적인 댐 수위 조절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 주변에는 집청정·반구서원·공룡발자국·암각화박물관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반구대포럼을 설립한 이달희 울산대 교수는 “하루 빨리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을 세워 유적들과 대곡천 경관을 대곡천 문화유산 지대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의 암각화라는 저, 더 많은 후손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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