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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역사상 최대 위기 맞은 삼성...임원들 "어떡하나, ,어떡하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일가에 수백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25일 서울중앙지법원에서 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일가에 수백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25일 서울중앙지법원에서 구치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으로 이동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공동취재단

 
"아…". 일제히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삼성 임직원들 "명확한 증거 없는데..." 장탄식
변호인단은 "모든 유죄 부분 다 유감, 항소할 것"
항소심까지 사상 초유 장기간 경영 공백 불가피


25일 오후 3시 27분, 서울중앙지법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5년형을 선고하자 삼성전자의 지속가능경영사무국·커뮤니케이션팀 등이 근무하는 태평로 삼성본관 27층에는 긴 정적이 흘렀다. 삼삼오오 TV 앞에 모여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이던 직원들은 비통한 얼굴로 자리로 돌아갔지만 일손을 잡지 못했다. 한 임원은 낮은 목소리로 "어떡하나"는 말만 반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에서 한 고객이 뉴스를 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공판이 열린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자상가에서 한 고객이 뉴스를 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선고 전까지 삼성 안팎에서는 무죄 선고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글로벌 산업현장에서 격전을 벌이는 세계 최고 기업 총수에 대한 단죄는 증거에 의해 엄격하게 판단돼야 한다는 게 삼성맨들의 바람이었다. 뇌물죄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는 한, 나머지 혐의 사실인 횡령·재산국외도피 등은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 계열사 한 임원은 "딱 부러지는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까지 중형을 내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이라는 애플을 추월한 기업, 24년간 반도체 1위였던 인텔을 제친 기업, 한국 증시 시가총액의 약 27%(삼성 전 계열사 총액 기준)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기업 삼성이 이날 판결로 '장기간 오너 부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항소심은 내년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장기간 경영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법무법인 테크앤로 구태언 변호사는 "이 부회장이 6개월간 구속 수감 중이었지만, 유무죄를 다투기 위해 재판을 받는 신분과 1심에서 유죄를 받고 영어의 몸이 되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 주는 신호가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특검에 출두하는 모습.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특검에 출두하는 모습. [중앙포토]

 
1938년 설립 이후 삼성 역사에 오너가 경영 일선을 떠난 적은 거의 없었다. 2008년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특검 조사로 자리를 비웠을 때는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시장 개척 업무를 맡았다. 2014년 5월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로는 이 부회장이 총수 역할을 대신해왔다. 이 회장이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 후계자인 이 부회장마저 경영 공백을 빚게 되면서 '리더십 부재'라는 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삼성 임원의 '어떡하나'는 우려는 바로 이런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하는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서울 서초구 삼성전차 서초사옥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왼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가을 서울 서초구 삼성전차 서초사옥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왼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지난 6개월간 삼성전자는 '오너십' 대신 '두 개의 시스템'으로 버텨왔다. 하나는 상근 등기임원이 참석하는 '사내 경영위원회'다. 삼성전자 이사회 내에는 감사위원회·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 등 6개의 위원회가 있다. 경영위원회는 그 중 경영 전반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핵심 기구다. 
 
권오현 DS(디지털솔루션) 부문장·윤부근 CE(소비자가전) 부문장·신종균 IM(인터넷·모바일) 부문장이 참석한다. 올해 상반기 경영위는 2차례 열렸다. 지난해 상반기에 4차례 열린 데 비하면 횟수가 크게 줄었다. 논의 내용도 지난해에는 4차례 모두 M&A 관련이었지만 올해는 기존 사업에 대한 추가 판단에 그쳤다. 
 
또 다른 시스템은 일상적인 투자나 작은 합병 건을 진행하는 3대 조직을 중심으로 유지됐다. 삼성벤처투자와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삼성넥스트가 국내외의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문제는 시스템으로 오너의 장기 공백을 메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영위원회는 경영위 수준에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수준의 M&A만 결정한다. 그룹 운명을 좌우할 큰 결정은 경영위원회가 이사회로 올리도록 돼 있는데 이 부회장 없는 이사회에서 30년 전 반도체 투자 같은 큰 결단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 전문 3대 조직도 삼성전자에 필요하지만 삼성전자가 현재 갖고 있지 못한 기술을 사들이는 정도의 활동에 그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중앙포토]

최태원 SK그룹 회장. [중앙포토]

 
재계에는 총수공백과 관련해 이미 'SK 학습효과'가 있다. 최태원회장이 2년간 자리를 비우는 사이 그룹이 전반적으로 크게 정체됐다. 구속 직전 최 회장이 과감하게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한 덕분에 2년여 뒤 반도체 수퍼사이클 호황을 누리게 됐다는 건 SK맨들에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삼성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체를 진두지휘할 주체가 사라진 점도 문제다. 되는 사업과 안되는 사업을 나누고, 되는 사업에 인적·물적 자원을 더 투입하는 일은 지금까지 미래전략실이 진행해 왔다. 지난 2월 미전실이 해체됐고 이번에 이 부회장까지 유죄를 받으면서 삼성 내에서는 '그룹 차원의 문제'를 고민하고 의사결정을 할 주체가 없어졌다.
 
오너 공백은 인사에서 두드러진다. 삼성은 지난해 말 단행했어야 할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 계열사간 임원 재배치 등도 중단됐다. 사장 인사와 계열사간 인사도 그룹 전체를 챙기는 미전실이 없는 상황에서 추진할 기구가 없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인사는 조직에 의욕과 활기를 불어넣는 가장 중요한 경영행위"라며 "인사가 장기간 지연되는 조직에서는 '기업관료'가 생기기 쉽고 이는 결과적으로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오너가 재판에 회부되면서 일부 사업에는 이미 차질이 생겨났다. 국내에서는 삼성증권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전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감독원이 이 부회장의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삼성증권의 발행 어음 사업 인가 심사를 보류했다. 삼성이 미래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올 11월 준공되는 3공장 건립 직후 4·5공장 건설을 추진하려 했으나, 현재 논의가 중단됐다. 
 
해외에서는 수조원을 쏟아붓는 초대형 투자가 하만 인수 이후 정지됐다. 지난해 9월 시작된 하만 인수는 2개월 만에 급속도로 성사됐다. 인수금액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서 급물살을 탄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큰 규모의 M&A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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