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더,오래] 조민호의 이렇게 살면 어때(14) 낯선 길 익숙해지기 전 세상 사냥할거야

기자
조민호 사진 조민호
앞에는 ‘KEEP GOING’ 뒤에는 ‘Fill your life with experiences, not things’. 손바닥만한 햇볕이라도 오래 가기만 하면 내 빨래들이 뽀송뽀송해질텐데. 해는 짧고 비는 오래 가고 있다. [사진 조민호]

앞에는 ‘KEEP GOING’ 뒤에는 ‘Fill your life with experiences, not things’. 손바닥만한 햇볕이라도 오래 가기만 하면 내 빨래들이 뽀송뽀송해질텐데. 해는 짧고 비는 오래 가고 있다. [사진 조민호]

 
막 퇴직한 지난해 초여름,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광고쟁이는 직장을 자주 옮겨서 퇴직금이 늘 쥐꼬리만 하다)을 탈탈 털어 집사람과 꽤 긴 유럽 자동차여행을 떠났다.  

 
시간은 그곳까지 따라와 심술을 부렸다. 집 떠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길었던 여행 초반보다 후반에는 하루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끝 무렵에는 그 긴 여행이 이토록 빨리 끝났다는 사실에 탈탈 턴 퇴직금이 아까워 허탈하기까지 했다.  
 
처음 가 보는 곳에서 겪는 시각적 새로움과 낯선 경험들로 인해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자극이 많을수록 시간은 느려지고, 익숙해지면 빨라진다. 그래서 낯선 풍경에 익숙해지는 여행의 중반을 지나면 떠나오기 전처럼 시간은 다시 빨라진다. 인생도 여행이다. 뭐든 새로운 초반의 시간은 느리고, 뭐든 시큰둥한 후반은 빠르다.
 
방법이 없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의 절반을 이미 지났다. 익숙해지거나 지겨워지기 전에, 시간이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전에, 익숙한 집에서 세월을 죽이지 않고, 낯선 길에서 세상을 사냥하는 거다. 끊임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이 나를 잡아먹어 버릴 것이기 때문에.
 
 
몇달 전까지만 해도 모내기가 힘들 지경의 가뭄이 지속됐다. 빨래는 좋았지만 바짝 마른 땅은 쨍한 하늘을 원망했다. [사진 조민호]

몇달 전까지만 해도 모내기가 힘들 지경의 가뭄이 지속됐다. 빨래는 좋았지만 바짝 마른 땅은 쨍한 하늘을 원망했다. [사진 조민호]

 
긴 비 때문에 포월침두에 갇혀 지낸 시간이 길었다. 손바닥만큼 열린 하늘 사이로 햇볕이 빼꼼 나와 미뤄뒀던 빨래를 했다. 여름이 되면 손이 자주 가는 티셔츠가 있다. 가슴팍에 ‘KEEP GOING’이라고 새겨져 있다. “멈추지 마. 멈추면 죽는 거야” 한다. 그래, 계속 가서 뭘 어쩌란 말이냐? 티셔츠의 등판에는 큼지막하게 이런 글이 떡~ 쓰여 있다.
 
‘Fill your life with experiences, not things.’ 나의 해석은 이렇다. 손에 만져지는 어떤 것도 다음 세상으로 가져 갈 수 없다. 행복한 순간의 기억, 사람에 대한 그리움, 어느 봄날의 꽃향기, 음악과 예술, 오직 이런 것들로만 네 인생을 채워라~
 
빨래가 뽀송뽀송 마르면 이 옷을 입고 뽀송뽀송해진 기분으로 ‘Keep Going’ 해야지. 내 인생의 액셀레이터는 내가 밟아야지. 시간이 자기 맘대로 밟게 내버려둘 수는 없잖아.
 
조민호 포월침두 주인 minozo@naver.com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