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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투 트랙 민주주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최악의 위기로 치닫던 미국과 북한의 말 폭탄 대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실언을 계기로 잦아들고 있다.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 ‘화염과 분노’로 맞서며 긴장을 높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버지니아주 인종 갈등의 와중에서 어이없는 양비론을 내세웠다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휘발성이 극히 높은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 갈등 이슈에 대해 느슨한 양비론을 내놓음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여당과 야당, 보수·진보 시민들 모두로부터 고립되는 정치적 참사를 빚고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감세정책,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관심을 돌리다 보니 고조되던 북·미 간 군사 긴장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부터 다소간 제어되는 부수 효과를 낳고 있다.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 관계는
제로섬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
정부 개방과 정당 개혁을 통해
대의제와 시민참여가 공존하는
투트랙 민주주의가 촛불의 요구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양비론 발언을 음미하다 보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우리의 생사를 좌우하는 최고사령관이기도 하지만 한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균형 있게 대변해야 하는 최고 교육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중에 민주주의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필자로서는 상당히 우려할 만한 사례 하나가 눈에 띈다.
 
지난주 국민인수위의 국민보고대회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들이 선거 때 한 표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치가 낙후됐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정당과 정책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직접민주주의 발언은 총론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크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낡고 부패한 정당으로 대표되는 대의제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다. 또한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흐름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총론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각론이 허술하다면 이는 세밀하게 따져볼 문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의 관계는 문 대통령이 가리키는 바와 같은 제로섬 관계라기보다는 복잡미묘한 균형의 문제다. 대의제와 직접민주주의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문 대통령의 발언은 얼마간 부정확한 진단과 불균형적 처방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부정확한 진단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지난가을 이후의 촛불 민심을 찬찬히 되새겨 보면 문 대통령의 진단과는 달리 촛불 시민들이 대의제 정치를 일방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촛불 시민들이 정당, 국회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불신과 더불어 절제된 기대라는 두 가지 다른 관점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겨울 광화문광장을 주말마다 시민들이 가득 메웠던 까닭은 현직 대통령의 방대한 부패 혐의 앞에서도 우물쭈물하는 여야 정당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애매한 정치적 수사 뒤에 웅크리고 있는 여야 정당들을 보다 못한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광장에서 강렬하게 요구했다.
 
정당을 믿지 못하면서도 촛불 시민들은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정당들이 중심 역할을 제대로 해주기를 기대했다. 후보를 선출하는 각 당의 경선 과정은 차분하게 치러졌고, 이 기간 동안 대규모 시민집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달리 말해 2011년 1500만 명의 시민이 ‘분노한 자들의 운동’을 일으키고, 이를 모태로 한 신생 시민정당(포데모스)이 2015년 선거에서 일약 제3당으로 등장했던 스페인의 경우와 우리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당, 국회, 정부가 심각한 직무유기를 범할 때에는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지만 일상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대의기제들이 정상적으로 이끌기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우리 촛불 시민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대의제와 시민 참여가 공존하면서 긴장을 유지하는 투 트랙(two track) 민주주의다.
 
부정확한 진단은 불균형적 처방으로 이어진다. 문 대통령은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 사례에서도 확인되듯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의 개방을 통한 직접민주주의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 위원회가 ‘시민 누구’의 공론을 어떤 방식으로 공론화할지도 궁금하지만, 그 못지않게 시급한 것은 민주주의 기관차로서의 정당 개방을 향한 개혁이다. 촛불 시민들이 탄핵 이후의 선거 과정을 기성 정당들에 맡기고 유권자 시민으로 돌아갔던 까닭은 대의제의 엔진으로서의 정당 개혁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은 촛불집회와 대선 이후 실종되다시피 한 정당개혁의 모멘텀을 여당에부터 불어넣어야만 한다.
 
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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