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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위에서 밥 짓고 잠자는 13억짜리 아파트 경비원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실 안에 붙어 있는 화장실을 부엌 겸 침실로 쓴다. 경비원 김모(68)씨는 화장실에 전기밥솥을 두고 밥을 짓고 야간에는 화장실 안쪽에 머리를 놓고 잔다(아래 사진). 두 경비원이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하는 체제라 이곳에서 잠을 자야 한다. [이현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실 안에 붙어 있는 화장실을 부엌 겸 침실로 쓴다. 경비원 김모(68)씨는 화장실에 전기밥솥을 두고 밥을 짓고 야간에는 화장실 안쪽에 머리를 놓고 잔다(아래 사진). 두 경비원이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하는 체제라 이곳에서 잠을 자야 한다. [이현 기자]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실. 지은 지 34년 된 아파트 경비실 안은 두 사람이 마주 앉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았다. 몸을 45도로 틀어 어정쩡한 자세로 경비원 김모(68)씨와 한 시간 남짓 대화했다. 락스와 하수구 냄새, 곰팡내가 뒤섞인 화장실 냄새가 코를 괴롭혔다. 김씨는 “문을 닫아 두면 환기가 되지 않아 밥을 해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악취가 난다. 항상 문을 열어 둔다”고 말했다.

재건축 앞둔 강남구 한 아파트
좁은 경비실 새로 안 지어줘
청와대·인권위에 진정서 제출하자
용역회사, 다른 곳 발령 내기도
“경비원들, 해고 무서워 참고 살아”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화장실이 부엌이자 침실이다. 변기 위 선반 위에는 전기밥솥과 플라스틱 밥주걱,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다른 쪽 벽에는 프라이팬과 물바가지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다리를 뻗고 누울 공간이 없어 밤에는 화장실과 경비실에 작은 의자들을 놓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아 변기 쪽에 머리를 두고 잔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아파트 가격은 13억원대로 올랐지만 경비초소를 새로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경비원들은 화장실에서 밥을 푸고 국을 데운다. 경비대원 휴게실이 있지만 싱크대와 조리시설이 없고 문도 늘 잠겨 있다. 휴게실 열쇠는 경비반장만 갖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실 안에 붙어 있는 화장실을 부엌 겸 침실로 쓴다. [이현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은 경비실 안에 붙어 있는 화장실을 부엌 겸 침실로 쓴다. [이현 기자]

 
수시로 이중 주차된 차를 밀고 120가구에 밀려드는 택배를 대장에 기록하다 보면 초소를 비울 짬도 나지 않는다. 김씨는 “경비실을 처음 보고 기가 막혔지만 나이 먹고 갈 데가 없으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나마 주민들이 인격적으로 존중을 해 줘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고 버텼다”고 말했다.
 
열악한 시설보다 김씨가 더 참기 어려웠던 건 관리회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였다. 지난달 12일 제헌절을 앞두고 관리사무소에서 태극기 60개를 가져가 아파트에 게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주민센터의 업무지만 “자원봉사자가 줄어 일손이 부족하다”며 관리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한 일이다. 김씨가 아파트까지 태극기를 옮기고 보니 날이 어두워져 이튿날 교대한 다른 직원이 태극기를 달았다.
 
그런데 관리사무소 측은 “김씨만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았다”며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김씨는 “강남구청의 캠페인 전단에도 게양기간이 7월 14일부터인데 그보다 일찍 게양하고 왜 경위서를 써야 하느냐”며 버텼다.
 
관리사무소 직원과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노망났느냐”는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 측은 “욕설이나 ‘노망났느냐’는 발언은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김씨는 관리사무소가 열악한 휴게 환경을 외면하고 부당한 업무 지시를 내렸다며 인권위와 청와대에 진정서를 냈다. 용역회사는 지난 11일 김씨를 성북구 월곡동의 다른 아파트로 발령 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태극기 게양 문제로 경위서를 요구하면서 생긴 논란은 해당 직원이 사과하고 경위서를 냈다”면서도 “김씨가 회사와 상의 없이 경비반장을 교체하려 하는 등 인사권에 개입하고, 주민들에게 돌릴 호소문을 준비하는 등 관리·통제가 안 돼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새 근무지는 강남구 세곡동 집에서 2시간이 걸려 대중교통으로는 출근시간인 오전 6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위치였다. 170만원 남짓한 한 달 월급을 택시비로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씨의 사정을 들은 월곡동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같이 일하기 어렵겠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에 대해 용역회사 측은 “가까운 지역에는 월급이 이곳보다 적은 자리뿐이고 월곡동 아파트 근무시간을 늦추도록 조율하려 했으나 김씨가 거절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기발령 상태인 김씨는 요즈음도 화장실에서 밥을 짓는 경비초소로 출근한다. 일종의 ‘출근 투쟁’이다. 김씨는 “이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의 경비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경비 이외 업무를 시켜도 해고당할까 봐 말도 못하고 참고 산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알려왔습니다.
8월 25일 자 '변기 위에서 밥 짓고 잠자는 13억짜리 아파트 경비원들' 기사와 관련하여 개포동의 해당 아파트에서는 경비원들은 통상 경비실 책상이나 지하 1층의 개인 공간 내지 공용 휴게실에서 식사와 휴식을 해결하였다고 알려왔습니다. 이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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