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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희의 맛따라기] 문턱 높지만 품격은 더 높은 곳 … 한식의 法古創新 ’온지음 맛공방'

온지음 한식 코스의 메인요리 중 하나인 소고기 설도 산적 플레이팅(6인분)이 시선을 압도한다. 사모기둥을 잘라 뉜 듯한 백자도 눈길을 끈다. 눈으로 만끽하고 먹은 고기 맛도 기대 이상이었다.

온지음 한식 코스의 메인요리 중 하나인 소고기 설도 산적 플레이팅(6인분)이 시선을 압도한다. 사모기둥을 잘라 뉜 듯한 백자도 눈길을 끈다. 눈으로 만끽하고 먹은 고기 맛도 기대 이상이었다.

제철 재료+간장 섬세한 하모니…맛을 배우는 식탁
몇 년을 선망하고 궁금해하던 곳에서 지난 18일 저녁을 먹었다. 접근이 쉽지 않은 특수 한식당이다. 우선 비싸다. 점심 11만원, 저녁 17만6000원. 엄선한 전통주를 곁들이는 페어링 체험 프로그램은 별도로 신청을 해야 한다. 술을 가지고 갈 경우 코키지는 1병 3만원. 돈이 있다고 누구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약하기가 산 넘어 산이다. 한 끼에 한 팀(6~12명) 원 테이블에, 점심·저녁 통틀어 한 달 20회 정도만 손님을 받는다. 예약은 매달 첫 영업일에 전화 선착순이다. 예약금도 받는다. 유명 요리사들도 공부 삼아 찾는 곳이다 보니 이미 3개월 예약이 차 있다. 웬만한 경제력·집중력·끈기가 아니면 어찌 가겠는가.
 
그곳은 온지음(서울 종로구 효자로 17/전화 070-4816-6610)이다. 음식점이 아니라 연구소가 본업이다. 월드컬처오픈화동문화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의 일부다. 연구소는 의식주 전통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현대에 맞게 되살리는 방안을 탐색하는 옷·맛·집 공방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맛공방이 연구한 결과를 일반에 선보이는 자리로 손님을 맞는다. 연구가 중심이기 때문에 끼니마다 손님을 받지는 못한다. 2013년 6월 출범했다.
 
메뉴는 이 땅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로 최선의 맛을 내 차리는 한식 코스 한 가지뿐이다. 내용은 주기적으로 바뀐다. 이곳 한식은 조선 시대 서울의 반가(班家) 음식과 전국의 이름있는 종가나 만석꾼 집안 내림 음식을 바탕으로 한다. 옛 조리서도 교재로 삼는다.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발굴한 전래 향토음식도 가다듬어 어엿한 요리로 빚어낸다. 현대적 조리법을 가미해 ‘조상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는 한편 오늘의 한식을 모색하고 정립하는 작업이 맛공방에서 하는 일이다. 말은 쉽지만 구현은 지난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현장인 것이다. 
온지음 맛공방은 접객보다 연구가 본업이다. 한쪽 벽 장식장에 우리나라 옛 조리서와 온지음에서 낸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책마다 분류 레이블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 상당한 규모의 서가가 있는 듯하다.

온지음 맛공방은 접객보다 연구가 본업이다. 한쪽 벽 장식장에 우리나라 옛 조리서와 온지음에서 낸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다. 책마다 분류 레이블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 상당한 규모의 서가가 있는 듯하다.

‘지음’은 동사 ‘짓다’의 명사형이다. 의식주인 옷·밥·집을 마련하는 일을 우리말은 모두 ‘짓는다’고 표현한다. ‘온’은 ▷꽉 찬 ▷완전한 ▷전부의 같은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두 형태소가 합쳐진 ‘온지음’이라는 이름에서 ‘온전하게 짓겠다’는 뜻이 읽힌다. 공방에 들어서니 “옛 것을 바탕으로 바르고 온전하게 지금을 짓는다”는 표어가 보인다. 연구소의 지향과 오늘 맛볼 음식의 위상이 선명해졌다.

 
가기도 쉽지 않지만 내 처지에서 그 자리 식사를 기사로 쓰는 일은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우선 그곳 음식은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재료나 솜씨가 무시로 맛보는 흔한 게 아니어서 여느 식당 음식들과 비교하고 평가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관계의 특수성도 부담이다. 내 직장과 연구소가 소속된 재단의 운영 주체는 동일인이다. 그게 빌미가 돼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쓰기로 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제대로 지은 한식의 세계를 독자에게 알리는 것도 내 일이라고 판단했다. 평가할 수는 없지만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먹어본 미각만큼은 소개해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새 음식이 나올 때마다 이것저것 묻고 메모를 계속했더니 공방의 박성배 선임연구원은 “다녀간 분들 중 가장 많이 묻고 적는 손님”이라며 웃었다. 그 기록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계의 특수성 문제에 대해서도 변호를 하겠다. 관계가 있어서 그곳에 간 게 아니다.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호기심 많은 손님일 뿐이었다. 부지런한 지인이 예약을 했는데 한 자리를 배려해 줘서 편승했다. 천성이 게을러 ‘가야지, 가봐야지’ 4년을 혼자 노래만 부르고 예약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으로 이번에 한 자리 끼게 된 것이다. 음식 값은 정확히 각자 결제했다. 어떤 ‘관계의 빚’도 없이 식사를 마쳤다. 나오면서 공방의 조은희(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 방장이 자신이 나온 사진을 보내 달라 해서 이메일 주소 확인하려고 명함을 교환하다가 신분이 드러나게 됐다.
온지음 맛공방의 주방은 식탁 공간보다 넓이가 3배쯤 돼 보였다.

온지음 맛공방의 주방은 식탁 공간보다 넓이가 3배쯤 돼 보였다.

메뉴가 적힌 칠판은 프랑스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르 코르뷔지에 작품으로 나이가 100살쯤 된다.

메뉴가 적힌 칠판은 프랑스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르 코르뷔지에 작품으로 나이가 100살쯤 된다.

식당에 들어서니 우리 일행 6명의 식탁이 준비돼있다. 식사하는 공간보다 넓이가 3배는 돼 보이는 주방에서 8명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신분은 요리사가 아니라 연구원이다. 꾸밈이 거의 없는 실내의 식탁 옆 한쪽 벽에는 간결한 장식장과 나란히 걸린 흑판에 이날의 메뉴가 적혀 있다. 그대로 옮겨 보자.
마른안주 ①옥수수 콩죽 ②두부 토마토 잣소스 냉채 ③민어양념구이 ④산적 ⑤백화반 아욱국 금태구이 ⑥복숭아빙수 건시단자 대추고
칠판 맞은편 벽 구석에 놓인 여닫이 장식장은 덴마크 디자이너 에릭 코어의 1957년 작품.

칠판 맞은편 벽 구석에 놓인 여닫이 장식장은 덴마크 디자이너 에릭 코어의 1957년 작품.

흑판은 예사 물건이 아니다. 나이가 100살을 헤아린다.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 겸 가구 디자이너 르 코르뷔지에(1887~1965) 작품이다. 맞은편 구석에 술잔과 커피밀 등이 놓여있는 여닫이 장식장은 덴마크 디자이너 에릭 코어의 1957년 작품이다.
한 사람 기본 차림. 냅킨 위에 메뉴 쪽지가 다소곳이 놓여있다. 발포 와인 1병을 가지고 가겠다고 연락해 잔을 준비해뒀다.

한 사람 기본 차림. 냅킨 위에 메뉴 쪽지가 다소곳이 놓여있다. 발포 와인 1병을 가지고 가겠다고 연락해 잔을 준비해뒀다.

식탁 위 천장에 달린 펜던트 램프는 1920~1930년대 바우하우스 시대 작품이다.

식탁 위 천장에 달린 펜던트 램프는 1920~1930년대 바우하우스 시대 작품이다.

식탁의 냅킨 위에도 메뉴를 적은 쪽지가 놓여있다. 식탁 위에 걸린 펜던트 램프는 현대 건축과 조형예술에 큰 영향을 끼친 1920~1930년대 바우하우스 시대 작품이다. 흑판에 쓴 것보다 간략한 쪽지 내용을 다시 그대로 옮긴다.
Ⅰ. Starter 두부 토마토 냉채  
Ⅱ. Appetizer 민어양념구이  
Ⅲ. Main Dish 산적 백화반  
Ⅳ. Dessert 복숭아빙수
 
마른안주: 2가지 부각과 약대구포, 찹쌀떡
약대구를 찢어 포로 만드는 조은희(왼쪽) 방장과 박성배 선임연구원.

약대구를 찢어 포로 만드는 조은희(왼쪽) 방장과 박성배 선임연구원.

 2가지 부각, 약대구포, 김을 섞은 찹쌀떡(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구성된 식전 마른안주.

2가지 부각, 약대구포, 김을 섞은 찹쌀떡(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구성된 식전 마른안주.

부각에 점점이 박힌 캐비어.

부각에 점점이 박힌 캐비어.

김을 섞은 찹쌀떡은 생 솔잎을 손잡이로 꽂고 간장을 묻혀 냈다.

김을 섞은 찹쌀떡은 생 솔잎을 손잡이로 꽂고 간장을 묻혀 냈다.

고기부각은 삶아서 말린 소고기 양지 살에 찹쌀풀을 바르고 말려서 튀겼다. 캐비어부각은 북어육수로 되직하게 쑨 찹쌀풀을 얇게 펼쳐 캐비어(철갑상어알)를 드문드문 뿌리고 말린 걸 튀겼다. 입안에서 부서질 때 캐비어 향이 옅게 퍼졌다.
 
약대구는 진해·거제 같은 주산지에서 대구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말린 것이다. 아가미와 내장을 입 쪽으로 꺼낸 뒤 배속에 국간장·소금을 넣고 짚으로 채워 1~2개월 해풍에 말린다. 완성되면 저며서 가늘게 찢어 먹는다. 겨울 진해에서 보양식으로 꼽는 귀한 식품이다. 온지음에서는 쇠고기 넣고 달인 간장을 부어 만든다고 한다.

김을 섞어 빚은 찹쌀떡은 엄지 한 마디 크기로 네모 반듯하게 자르고, 한 자리서 세 가닥이 나오는 조선소나무 생 잎을 손잡이로 끼운 다음, 특이하게도 간장을 쳐서 냈다.
 
①옥수수 콩죽
동부와 옥수수 알갱이가 넉넉히 들어간 옥수수 콩죽.

동부와 옥수수 알갱이가 넉넉히 들어간 옥수수 콩죽.

찹쌀가루와 생 옥수수 간 것을 섞어 죽을 쒔다. 싱싱한 동부(덩굴 콩의 하나)와 옥수수 알갱이를 삶아서 넉넉하게 넣었다. 죽은 분청사기 막사발에 차분하게 담겨 나왔다. 옥수수 단맛과 향이 부드럽게 녹아있다. 동부의 담숙한(포근하고 폭신한) 식감이 잘 어우러져 죽도 훌륭한 별식이 됐다.
 
②(Starter) 두부 토마토 잣소스 냉채
두부 토마토 잣소스 냉채.

두부 토마토 잣소스 냉채.

냉채 재료 5가지를 한 술에 담았다. 다섯 가지 맛과 향이 또렷하다.

냉채 재료 5가지를 한 술에 담았다. 다섯 가지 맛과 향이 또렷하다.

서리태 검은콩 껍질을 벗겨 만든 두부와 잣을 갈아 만든 소스를 바닥에 깔고, 데쳐 껍질을 벗긴 4색 토마토와 새우 살을 올렸다. 유자 소스에 버무린 루콜라를 곁들여 색감을 살렸다. 토마토는 박 선임연구원의 홍천 처가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이라고 한다. 박 연구원은 “7월 프랑스 레지던스 프로그램 때 이 냉채가 현지인에게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조 방장과 박 연구원은 프랑스 파리 근교의 리슐리외에 있는 메종 아뜰리에에서 열린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초청 받아 다녀왔다. 지난 7월 1일부터 2주간 거주하면서 한국의 식문화를 소개하고 함께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온지음 한식을 맛 보이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이 요리연구가를 초청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③(Appetizer) 민어양념구이와 고추소박이물김치, 전통주 페어링
민어양념구이와 고추소박이물김치.[사진 정재성씨]

민어양념구이와 고추소박이물김치.[사진 정재성씨]

민어양념구이 접시에 애호박새우젓찜을 올리는 조은희 방장. 매일 하는 일일 텐데도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민어양념구이 접시에 애호박새우젓찜을 올리는 조은희 방장. 매일 하는 일일 텐데도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서울에 민어 음식점이 별로 없던 시절에도 찾아다니며 먹었고, 기사로 쓰기도 했지만 민어구이는 여태 먹어본 익힌 민어 요리 가운데 으뜸이었다. 간도 섬세하고 익힌 정도가 절묘했다. 살만 발라 도막 내 조선간장으로 밑간을 한 다음 들기름·올리브기름을 둘러 팬에서 구웠다고 한다. 구운 정도는 속살이 안 익은 상태를 갓 벗어났을 만큼. 살결은 있는 듯 없는 듯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아 흩어지고, 고기 즙과 조선간장 향미가 어우러진 맛은 맑은 날 산중 호수 수면처럼 잔물결로 밀려왔다. 숭덩숭덩 삐져서 새우젓 약간 넣고 살짝 찐 조선호박과 데친 콜리플라워가 접시를 함께 채웠다. 호박찜도 날것을 면할 정도만 익혔다. 박 연구원은 “7월 프랑스 프로그램 때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도 선보였는데 그곳 사람들은 호박을 날로도 먹더라”며 “가능하면 더 살짝 익히려 했다”고 음식을 설명했다. 고추소박이물김치는 알맞게 익어 시원한 국물이 생선 먹은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민어구이에 짝을 지은 전통주인 풍정사계 중 18도 여름 술 과하주.

민어구이에 짝을 지은 전통주인 풍정사계 중 18도 여름 술 과하주.

전통주는 풍정사계 과하주(過夏酒)와 매칭했다. 친숙한 술이다. ‘풍정(楓井)’은 청주시 내수읍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동네에 ‘단풍 우물’이 있어 유래했다. 초정약수와 6㎞(15리) 상간이어서 이곳도 예부터 물맛 좋기로 이름이 있었다. 이 마을 화양양조장에서 맛과 향이 다른 술 네 가지를 만들고 사계절에 맞춰 풍정사계라 이름했는데 그 중 여름 술이 18도 맑은술 과하주다. 국산 찹쌀과 밀·녹두를 섞어 직접 디딘 누룩 향온곡으로 빚는다.
 
과하주는 이름처럼 ‘여름에 빚어 마시는 술’ 또는 ‘여름이 지나도록 맛이 변하지 않는 술’이다. 술이 발효하는 중에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넣어 온도가 높은 여름에 발생하기 쉬운 지나친 발효를 막아 맛이 변하지 않게 하고, 저장성도 높인다. 이런 술을 혼양주(混釀酒)로 분류한다. 누룩 효모는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면 발효활동이 정체된다. 15~18도가 한계다. 그래서 막걸리는 독하게 빚을 수 없다. 19도 ‘이상헌탁주’가 있는데 그 정도면 뭔가 비법이 있는 거다.
 
덤 요리: 모둠 생선회, 전통주 페어링
한국식 모둠 생선회 나문재·함초 초절임, 숙성 농어회, 문어 무침, 장김치 묵은지, 민어 뱃살, 저민 생 대추, 간장 식초에 재운 고등어(6시 위치부터 시계방향). 가운데는 생 다시마.

한국식 모둠 생선회 나문재·함초 초절임, 숙성 농어회, 문어 무침, 장김치 묵은지, 민어 뱃살, 저민 생 대추, 간장 식초에 재운 고등어(6시 위치부터 시계방향). 가운데는 생 다시마.

다시마에 고등어·묵은지·농어·문어에 대구알젓을 올린 모둠회 한 쌈. 접시 문양이 음식과 잘 어울린다.

다시마에 고등어·묵은지·농어·문어에 대구알젓을 올린 모둠회 한 쌈. 접시 문양이 음식과 잘 어울린다.

염생식물인 나문재·함초 초절임과 농어 숙성회를 짝지었다.

염생식물인 나문재·함초 초절임과 농어 숙성회를 짝지었다.

구절판을 응용한 한국식 회다. 한국인이면서 먹는 일에 이골이 나기도 했건만 한국식 회를 보고 깜짝 놀랐다. 회는 민어·농어·고등어·문어 4품이다. 거기에 회와 다양하게 조합해 먹도록 생 다시마, 장김치 묵은지, 나문재·함초 초절임, 얇게 저민 생 대추(중국산)를 곁들였다. 민어와 농어는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1643∼1715)이 엮은 농서 겸 생활백과인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늘게 썰었다. 민어는 뱃살을 참기름과 소금으로, 숙성한 농어는 당귀기름과 소금으로 각각 무쳤다. 고등어는 식초·소금에 재웠다. 문어는 데친 다리를 저며서 소금 간 하고 참기름·파·마늘·깨 넣어 버무렸다. 통영에서 배운 방법이라고 한다.  
회와 함께 먹도록 나온 곱창김과 대구알 젓. 건너편 술은 앞 순서에 나온 과하주이다.[사진 정재성씨]

회와 함께 먹도록 나온 곱창김과 대구알 젓. 건너편 술은 앞 순서에 나온 과하주이다.[사진 정재성씨]

곱창김으로 싼 회 4품 모둠 말이.

곱창김으로 싼 회 4품 모둠 말이.

양념 않고 살짝 구운 곱창김과 밤·대구 채를 넣고 무친 대구알젓이 수줍은 듯 다른 그릇에 따라 나왔다. 곱창김은 10월 말부터 약 20일 동안, 시즌 처음으로 수확하는 최상급 김이다. 일반 김보다 잎이 넓고 두터우며 구불구불한 모양새가 곱창을 닮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 생산량이 적어 일반 제품보다 값이 갑절은 나가지만 맛과 향이 진하고 씹는 느낌도 좋아 찾는 이들이 많다. 대구알젓은 겨울에 대구를 말리거나 요리하고 남은 것을 온지음에서 젓갈로 담가 무쳤다. 이 음식에 곁들이는 전통주는 자가 양조한 매실주였다.
모둠회에 페어링한 전통주는 온지음에서 담근 매실주.

모둠회에 페어링한 전통주는 온지음에서 담근 매실주.

‘한국식 회’라고 하면 회는 일본음식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우리도 예로부터 일본과 다른 방식으로 회를 먹었다. 고려 때 이규보(1168~1241)나 목은 이색(1328∼1396), 조선 시대 서거정(1420∼1488)의 시에 회가 나온다. 공자도 회를 드셨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회불염세(膾不厭細;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라 하여 취향을 언급한 구절이 있다. 회(膾)라는 말이 이미 한자, 중국 글자다. 동물성 식품을 날로 먹는 것은 인류 보편의 생존양식이었다.
 
『산림경제』는 “살을 얇게 썰어 얇은 천으로 물기를 닦아낸 다음 생강이나 파를 회 접시에 올려 곁들여 먹고, 양념으로 겨자를 쓴다”고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은 회 조리법을 설명하고 있다. ‘조회개법(造膾芥法)’이라 하여 겨자 양념 만드는 과정도 종자 채취부터 건조·제분해 개고 조미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가루를 사기그릇에 담고 맹물로 진흙처럼 되게 갠 다음 빠르게 저으면서 입김을 불어넣어라” 한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올 정도다. 초장을 가미하고 꿀이나 참깨즙을 넣어 맛을 부드럽게 하는 방법까지 소개했으니 현대 조리서 못지않은 친절한 설명이다.
 
덤에 덤 요리: 감자전
덤에 덤으로 나온 요리 감자전. 여느 전보다 기름기를 절제해 감자 맛을 잘 살렸다.

덤에 덤으로 나온 요리 감자전. 여느 전보다 기름기를 절제해 감자 맛을 잘 살렸다.

기름기 없이 잘 구워진 감자전은 한 점 머금으면 씹히는 알갱이가 감자를 손으로 갈아서 정성 들여 부친 전이라고 스스로를 천명하는 듯하다. 감자 외에는 들어간 재료도 다진 파가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가끔은 감자로 끼니를 이을 수밖에 없던 산골 살림에 기름도 귀해 전이 타지 않을 만큼만 시늉으로 발라 번철(燔鐵)을 달래며 굽던 전 같이, 감자 맛이 순박하고 온전하게 살아 있었다.
 
④(Mainⓐ) 산적, 전통주 페어링
7시간에 걸쳐 준비한 소고기 설도 산적을 조은희 방장이 숯불에서 굽고 있다. 그는 방장이지만 요리마다 핵심과정을 모두 챙겼다.

7시간에 걸쳐 준비한 소고기 설도 산적을 조은희 방장이 숯불에서 굽고 있다. 그는 방장이지만 요리마다 핵심과정을 모두 챙겼다.

코스의 메인 산적과 장아찌·샐러드가 곁들여진 상차림.

코스의 메인 산적과 장아찌·샐러드가 곁들여진 상차림.

앞 접시에 옮겨 담은 산적은 미디엄~미디엄 레어 사이로 구워 아주 부드러웠다.

앞 접시에 옮겨 담은 산적은 미디엄~미디엄 레어 사이로 구워 아주 부드러웠다.

회 맛에 놀라고 있는 중에 주방을 보니 한쪽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조 방장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석쇠를 다루고 있다. 달려가 보았다. 숯불에 소고기 산적을 굽고 있다. 아이들 손바닥만한 고기 덩어리 6개가 익고 있다. 고기를 어슷어슷 잘라 구운 꽈리고추와 번갈아 사슬 지어 그릇에 펼쳐 놓은 산적은 차림새가 시선을 압도했다. 그릇은 반듯한 사모기둥을 눕혀놓은 듯한 백자였다. 예전 집집마다 있던 다듬잇돌보다 폭은 약간 좁고 길이는 1.5배는 됨직하다. 그 위에 숯불 향 짙게 미디움 레어로 구운 소고기가 속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줄지어 있다. 중간 중간에 고기 옆에서 구운 꽈리고추가 모독모독 놓였다. 일행 모두가 사진을 찍느라 한바탕 소동이다.
 
산적 만드는 과정은 기본 7시간이 걸린다. 소고기 설도(우둔~사태 사이 아랫엉덩이 살)를 칼등으로 두드려 배즙에 30분 정도 담가 핏물을 빼고, 간장·설탕·배즙·생강즙을 섞어 만든 양념장에 1시간 재운다. 거기에 깨소금을 뿌리고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드린다. 그 다음 참기름·맛술·후춧가루 양념에 재워 5시간 숙성한다. 숯불에 구울 때는 속까지 다 익지 않도록 센 불에서 굽는다. 이렇게 만들면 식어도 고기가 뻣뻣해지거나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적에 곁들인 샐러드는 초절임 죽순, 들깻잎, 어린 시금치로 구성했다.

산적에 곁들인 샐러드는 초절임 죽순, 들깻잎, 어린 시금치로 구성했다.

산적에 따라 나온 음나무 순(왼쪽)과 초석잠 장아찌.

산적에 따라 나온 음나무 순(왼쪽)과 초석잠 장아찌.

풋고추와 보리밥을 갈아서 담근 열무물김치. 전남 남해안 향토음식을 원용했다.

풋고추와 보리밥을 갈아서 담근 열무물김치. 전남 남해안 향토음식을 원용했다.

샐러드·장아찌·김치가 함께 나왔다. 샐러드는 들깻잎 순, 어린 시금치 잎, 초절임한 죽순을 참기름·올리브기름과 소금으로 무쳤다. 장아찌는 어린 음나무 순과 초석잠으로 담갔다. 김치는 풋고추·보리밥을 갈아 담근 열무물김치. 전남 남해안 지역을 여행할 때나 그곳 출신이 서울에서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맛을 들인,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산적 맛은 말할 나위 없거니와 다채로운 맛·향의 채소들과 고기가 어우러지는 맛의 변주는 상상을 초월하는 한식의 묘미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산적에 페어링한 전통주는 홍삼이 들어간 25도 증류주 ‘화주’.

산적에 페어링한 전통주는 홍삼이 들어간 25도 증류주 ‘화주’.

전통주 페어링은 25도 소주인 ‘화주(花酒)’였다. 처음 보는 술이다. 시중에 판매는 하지 않을 거라고 박 연구원이 귀띔했다. 레이블에는 ‘쌀 증류원액과 6년근 홍삼으로 빚은 증류주’라고 설명했다. 아리송한 말이다. 혼양주(混釀酒)인지, 혼성주(混成酒)인지 알 수가 없다. 쌀과 홍삼을 함께 술로 빚어 증류한 것인지, 쌀로 빚은 양조주를 증류하고 홍삼 성분을 섞었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쌀 증류원액’에서 읽기가 막힌다. 쌀은 고체인데 어떻게 증류를 할까. 술 맛이 괜찮아 궁금증이 쌓였다.

 
⑤(Mainⓑ) 백화반
 흰 나물 비빔밥인 백화반과 아욱국.

흰 나물 비빔밥인 백화반과 아욱국.

백화반의 반찬상에는 밤·대추 채가 들어간 들깻잎조림, 맛간장, 구워서 한 입 크기로 잘라 무친 건 서대, 배추김치, 가지양념구이, 갑장과(장아찌), 고구마줄기들깨나물이 올라왔다.

백화반의 반찬상에는 밤·대추 채가 들어간 들깻잎조림, 맛간장, 구워서 한 입 크기로 잘라 무친 건 서대, 배추김치, 가지양념구이, 갑장과(장아찌), 고구마줄기들깨나물이 올라왔다.

백화반 별찬으로 나온 금태구이. [사진 정재성씨]

백화반 별찬으로 나온 금태구이. [사진 정재성씨]

포 뜨고 밑간을 해 구울 준비를 마친 금태 도막.

포 뜨고 밑간을 해 구울 준비를 마친 금태 도막.

한식이니 밥이 빠질 수 없다. 아주 특별한 밥, 백화반(白花飯)이 나왔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나물과 색색의 고명이 올라가 꽃밭 같기도 해 ‘화반’이라 했다고 한다(※사전에는 나오지 않음). 온지음에서는 하얀 나물만 써서 비빔밥을 만들고 이름을 백화반이라 했다. 아욱국과 맛간장, 금태구이, 배추김치, 가지양념구이, 고구마줄기들깨나물, 밤·대추 채가 들어간 들깻잎조림, 구워서 한 입 크기로 잘라 무친 건 서대, 갑장과 등이 반찬으로 나왔다.  
백화반 비비는 양념인 맛간장.

백화반 비비는 양념인 맛간장.

백화반을 맛간장으로 비비고 금태구이 한 도막을 올렸다.

백화반을 맛간장으로 비비고 금태구이 한 도막을 올렸다.

이날 백화반에는 박나물을 중심으로 익힌 무나물과 생 더덕 채를 올렸다. 요즘 박에 한창 살이 오를 때여서 그런지 좋은 박이 들어와 나물 수를 줄이고 박나물 중심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밥쌀은 해남 ‘한눈에 반한 쌀’과 철원 고시히카리[越光]를 쓴다고 했다. 비빔밥 양념으로 나온 맛간장은 흥선대원군 집안 내림음식. 간장에 소고기와 양념채소를 넣고 1시간 중탕해서 만든다. 갑장과는 이름은 낯설지만 장아찌의 다른 이름이다. 장아찌를 한자로 장과(醬瓜)라 하는데, 갑자기 (열처리를 해서) 만든 장아찌가 ‘갑장과’다. 이날 갑장과 재료는 무·고춧잎·오이였다. 농촌에서는 가을에 묵은 채소들로 담갔다. 조선간장에 넣어 담그는데 너무 짜면 찬으로 만들 때 살짝 씻어서 무치기도 한다고 했다.
 
반찬 종류가 다른 날보다 상당히 많았다. 이유를 묻자 박 연구원은 “오늘 우연히 재료들이 많이 생겨 연구·실습을 많이 하다 보니 반찬이 많아졌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한식의 요체에 대해 “간장·된장·발효 없이 우리 음식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소견을 맑혔다.
 
⑥(Dessert) 복숭아빙수, 건시단자, 대추고, 차

 복숭아빙수.

복숭아빙수.

고종시로 만든 곶감으로 동부 앙금을 감싼 건시단자(왼쪽)와 누가를 섞은 대추고.

고종시로 만든 곶감으로 동부 앙금을 감싼 건시단자(왼쪽)와 누가를 섞은 대추고.

빙수는 복숭아 즙과 사과주를 섞어 셔벗처럼 얼리고 복숭아 과육을 콩알 크기로 깍둑썰기 해 올렸다. 내 입맛에 맞춘 듯 인위적 단맛 없이 상큼하고 깔끔했다. 건시단자는 곶감에 동부 앙금을 넣고 김밥처럼 말아 잘랐다. 일반 감보다 알이 잘지만 씨가 없고 맛이 단 고종시(高宗柹)를 말린 곶감을 썼다. 대추고는 대추 진액을 엿처럼 고아 누가(nougat)를 버무리고 굳혀 사각으로 잘랐다. 차는 죽순속껍질차였다. 제철에 모아 삶고 말려서 덖은 죽순 속껍질을 따끈하게 우려서 냈다. 
죽순속껍질차.

죽순속껍질차.

음식이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우나 지나치지 않고 맛은 점잖으면서 깊었다. 먹어본 한식 중에는 공명이 가장 큰 음식이었다. 특이한 것은 김치를 빼면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음식은 고춧가루 없이는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없어도 음식이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345년 전인 1672년 석계부인 안동장씨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한글로 쓴 요리책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146개 항목의 음식에 고춧가루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고추가 한국음식의 절대 유전자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주방에 8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지만 모든 음식의 조리와 차림을 방장인 조은희 선임연구원이 주도하는 것도 먹는 사람으로서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서빙과 설명은 박성배 선임연구원이 도맡았다.
  
온지음은 내년 3월께 서울 종로구 효자로 49(창성동 17-1) 유니세프 건물로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좀더 넓은 곳으로 가서 일반인과 접점을 늘릴 계획이다. 좌석을 2인석부터 큰 자리까지 한 끼에 3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의 정찬 코스를 유지하면서 조금 가벼운 코스도 낼 예정이다. 이에 대비해 7명이던 연구원을 최근에 1명 늘렸다. 박 연구원은 ”다양한 실험을 해볼 생각”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온지음의 연구 결과를 모은 조리서 『온지음이 차리는 맛』 표지.

온지음의 연구 결과를 모은 조리서 『온지음이 차리는 맛』 표지.

 『온지음이 차리는 맛』에 실린 음식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는 도미찜. 만석꾼이던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 음식이다.

『온지음이 차리는 맛』에 실린 음식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는 도미찜. 만석꾼이던 진주허씨 묵동댁 내림 음식이다.

온지음은 연구하고 검증 받은 음식을 세상에 알리는 작업도 한다. 지난해 조리서 『온지음이 차리는 맛』(중앙M&B)을 냈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나는 그 책을 샀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난 6월에는 영문판도 나왔다. 영문판은 해외에서 직업으로 한국음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가 될 듯하다. 베를린에서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Bib Gourmant)을 받은 한국음식점 ‘고춧가루 (http://www.kochukaru.de/)’를 운영하는 내 친구, 스페인 출신 호세(Jose Antonio Miranda Morillo) 셰프가 그런 사람이다. 한국인 부인 빈(Bini Lee)씨에게 영문판 소식을 전하니 반색을 했다.

온지음은 음식에 어울리는 기물과 차림 연구도 한다. 기물 수장고에 있는 그릇들은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온지음은 음식에 어울리는 기물과 차림 연구도 한다. 기물 수장고에 있는 그릇들은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맛공방이 있는 통의동 35의 32, 33번지 건물은 아름지기 사옥이다. 조선 시대 창의궁(영조가 왕이 되기 전 연잉군으로 살던 잠저)이 있던 곳이다. 터가 2만1175㎡(7000평)이었는데 광복 이후 108개 필지로 쪼개져 팔릴 때 구획된 동남쪽 모퉁이 613.5㎡(185.6평)에 해당한다. 그 자리에 ‘작품급’ 건물을 올렸다. 더 상세한 내용은 아름지기 재단 블로그(http://arumjigi09.blog.me)에 실린 글 2편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①땅에 얽힌 사연: ‘아름지기 공감’ 카테고리에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쓴 ‘아름지기의 새 터-서북촌의 역사’(2017년 4월 27일) ②건물의 의미: ‘아름지기 소식’ 카테고리에 ‘통의동에 자리 잡은 아름지기의 새로운 집’(201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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