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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 "원없이 부어라" 나는 원부술집 사장 원부연입니다

 "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14명의 이웃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 당신은 왜 일하는가' 네번째 주인공은 원부연 씨입니다. /특별취재팀
 

잘 나가던 광고기획자에서 술집사장님으로 변신한 원부연(사진) 씨는 "조금 더 어렸을 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김현예 기자

잘 나가던 광고기획자에서 술집사장님으로 변신한 원부연(사진) 씨는 "조금 더 어렸을 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김현예 기자

 
기승전 ‘주(酒)’
 
 한눈에도 딱 학교 가는 여학생 모양새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발머리. 가방을 둘러매고 신촌 거리를 부지런히 걷는다. 하지만 여자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모어댄위스키’란 이름의 작은 술집 앞이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게 문을 여는 여자. 지난달 18일 오전 10시 ‘원부술집’ 사장 원부연(33) 씨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퇴근길에 들린 손님 행세를 해보고 싶어 바에 앉으니, 바텐더 자리에 선 그가 달가닥 달가닥 얼음 소리를 내며 와인잔에 토닉워터를 따라준다. 
“마음 같아선 술을 하고 싶은데, 아침부터 술 마시긴 그러니까 토닉워터로 해요. 토닉워터도 맛이 참 다양한 거 아세요?”
 
"아침부터 술은 좀 그렇죠?" 오전 10시 서울 신촌의 '모어댄위스키'에서 만난 술집사장 원부연씨는 토닉워터를 건넸다. 김현예 기자

"아침부터 술은 좀 그렇죠?" 오전 10시 서울 신촌의 '모어댄위스키'에서 만난 술집사장 원부연씨는 토닉워터를 건넸다. 김현예 기자

 
 화장기 없는 앳된 얼굴의 이 사람, 한 때 잘 나가던 광고기획자였다. 입사 8년째 되던 해 회사를 때려치우고, 2013년 자기 이름을 딴 ‘원부술집’을 차렸다. 그리고도 모자라 지난해 두 번째 술집 ‘모어댄위스키’를 냈고, 최근 세 번째 술집 ‘하루키술집’을 개시했다. 네 번째 술집도 자리를 봐두고 밑그림을 그려놨단다. 천생 모범생처럼 보이는 그는 어쩌다 술집 사장님이 됐을까. 
 
원부연씨가 운영하는 '원부술집' 로고. 그가 직접 제작했다.

원부연씨가 운영하는 '원부술집' 로고. 그가 직접 제작했다.

  
‘토굴’에 빠지다
 중학생 원부연은 아이돌그룹 ‘젝스키스’의 열혈 팬이었다. 은지원·강성훈 ‘오빠’에게 푹 빠져 살았다. 공연을 보러 학교를 빼먹고 부산까지 간 적도 있다. 어지간히 부모님 속을 썩이던 그가 달라진 것은 고등학생 때다. 처음에는 그저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하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예의 ‘빠순이’ 기질이 발동됐다. 3년간 열심히 책을 판 끝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생이 된 뒤 잠잠해졌나 싶던 그의 '빠순이' 기질은 3학년 때 또 한번 튀어나왔다. 친구 권유로 뒤늦게 연극동아리에 가입했는데, 또 푹 빠져버렸다. 그의 인생을 휘저어 놓은 동아리 이름은 ‘토굴’. 사회과학대학 건물 계단의 구석자리를 막아서 만든 동아리방이 토굴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TV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로 유명한 나영석 PD가 이 동아리 출신인데,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다”고 소문날 만큼 선·후배 사이가 끈끈했다. 
 
 ‘토굴’에서 처음 접한 연기는 매력적이었다. “연기는 자기를 표현하고 분출해 내는 수위가 높은 행위잖아요. 기본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에너지가 높은데, 동아리 경험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극본에 따라 연출하는 일을 경험하면서 제 능력과 장점을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동아리에서 경험한 ‘늦바람’은 무서웠다. 선배들이 권하는 것들이 족족 인생에 스며들었다. 광고기획자가 된 것도 선배가 ‘인턴 자리가 있는데 한 번 해보라’고해 덥석 응했던 게 인연이 됐다. 
 “선배들과 술 먹고 이야기를 하다 영감을 얻는 일이 많았어요. 광고회사도 처음에는 ‘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권하니 ‘해보지 뭐’ 한거죠.”
 
술집 사장님 원부연씨의 '원부술집' 전경. "원없이 부어라"의 준말이자 자신의 이름을 따 상호를 지었다.[사진 원부연]

술집 사장님 원부연씨의 '원부술집' 전경. "원없이 부어라"의 준말이자 자신의 이름을 따 상호를 지었다.[사진 원부연]



내가 주(酒)도적으로 하는 일

 

 동아리 시절 연극 연습을 하다 지치면 우르르 술집으로 몰려가 술을 마셨다. 술잔 위로 ‘연기란 무엇인가’란 질문부터 정치·사회 문제까지, 청춘들의 온갖 고민이 오갔다. 하지만 술상 위 갑론을박은 결국 “아이 모르겠다. 술이나 마셔”란 레퍼토리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 시절 그는 술자리 분위기 메이커였다. 술을 재미있게 먹는 게 좋아, 이벤트를 준비하고 사회를 봤다. 하다보니 술, 술자리, 사람, 공간을 염두에 두는 게 습관이 됐다. ‘오늘은 어디가지? 누구랑 가지? 그럼 이런 자리였으면 좋겠다’하고 머릿속에 그리곤 했다. 
 
 그렇게 술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취직을 했는데, 어느 날 비보가 날아들었다. 단골 술집 사장님이 폐업을 선언했다는 소식이었다. 신촌의 ‘아름다운 시절’, 동아리 선후배들과 제집처럼 드나들며 민중가요를 ‘떼창'했던 곳이다. 
 
 추억이 서린 술집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동아리 선·후배와 셋이 맡아 운영해 보기로 했다. 후배가 주로 일을 하고 그는 퇴근한 다음 가게를 지켰다. ‘아름다운 시절’이 잘 굴러가자, 가슴 속에 ‘내 브랜드로 술집 내볼까’하는 로망이 싹텄다. 다니던 광고회사에 사표를 내고 가게를 차렸다. 그의 첫 술집 서울 상암동 ‘원부술집’은 그렇게 태어났다.

 
 
술 이상의 것을 공유(More than whisky)하고 싶은 꿈을 하나씩 이루고 있다. 신촌 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모어댄위스키'에선 종종 공연도 열린다. [사진 원부연]

술 이상의 것을 공유(More than whisky)하고 싶은 꿈을 하나씩 이루고 있다. 신촌 골목 한 귀퉁이에 있는 '모어댄위스키'에선 종종 공연도 열린다. [사진 원부연]

 
  
 ‘원부술집’은 직장인들이 친구집 놀러가듯 마음 편히 한 잔 걸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이다. 가게 이름은 자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원없이 (술을) 부어라”의 준말이기도 하다. 
 
 “술집을 하다보니 회사다닐 때랑 다른 게 많았어요. 일단 낮밤이 바뀌죠. 술집이 일터가 되니, 정작 제가 ‘짠!’하고 한 잔을 할 수가 없는 거에요. 술을 못 즐기는 처지가 됐죠. 함께 마실 사람도 없고요.” 
 
 가게 영업을 마치고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새벽 3~5시까지 하는 바 뿐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낯선 술 브랜드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직접 바를 차리기로 했다. ‘오가며 들릴 수 있도록 1층에 자리잡은 편한 캐주얼 위스키 바'를 컨셉으로 잡았다. 그의 두 번째 술집 ‘모어댄위스키’의 시작이었다. 
 
퇴근 길에 마주친 푸근한 술집. 한 잔을 걸치면서 하루의 피곤을 덜어내는 곳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혼술 손님을 위해 가져다 놓은 시집 한 권이 바 귀퉁이에 놓여있다. 김현예 기자

퇴근 길에 마주친 푸근한 술집. 한 잔을 걸치면서 하루의 피곤을 덜어내는 곳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혼술 손님을 위해 가져다 놓은 시집 한 권이 바 귀퉁이에 놓여있다. 김현예 기자

 
 세 번째 ‘하루키술집’을 차린 건 순전히 “생맥주는 왜 500cc만 팔까”라는 고민 때문이었다. 정말 가볍게 '딱 한잔'만 마시고 갈 수 있게 500cc ‘반잔’을 팔기로 하고 가게를 또 열었다. 
 
 “가게 이름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서 이름을 땄어요. 우리 세대의 상징같은 소설가이니까요. 메뉴판도 소설에서 등장하는 것들로 채웠어요. 어느 날 손님이 ‘어?’ 하고 알아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 hykim@joongang.co.kr
 
최근 문을 연 '하루키술집'. 오며가며 시원한 맥주 '반잔' 딱 들이킬 수 있는 그런 술집으로 꾸렸다. 일본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에서 따왔다.

최근 문을 연 '하루키술집'. 오며가며 시원한 맥주 '반잔' 딱 들이킬 수 있는 그런 술집으로 꾸렸다. 일본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에서 따왔다.

나는 왜 일하는가
 나에게 술집이란,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모든 곳이 시작되는 시작점 같은 곳.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술집한다’고 하면 사람들 반응이 뜨뜨미지근했다. 나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예전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사 그만두고 술집 나가는 사람”이란 비하발언(?)을 듣기도 했다. 친정 부모님조차도 “시어머니가 걱정하겠다”며 말렸다. 정작 시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렇지만 일은 정말 재미있다. 재미있어 죽을 정도다. 장사해서 돈 버는 재미는 오래 안 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나는 이 ‘재미’로 일을 한다. 

 
 참고로 ‘가게를 연달아 내는 걸 보면 돈이 많은가 보다’고 할 사람들을 위해 미리 고백한다. ‘원부술집’은 8년 다닌 회사 퇴직금으로 마련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인테리어 등 시설투자비 1500만원이 들었다. ‘모어댄위스키’는 6000만원, ‘하루키술집’은 4500만원을 투자했다. 다해서 1억 남짓 돈을 들인 셈이다.
 
'모어댄위스키' 문을 연 원부연(사진) 씨가 가게 곳곳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곳을 열려고 바텐더와 함께 위스키 공부도 했다. 김현예 기자

'모어댄위스키' 문을 연 원부연(사진) 씨가 가게 곳곳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곳을 열려고 바텐더와 함께 위스키 공부도 했다. 김현예 기자

 
 요즘엔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면 또 얼마나 즐거울까. 이름도 생각해뒀다. 원부음주문화연구소. 어떤 공간을 만들지 연구하고 고민하는 회사가, 이 원부음주연구소의 핵이 될 거다. 
 

일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그러니 안 할 이유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이었고,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 내 일,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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