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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첫 발을 내딛으세요"…경단녀 돕는 경단녀 출신 일자리설계사

두 아들 잘 키우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둔 지 12년이 됐네요. 아이들은 잘 자랐지만 저는 나이가 들었고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자격증은 따도 경력이 없으니 민간 기업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나이 제한 때문에 서류도 넣지 못하는 곳이 태반인데 이렇게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게 생각합니다.”
 
추현정(47)씨는 면접을 준비하며 며칠 밤을 샜다. 면접 전날은 준비한 자기소개를 잊어버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밤새 몇 번이나 눈을 뜨고 감았다고 했다. 서울 중구청에 마련된 면접장에 들어선 그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저는 10년 넘게 의류 브랜드의 매출 관리를 담당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라고 시작하는 자기소개의 첫 문장을 머릿 속에서 지웠다. ‘민낯’을 드러내기로 했다. 그는 “두 아들을 키우며 단절된 경력을 애써 감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 왠지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추씨는 지난해 6월23일 합격 통지서를 받고 '경력단절녀(경단녀)'라는 꼬리표를 뗐다. ‘직업상담사’라는 명함을 갖고 12년 만에 다시 사회에 발을 내딛은 날이다. 자격증을 따고, 이력서를 쓰고, 면접 전형을 거친지 약 6개월만이었다. 
 
제2의 인생 추천한 상담사와 같은 직업 갖게 돼
 
앞서 지난 1월 마포구에 위치한 서부고용센터를 찾은 추씨는 적성 검사에서 대인 관계와 공감 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저 같은 직업은 어떠세요”. 
검사 결과를 살펴보던 상담사의 한 마디가 추씨의 제 2의 인생에 길잡이가 됐다.

 

2017 뉴딜일자리 참여자 교육에 참여한 추현정씨.서울시는 2013년부터 미취업자에게 공공서비스와 관련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뉴딜일자리사업'을 운영하고 있다.임현동 기자

2017 뉴딜일자리 참여자 교육에 참여한 추현정씨.서울시는 2013년부터 미취업자에게 공공서비스와 관련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뉴딜일자리사업'을 운영하고 있다.임현동 기자

 
추씨가 중구청의 시민일자리 설계사로 일한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그의 하루는 9시 구직자들에게 전화로 새로운 구인 정보를 안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추씨처럼 일자리를 찾는 경단려의 딱한 사정을 듣기도 한다. 오후에는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역과 주민센터 등에 나가 홍보를 한다. 구인난을 겪는 영세 업체도 방문해 애로 사항을 듣는다. 영세 업체가 높은 수수료를 내지 않고 무료로 각종 일자리 포털 사이트에 구인 공고를 실어주는 일도 그의 업무 중 하나다. 
 
뉴딜일자리 교육에 참여 중인 추현정(왼쪽)씨와, 최윤숙씨. 임현동 기자

뉴딜일자리 교육에 참여 중인 추현정(왼쪽)씨와, 최윤숙씨. 임현동 기자

 
중구청에서는 추씨와 같은 경단녀였던 최윤숙(48)씨를 포함해 4명이 지난 2월말부터 일자리 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취업을 원하는 주민과 주부들을 대상으로 면접 코칭과 일자리 매칭 등의 일을 한다. 5개월간 이들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주민은 총 44명이다. 지난해 일자리설계사를 포함, 서울시 뉴딜 일자리 참여자 52%가 재취업 및 창업에 성공했다.
 
중구청 시민일자리설계사들이 구청 방문이 어려운 취약 계층을 위해 '찾아가는 일자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중구청 시민일자리설계사들이 구청 방문이 어려운 취약 계층을 위해 '찾아가는 일자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

 
“경단녀에겐 첫 단추 꿰는 것도 큰 산”
 
추씨는 경단녀를 위한 취업 팁으로 “일단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전화를 걸어 ‘제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습니다. 목표 업무를 설정하는 첫 단추마저도 큰 산인 거죠.” 
 
추씨는 그럴 때마다 서부센터에서 받은 도움을 떠올린다. 면접 코칭을 할 때도 스스로 경단녀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구직자의 기운을 북돋는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워크넷과 자치구 취업지원 프로그램, 구직자에게 재교육비용을 지원하는 '취업성공패키지' 등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갈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중구 주민들이 '찾아가는 일자리 상담소'에 마련된 채용정보 표지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서울시]

중구 주민들이 '찾아가는 일자리 상담소'에 마련된 채용정보 표지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 2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추씨에게 물었다. “10점 만점에 8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머지 2점은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소개해드리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이라고 했다.
 
경단녀들은 40대인 경우 많기 때문에 나이 제한에 걸려 이력서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열려있는 곳은 판매직·단순노무직 등 저임금 업종이 대부분이다. 추씨는 “급여 수준이 너무 낮아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경단녀는 약 190만명이다. 30대 기혼 여성 3명 중 1명꼴이다.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육아 등의 이유로 10명 중 3명은 1년 만에 다시 '경력'을 포기한다. 
 
여성들의 경우 경력 단절 이전에 판매직·단순노무직 등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한 비율은 30%지만, 재취업 이후에는 이 비율이 50%로 높아진다. 일단 경력이 단절되면 이전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저임금·저부가가치 일자리로 유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민간취업포털의 조사 결과 기업 관계자 500여 명 중 40%가 ‘경단녀 채용에 부담 느낀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가정사로 자리를 자주 비울 것 같아서’ ‘야근, 출장이 어려울 것 같아서’가 각 59%와 34%를 차지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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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