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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경보 사이렌 울려도 … 택시는 질주하고 행인들은 “왜 길 막나”

23일 오후 2시 경기도 화성시 기흥CC 1번 홀. “딱~.” “그렇지!”
 
50~60대 남성 3명이 동반자의 티샷을 보며 소리쳤다. 이들이 골프를 즐기던 시간 전국에서 북한의 공격을 가상한 민방공 대피훈련이 시작됐다. 도심에서는 공습경보와 사이렌이 울렸지만 기흥CC엔 훈련 관련 어떤 안내방송도 들리지 않았다.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골프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민방위 훈련이 실시된 23일 오후 공습경보가 발령됐지만 서울 광화문 일대 시민들이 훈련통제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거리를 지나고 있다.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연합뉴스]

민방위 훈련이 실시된 23일 오후 공습경보가 발령됐지만 서울 광화문 일대 시민들이 훈련통제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거리를 지나고 있다.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해야 한다. [연합뉴스]

이날 오후 2시부터 전국에서 20분간 진행된 훈련에서 시민들의 ‘안이한 안보의식’과 관계 당국의 ‘부실한 준비’가 그대로 드러났다. 많은 시민이 훈련관들의 통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고 일부 운전자는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차를 몰았다. 건널목에선 시민들이 “왜 못 가게 하느냐”며 통제요원에게 항의했다. 중앙일보 기자들이 서울과 대전·화성·대구·울산·전주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훈련상황을 점검했다.
 
훈련이 시작되자 울산시 남구 달동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127번 시내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주춤했다.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은 통제요원 2명이 건너편에서 차량 진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훈련이 한창인데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시민 5명이 버스기사의 만류에도 버스에 올라탔다. 훈련 매뉴얼에 따르면 승객들은 재난방송을 청취해야 하지만 대부분 스마트폰에만 집중했다. 대학생 김노경(20)씨는 “대피훈련인데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대전시 서구 이마트 둔산점에선 안전요원들이 유도봉을 들고 정문 입구를 지켰다. 고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부 고객은 막무가내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20대 중반 여성은 “지금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안전요원의 말을 듣자 고개를 돌려 쏘아본 뒤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둔산동 방죽네거리에서는 승용차 수십 대가 경찰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질주했다. 호루라기를 불고 통제봉을 흔들어도 따르지 않았다. 한 택시기사는 창문을 열고 “날도 더운데 이런 걸 왜 하느냐”며 짜증을 냈다.
 
전주시 금암동 전북대 캠퍼스도 사정은 비슷했다.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중앙도서관에 있던 대학생 대부분은 잠시 두리번거릴 뿐 하던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사이렌 소리가 왜 나는지 모르는 학생도 많았다.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김모(23·여)씨는 “이게 무슨 소리냐. 무슨 일이 났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학생이 2만여 명인 전북대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몸을 숨길 수 있는 공식 대피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만든 재난안전정보 포털 앱 ‘안전디딤돌’로 검색해 보니 전북대 반경 500m 안에는 민방공 대피소로 지정된 장소가 한 군데도 없었다.
 
오후 2시5분 대구중부소방서에서 소방차 6대와 소방지휘본부 차량 1대가 출발했다. 소방차가 사이렌을 켜고 이동하면 차량들이 도로교통법에 따라 길을 양보하는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소방차가 명덕네거리 앞에 도착하자 빨간불이 켜지며 3차로가 막혔다. 하지만 이른바 ‘모세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 차량은 소방차 앞으로 끼어들기도 했다.
 
이날 민방공 대피훈련 사이렌이 울린 순간 서울역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사이렌 스피커를 잠시 올려다봤지만 대피요령대로 지하로 내려가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울역 안 대합실에서도 훈련에 신경 쓰는 사람들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던 김모(22)씨는 “오늘 훈련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며 “어디로 대피를 해야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이재오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다수 시민이 본인의 일이 아니고 실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와 관계 당국은 홍보와 교육을 강화하고 국민은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화성·전주·서울=신진호·김민욱·김준희·송우영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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