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논설위원이 간다] 카카오뱅크 ‘코너 오피스’에는 대표이사가 없다

서경호의 산업 지도
카카오뱅크 사무실에서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지상민씨.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그는 리스크를 담당하는 뱅커다. 사무실에서의 킥보드 이동이 카카오뱅크의 속도 경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최정동 기자]

카카오뱅크 사무실에서 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지상민씨.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의 그는 리스크를 담당하는 뱅커다. 사무실에서의 킥보드 이동이 카카오뱅크의 속도 경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최정동 기자]

‘코너 오피스(corner office)’는 일반적으로 빌딩의 네 귀퉁이 사무실을 가리킨다. 가장자리에 있으니 창문이 두 방향으로 트여 있어 전망이 좋다. 분위기 끝내주는 이런 사무실은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C자로 시작하는 ‘C레벨’ 경영진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월급쟁이가 조직의 사다리를 한발 한발 힘겹게 올라 고위 임원을 꿈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이하 카뱅)는 영 딴판이었다.
 
2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231번지.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H스퀘어 S동 5층 전체를 카뱅이 쓰고 있었다. 한쪽 코너 오피스는 직원용 휴식공간이었다. 빵 등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게임기가 놓여 있고 전망 좋은 한쪽 자리를 해먹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해먹 위에서 한 직원이 세상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뭔가를 읽고 있었다. 사무공간 중앙의 안내데스크 옆에는 직원용 카페가 있고 반바지를 포함한 캐주얼 차림의 직원들이 자유롭게 오갔다. 카페 옆 복도를 킥보드를 타고 오가는 직원이 눈에 띄었다. 전략·기획파트장을 맡고 있는 이수영씨가 “사무공간이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이어서 ‘멀리(?)’ 오가는 직원들이 사용하는 킥보드가 몇 개 비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카뱅의 C레벨 경영진 자리는 어디일까. 코너 오피스는 물론 창가 쪽 사무실도 아니었다. 창가에서 떨어진, 직원들과 똑같은 자리에서 김주원 이사회 의장(부회장), 이용우·윤호영 공동대표가 옹기종기 마주 보며 모여 앉아 있었다. “아니, 대표이사도 (직원들 눈을 피해)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이용우 대표가 “그럴 땐 잠깐 사라지면 된다”며 농담 조로 답했다.
 
카카오뱅크의 최고경영진 자리는 직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왼쪽부터 이용우 대표, 김주원 이사회 의장, 윤호영 대표. [최정동 기자]

카카오뱅크의 최고경영진 자리는 직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왼쪽부터 이용우 대표, 김주원 이사회 의장, 윤호영 대표. [최정동 기자]

다른 은행엔 있지만 카뱅엔 없는 게 꽤 있다. 우선 사무실에 부서 명칭을 내건 안내판이 안 보였다. “왜 부서 표찰이 안 보이냐”는 질문에 “그게 왜 필요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직원 명함에도 부서 이름이 안 보였다. 직원들끼리는 영어 이름이 통용됐다. 두 대표조차 그저 얀(이용우)·다니엘(윤호영)로만 불린다. 영어 호칭을 쓰는 카카오의 조직문화가 접목돼 있는 것이다. 직급에 따른 복리후생의 차이는 없다. 신입사원부터 대표까지 의료비 지원 등 복리후생이 똑같다. 대단한 평등주의다. 이 모든 게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선택이란다. 전국은행연합회에 정사원으로 가입돼 있는 어엿한 은행이지만 ‘은행장’이란 직함도 없다. “조그만 은행에서 폼 잡을 일 있나요. 내실 따지고 실용적으로 일하면 되는 거지요.” 이 대표의 설명이다.
 
사무실 배치도 독특했다. 곳곳에 회의실이 많았다. 달러·위안·헤알 등 세계의 화폐를 회의실 이름으로 삼았다. 정보기술(IT) 벤처기업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무실 풍경이 ‘그래도 이곳이 은행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포인트였다.
 
지난달 27일 출범한 카뱅은 초반 시장 진입에서 대단한 성과를 냈다. 이달 11일 현재 228만 명이 계좌를 열었다. 예·적금 1조2190억원이 몰렸고, 대출도 8807억원이 나갔다. 현장을 방문한 22일 비공식으로 집계한 가입자는 280여만 명, 체크카드 신청은 200만 장에 달했다. 윤호영 대표는 “고객 중심으로 준비를 많이 해 이용자가 좋아할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의 팬덤은 예상 못했다”고 말했다. 체크카드 신청과 고객센터 문의가 폭주하면서 업무 처리 지연에 따른 고객 불만이 터져 나왔다. 카뱅은 제2고객센터를 준비하는 등 가입자 증가에 따른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은행권은 카뱅 바람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미 인터넷·모바일 거래 확산으로 대고객 접점인 지점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카뱅 같은 인터넷전문은행까지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은행권에서 불고 있는 지점 통폐합 바람이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증권가에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정착되면서 증권사 객장을 찾는 고객이 확 줄어들고 결국 지점망 축소로 이어진 것과 흡사하다. 금싸라기 땅에 은행 지점이 들어가는 관행도 바뀌고 있다. 카뱅 바람이 머지않아 명동·을지로·여의도의 은행가 지도를 확 바꾸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창가쪽 사무실인 코너 오피스에 마련된 직원 휴게실에서 늘어지게 쉬고 있는 직원.[최정동 기자]

창가쪽 사무실인 코너 오피스에 마련된 직원 휴게실에서 늘어지게 쉬고 있는 직원.[최정동 기자]

금융 당국은 카뱅 같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은행업계의 ‘메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카카오뱅크 돌풍은 공급자 중심 금융서비스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며 “앞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권 전반에 경쟁과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작지만 강한 플레이어’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뱅 돌풍 이후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가 하락하고 은행의 모바일뱅킹 앱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카뱅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기존 은행이 카뱅의 속도와 기업문화를 따라오기는 힘들다고 봤다. “기존 은행이 우리만큼 절박함이 있을까. 그들에게는 모바일이 또 하나의 채널일 뿐이지만 우리는 아니다.”(이 대표) “우리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인터넷은행을 지향하지 않았다. 모든 은행 업무를 A에서 Z까지 오로지 모바일에서 시작해 모바일로 끝나는 완결성을 추구했다. 이 점은 다른 은행이 따라올 수 없다. 우리는 지점 방문은 물론 PC뱅킹도 필요 없는 업무 처리방식을 구현했다.”(윤 대표)
 
하지만 카뱅이 넘어야 할 고개는 많다. IT를 이용해 고객의 접근성·편리성을 높인 건 분명하지만 상품 개발, 새로운 타깃고객 확보 등에서는 아직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은 아무래도 자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 은행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별로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무엇보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이라는 점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올 연말까지로 예정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 면제 등 초반 마케팅 차원의 혜택이 사라져도 꾸준히 흥행을 이어 갈 수 있을까. 몸집을 불리는 것도 과제다. 카뱅은 얼마 전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기존 자본금은 3000억원이다. 자본금을 늘리면 대출 여력이 커진다. 몸집을 키워야 맷집도 커진다. 맷집이 세야 싸움판에서 유리하다. 그래야 자산의 부실을 견뎌 낼 수 있고 새로운 서비스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카뱅이 그저 메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은행으로 우뚝 서겠다”고 했다. “3년이면 예금과 대출로 이익(순이자마진·NIM)을 낼 수 있다”고도 했다. 혈기방장한 새내기 카뱅의 거침없는 실험이 정부의 품 안에서 손쉽게 영업해 온 은행업계의 지각 변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꼭 그렇게 됐으면 한다.
 
서경호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