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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퍼스펙티브] 역사의 교훈은 준비된 리더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쿠바 미사일 위기와 북한 미사일 위기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쿠바 미사일 위기다. 고전(古典)에서 지혜를 구하고, 교과서에서 답을 찾듯이 55년 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교훈을 얻자는 취지일 것이다. 냉전의 두 축이었던 미국과 소련을 핵전쟁 일보 직전까지 몰고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진부해진 표현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발단은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유인 정찰기가 쿠바 상공에서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를 판독한 미 정보분석관들은 소련이 중거리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미 본토에서 불과 140㎞ 떨어진 곳에 적국의 핵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해 비상벨을 눌렀다.
 
협상으로 위기를 극복한 역사적 사례를 분석해 지난해 『협상의 전략』이란 책을 낸 김연철(인제대) 교수는 “케네디가 NSC를 소집한 10월 16일부터 미국과 소련이 극적으로 타협한 28일까지 13일간의 기록은 게임 이론을 비롯해 온갖 국제정치 이론이 망라된 외교사의 전설이자 위기관리 리더십의 교과서가 됐다”고 말한다. 위기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면이 13일간의 드라마에 집약돼 있다는 것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와 북한 핵·미사일 위기를 단순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만큼 어이없는 일이다. 생김새만 비슷할 뿐 알맹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미국이 관련되고, 핵미사일이 갈등의 핵심이란 점을 빼고는 배경과 주체에서 발단과 경과까지 어느 하나 닮은 데가 없다. 김 교수는 “쿠바 미사일 위기는 단기간에 벌어진 일인데 비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30년에 걸친 장기적 불신의 결과”라며 “불신이 깊고 협상 자체가 복잡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결 과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존 델러리(연세대) 교수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갑자기 발생한 탓에 전쟁보다 외교로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압력이 미·소 양측에 작용할 수 있었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은 수십 년에 걸쳐 악화된 문제이기 때문에 빠른 해법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위기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 위기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로 좁혀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북·미 간 진짜 위기는 지난달 북한이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달 4일 미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2형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시험발사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시애틀까지 사정권에 들어가는 화성-14형 ICBM을 시험발사했다.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의 무기화에 바짝 다가섬으로써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불량국가’ 북한이 ‘초강대국’ 미국을 핵무기로 위협하는 문제로 차원이 달라졌다. 게임 자체가 바뀐 것이다.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가 포착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됐듯이 북한의 ICBM 시험발사를 계기로 북한 미사일 위기의 막이 올랐다. 뉴욕타임스의 표현대로 ‘느린 동작(slow motion)으로 진행되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워싱턴을 덮치면서 북한 미사일 위기는 비로소 쿠바 미사일 위기와 일정한 유사성을 띠게 된 것이다.
 
 
ICBM 시험발사가 변곡점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북한 미사일 위기는 미 본토에 대한 핵 위협이란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며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를 쿠바에서 철수시킨 것처럼 북한의 ICBM 개발을 어떻게 중단시킬 것인가가 미국의 중대한 안보 현안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델러리 교수도 “미국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의 고조라는 측면에서 두 위기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고 말한다. 가난하고 후진적인 공산국가 쿠바가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보유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사태로 여겼던 것처럼 지금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도 똑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소련이 ICBM 능력 면에서 미국에 대한 열세를 만회할 목적으로 미국의 앞마당에 있는 위성국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시작됐다. 쿠바의 혁명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 또한 미국의 침공을 막는 억제 수단으로 소련의 핵미사일이 필요했다. 쿠바 혁명정권 전복을 노린 피그만 상륙작전에서 굴욕적 패배를 맛본 미국이 반드시 쿠바를 다시 침공할 것으로 카스트로는 확신하고 있었다. 요컨대 소련의 핵미사일 배치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와 카스트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그럼에도 위기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미국과 소련이었다. 쿠바는 무대를 제공했을 뿐이다.
 
김현욱(국립외교원) 교수는 “쿠바 미사일 위기는 강대국 간 위기인 반면 북·미 간 위기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 위기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쿠바를 다시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소련은 미사일 기지 건설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는 북한은 미국이 어떤 제안을 해도 ICBM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동일 선상에 놓고 두 위기를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은 핵탄두를 탑재한 ICBM 개발을 완료해 실전배치하는 결승선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추진체에서 분리된 핵탄두를 무사히 대기권으로 재진입시키는 기술과 핵탄두를 제어·유도하는 기술을 마스터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르면 1년 내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이 처음으로 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2017년 7월 4일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북한 미사일 위기의 시곗바늘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골인 지점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 평양과 위기의 시곗바늘을 멈춰세우려는 워싱턴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조성되면서 한반도 위기지수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레드라인’이라고 밝힌 ICBM 실전배치까지 남은 길지 않은 기간이 북한 미사일 위기의 향배를 결정하는 운명의 시간이다. 그 열쇠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이 쥐고 있다.
  
냉정과 자제로 쿠바 위기 해결
 
김연철 교수는 선제타격을 주장하는 강경론이 압도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열린 토론을 통해 해상봉쇄라는 제3의 방안을 찾아낸 케네디의 리더십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흐루쇼프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누르고 끝까지 이성적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았기에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를 합리적 행위자로 인정하고 끝까지 이성적으로 접근한 케네디의 리더십이 핵전쟁을 막았다는 얘기다.
 
흐루쇼프는 피그만 침공 작전에 실패한 케네디를 먹물만 먹고 큰 우유부단한 애송이로 보고, 미국의 코앞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케네디가 뜻밖에 해상봉쇄 카드로 강하게 나오자 흐루쇼프는 먼저 한발 물러섰다. 쿠바에 대한 불가침과 터키에 배치된 중거리 핵미사일 철수를 약속하면 쿠바에서 철수하겠다는 뜻을 은밀히 전했다. 명분과 실리 둘 다를 요구한 것이다. 케네디는 두 가지를 다 수용했다. 다만 두 번째 요구에는 터키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이 동의할 때까지 서로 비밀로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미 본토의 안전이 동맹국의 안보에 우선한다는 생각에는 케네디와 트럼프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종수(하버드대 데이비스센터 연구원) 박사는 “단호한 결의와 외교적 유연성의 결합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한 요체였다”며 “케네디는 비밀접촉을 통해 서로의 체면을 살리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고 말한다. 케네디와 흐루쇼프 모두 상대의 메시지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정확하게 읽어 오해와 오판을 줄인 것도 위기 해소의 중요한 열쇠였다고 그는 지적한다. 위기 국면에선 상대의 오판을 유발할 수 있는 불필요한 언사를 자제해야 하는 이유란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김정은의 리더십
 
트럼프와 김정은에게서 성숙한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북한 미사일 위기의 진짜 심각성이 있다. 마구 쏘아대는 말폭탄이 보여준 대로 두 사람 모두 예측불허의 불안정한 지도자다. 더구나 트럼프는 국내적으로 심각한 리더십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그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튈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리더십이다. 역사의 교훈은 준비된 리더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북한이 ICBM 무기화라는 레드라인을 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쟁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면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김정은의 체면을 살려주고, 물러설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제안은 당연히 한·미 양국이 주도해 중국·일본 등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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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