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혜진아 ‘프로 잡는 아마’ 명성에 발목 잡히지 말기를

프로 대회에서 2승을 거둔 18살 여고생 아마추어 최혜진. 24일 프로에 데뷔한다. [KLPGA 제공=연합뉴스]

프로 대회에서 2승을 거둔 18살 여고생 아마추어 최혜진. 24일 프로에 데뷔한다. [KLPGA 제공=연합뉴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아마추어 최혜진(18·학산여고3)이 23일 생일잔치를 하고 24일 프로로 전향한다.
 
최혜진이 태어난 지 25일째 되던 1999년 9월 18일. 당시 16세의 여고 1년생 임선욱(34)은 KLPGA 투어 신세계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시즌 2승을 했다. 당시 일간지 골프담당 기자였던 유상건 상명대 교수는 “스윙이 아주 예뻤다. 눈매가 선하면서도 당차고, 차돌 같은 느낌을 주는 선수였다”고 기억했다.
 
당시 고교 1학년 임선욱은 프로대회에 5차례 출전, 2승을 거두고 준우승도 두차례나 차지했다. 만약 임선욱이 프로 자격으로 상금을 받았다면 상금랭킹 1위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임선욱

임선욱

임선욱은 박세리·김미현을 잇는 한국의 에이스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임선욱은 이듬해 프로가 됐다. 2년간 3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액수를 받고 후원 계약도 체결했다. 임선욱은 프로 데뷔전에서는 7등을 했다. 신인이던 2000년 매치플레이로 치러진 프로최강전 16강전에서 박세리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임선욱은 결승까지 올랐다가 정일미에 패해 준우승했다. 이후엔 기대만큼 성적이 잘 안 나왔다. 임선욱은 “2~3년간 KLPGA 투어에서 그린적중률이 3위 안에 들었는데 퍼트 때문에 고생했다”고 말했다.
 
2005년 일본 투어로 건너갔다. 첫 해는 조건부 시드를 가지고 뛰었다. 2006년 풀시드를 땄지만 드라이버 입스로 고생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입스의 저주를 풀었다. 2007년 시즌 최종전인 ADT챔피언십에서 우승 기회를 잡았다. 최종라운드를 2타 차 선두로 출발했다. 동반자는 당시 역전의 여왕으로 불렸던 신지애였다. 신지애는 마지막날 임선욱을 제치고 시즌 9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위로 경기를 마친 임선욱은 “프로 7년차인데도 우승을 하지 못해 마음이 급했다. 아마추어 때의 명성을 찾고 싶어 절박한 마음으로 공을 쳤다”고 말했다.
 
이후 임선욱은 뉴스에서 사라졌다. 2012년 은퇴했다. 아마추어로 프로 대회에서 2번 우승했는데 정작 프로가 되어서는 프로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이다. 대표팀 상비군 코치를 3년간 하다 지금은 제약회사 휴온스에서 선수 육성을 하면서 틈틈이 방송 해설도 한다.
 
임선욱은 최혜진의 뉴스를 보고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그는 “최혜진이 아주 경기를 잘 해서 보기 좋았는데 오랜만에 내 이름이 나와서 기분이 묘하더라”고 말했다.
 
임선욱이 프로에 데뷔할 당시 일부 프로골퍼들은 “그가 재능이 뛰어난 골퍼임엔 틀림없지만 성공은 별개문제” 라고 전망했다. “프로가 되면 직업이 된다. 돈이 걸리면 평소처럼 마음 편하게 경기하기가 어렵다”는 이유였다. 주말 골퍼들이 평소에는 잘 하다가도 내기가 걸린 홀에서는 짧은 퍼트를 넣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임선욱은 집안이 유복한 편이었다. 상금에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항상 부담감에 시달렸다. 그는 “프로 잡는 아마추어라는 큰 기대가 오히려 독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톱 10에 많이 들었다. 못한 게 아닌데 주위에서는 ‘왜 우승을 못했느냐’ 고 했다. 예선 탈락이 거의 없었는데 한 번 탈락하면 큰 뉴스가 되더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잊혀지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이를 만회하려고 연습량을 늘리다가 몸에 무리가 생겼다. 전반적으로 여유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임선욱은 또래 다른 아이들처럼 골프를 혹독하게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한 밤 공동묘지 훈련도 했다. 성격이 소심하다고 백화점 1층에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 임선욱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아마추어 때 워낙 연습을 많이 한 터라 정작 프로에 간 뒤엔 지쳤다. 아마추어 때는 다양한 경험을 쌓고, 프로가 되어 골프에 몰두해도 되는데 너무 급했다”고 회고했다. 임선욱은 2012년 은퇴하면서 이름을 서현으로 바꿨다. “선욱이라는 이름이 너무 강한 것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임서현이 후배에게 당부를 했다.
 
“최혜진은 아주 잘 하더라. 반드시 성공할 텐데 그래도 부담을 너무 많이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