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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파업, 자동차 산업 생태계 망가뜨려”

“파업으로 현대·기아차가 감기에 걸린다면, 중소 협력업체는 폐렴을 앓습니다.”
 
현대차·기아차·한국GM의 1차 협력사인 영신금속공업 이정우(55·사진) 사장의 하소연이다. 올해 창립 50주년인 영신금속공업은 평택 포승공단에 위치한 공장에서 620대의 생산설비로 차량용 공구와 볼트·너트를 제조하는 기업이다. 매출의 96%를 국내 완성차 제조사에 납품하기 때문에 한국 자동차 산업 동향이 실적을 직접 좌우한다.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정우 사장은 “완성차 노사분규가 완성차 업체에만 피해를 준다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중소 협력사가 더 큰 피해를 본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노동조합(노조)이 사상 최장 파업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손실 규모는 5조3000억원이었는데, 같은 기간 1차 협력사(2조6800억원)·2차 협력사(1조700억원)도 꽤 큰 손해를 입었다. 절대 규모는 협력사가 완성차보다 적지만, 조달할 수 있는 자금에 한계가 있는 협력사 입장에선 감내가 쉽지 않은 금액이다.
 
완성차 입장에서 파업은 시간이 흐르면 가라앉는 ‘멍’이라면, 협력사에 파업은 시간이 지나도 흉터를 남기는 ‘화상’ 같은 사건이다. 완성차는 파업하면 공장이 멈추지만, 부품사는 생산시설을 완전히 멈출 수도 없다. 부품사가 완성차 조립 시점에 맞춰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생산 시스템 때문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공장 근로자들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법적인 문제도 발생하고, 완성차 노조가 언제 갑자기 파업을 풀고 납품을 원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완성차가 파업하면 420명의 공장 근로자는 잔업을 안 할 뿐이지 하루 9시간 동안 공장서 대기한다”며 “완성차가 파업해도 협력사는 평상시의 80~90% 정도의 비용이 꾸준히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갑자기 파업을 풀어도 문제다. 평소보다 많은 물량 납품을 요구하게 되면 특근 인력을 확보하면서 인건비가 더 든다. 그는 “파업으로 발생한 각종 낭비 요인은 고스란히 영업손실로 잡힌다”고 말했다.
 
파업으로 매출이 갑자기 사라지면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다. 장기적으로 자금압박에 직면한다. 그는 “요즘 은행은 분기별로 신용등급에 따라 이자율·대출한도 등을 결정한다. 직전 분기 매출에 차질이 있었다면 다음 분기 결산 과정에서 신용등급을 낮춘다”고 말했다. 더 비싼 이자를 주고 더 적은 돈을 빌리게 되면서 비용 대비 생산성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미래 성장 잠재력까지 발목을 잡는다. 자금 압박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연구개발(R&D) 자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신금속공업은 2년 전만 해도 매출액의 2.3% 이상을 R&D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기아차 헤드라이트에 들어가는 피봇램프(pivot lamp) 전용 볼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자체 R&D로 개발한 이 부품 덕에 독점 공급권도 따냈다. 하지만 “파업으로 금융비용이 늘면 당장 R&D 말고는 줄일 데가 없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R&D를 줄이면 기업 성장성도 감소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R&D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파업이 야기하는 더 큰 문제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자동차 산업은 하청업체가 단계적으로 1만개의 부품을 조립해 상위업체로 납품하면서 하나의 차량을 완성한다. 예컨대 차량 창문을 버튼으로 오르내리는 장치인 유리기어(window regulator) 제품은 3차 벤더가 모터 부속을 제조하고, 2차 벤더는 모터 완제품을 만들면, 1차 벤더가 유리기어 키트를 완성하는 식이다. 완성차 업체는 이 키트를 받아 차량에 조립한다.
 
이런 수직적 구조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상위 기업은 손실의 일부를 하청업체와 분담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완성차 노조가 파업 해서 유리기어 키트 재고 손실이 발생했다면 1차 벤더가 2차 벤더에 재고·손실 비용 분담을 요구한다. 그럼 2차 벤더는 다시 3차 벤더와 비용을 분담한다. 이렇게 되면 재무구조가 취약한 최하위 하청업체부터 무너진다. 반면 완성차 노조가 파업해도 완성차는 망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곳부터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곪아가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이 사장은 현대차·기아차·한국GM 노조에게 “올해 국내 완성차 수출량이 줄어 부품 업계도 적잖은 타격을 받았는데, 제발 장기파업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했다. 또 “한 번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망가지면 되돌리기는 어렵다”며 “부품업계의 생존을 위해서 정부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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