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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위기 KAI, 회생 골든타임 놓치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천공장에서 생산 중인 국산 고등훈련기 T-50. 마하 1.5로 날며, 최대 4.5t의 무장을 할 수 있다. [중앙포토]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천공장에서 생산 중인 국산 고등훈련기 T-50. 마하 1.5로 날며, 최대 4.5t의 무장을 할 수 있다. [중앙포토]

국내 유일의 항공·우주 관련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방산비리 관련 검찰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해외 수주가 중단되고,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런 경영난 사태를 수습해야 할 사령탑은 한 달 넘게 공석이다.
 
KAI의 고위 관계자는 23일 “결론 없이 의혹만 계속 제기되면서 돈을 빨리 돌려달라거나 빌려주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회사 내에선 이러다 흑자도산(일시적 자금 사정 악화로 인한 부도)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룹 체제가 아니어서 자금조달에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이 9월까지 이어진다면 흑자도산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14일 국산헬기 ‘수리온’의 원가 부풀리기 등의 의혹으로 KAI 본사와 서울 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사장 자리는 7월 20일 하성용 사장이 사임한 뒤 한 달 넘게 비어 있다. 이달 들어선 금융감독원의 KAI 정밀 감리로 분식회계 의혹 이슈가 불거졌고 ‘신용리스크’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은 KAI를 ‘하향 검토 등급감시대상’ 목록에 올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 21일 기준으로 KAI의 발행잔액 회사채는 6000억원, 기업어음(CP)은 3500억원이다. 8월 만기도래분을 제외한 회사채 및 CP 잔액은 6900억원에 달한다.
 
김상훈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남은 발행잔액을 안정적으로 상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검찰 수사와 금융감독원 감리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검찰 수사 이후 하반기 예정된 수리온 납품과 수출이 올스톱되는 등 사업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올 초 7만원을 넘어섰던 KAI 주가는 지난 22일 4만750원으로 40% 넘게 하락했다. ‘비리 의혹’이 이어질 경우 올 연말 결정되는 최대 38조원 규모의 미 공군 고등훈련기 교체사업 입찰전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감이 커지면서 그동안 숨죽여 온 KAI는 자구책에 돌입했다.
 
KAI 노조는 23일 청와대를 방문해 “처벌할 사람은 조속히 처벌하되 사태가 장기화해 회사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은 막아달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전달했다. 장성섭 사장 직무대행과 임원들은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학계와 국방계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항공우주학회는 24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수리온 사업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하고 감사원의 수리온 결과와 관련해 패널 토론을 벌인다. 국방부 역시 이달 말 전문가들을 초빙해 수리온 결함 여부와 국내 방산 연구개발 문제 등에 대해 토론하고 결과를 관계 기관과 공유할 방침이다.
 
KAI 본사가 있는 경남 사천 지역 경제단체인 경남상공회의소협의회는 지난 21일 KAI의 조기 경영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건의문을 청와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에 보냈다. 경남상의 관계자는 “가뜩이나 거제·통영 쪽에 조선업이 어려워 지역경제가 안 좋은데 사천과 진주 등 서북권 항공산업 협력사 100여 곳이 타격을 입을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KAI 경영 정상화를 위해 사장 선임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KAI의 최대주주(26.4%)인 수출입은행이 금감원으로부터 ‘리스크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 새 정부의 주요 인선도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KAI 사장 선임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KAI는 1999년 당시 대우중공업,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 현대우주항공 등 항공 3사의 항공기 부문이 통합해 출범했다. 당시 대기업들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투자 회수 기간도 긴 항공 산업을 외면했는데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대규모 사업교환(빅딜)을 추진해 설립됐다.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개발 지원으로 기본 훈련기 KT-1,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등을 개발하며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로 입지를 굳혔다. T-50의 경우 인도네시아 16대, 이라크 24대, 필리핀 12대, 태국 12대 등 총 64대, 약 29억3000만 달러(약 3조3000억원) 규모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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