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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정석]나는 "대한민국 최고 구두닦이" 성오봉입니다

 "당신은 왜 일하십니까?"
 뻔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열에 여덟아홉은 "그야 물론 돈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밥벌이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구두닦이·사육사·버스기사…. 평범한 우리 14명의 이웃의 입을 통해 우리가 진짜 일하는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직업의 정석: 당신은 왜 일하는가' 세 번째 주인공은 성오봉 씨입니다. / 특별취재팀
 

"나는 낭만 구두닦이 성오봉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 구두닦이'라 말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에게 보내오는 낡은 구두를 '작품'으로 만들어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의 주택가에 있는 점포에서 그를 만났다. 우상조 기자

"나는 낭만 구두닦이 성오봉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최고 구두닦이'라 말한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에게 보내오는 낡은 구두를 '작품'으로 만들어 돌려보내는 일을 한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의 주택가에 있는 점포에서 그를 만났다. 우상조 기자

 

 찌든 땀 냄새, 반들반들해지도록 닳아버린 뒤축…. 구두에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담겨 있다. 성오봉(55) 씨는 그 구두를 통해 엿보는 사람들의 사연을 외면하지 못한다. 한 켤레 3000원짜리 구두 수선을 맡으면, 서비스로 ‘파리도 미끄러지게’ 번들번들 광을 내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부르는 낭만 구두닦이. 그는 오늘, 왜, 일하고 있을까.
 


시골소년 나주 탈출기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풀숲에 몸을 숨겼다가 기차가 떠나려는 찰나, 찻간에 뛰어올랐다. 익숙한 풍경들이 뒤로 지나간다. 그렇게 나주역을 떠났다. 그때 나이 12살, 여름방학을 앞둔 7월이었다. 
 
 가출을 결심한 건 순전히 가난이 싫어서였다. 여섯 형제 중 다섯째인 그는 늘 형들에게 맞았다. 공부 안 한다고 때리고, 항아리에 물을 길어 놓지 않았다고 때리고…. 학교에서도 동네북 신세는 마찬가지였다. 담임 선생님도 육성회비를 안 가져온다고 그를 때렸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 혼자 아들 여섯을 먹여 살렸다. 풀 같이 멀건 밀가루죽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눈 떠보니 용산역. 까만 고무신에 때 낀 반팔을 입은 시골내기에게 서울은 별천지였다. “잠을 재워주겠다”는 한 어른을 따라나섰다가 구두닦이 삶이 시작됐다. 구두를 챙겨오는 ‘찍새’ 노릇부터 했다. 구두를 못 가져오면 몽둥이가 날아왔다. 살려고, 맞지 않으려고, 다방을 돌았다. 맞선보러 나온 듯한 남자의 구두를 뺏다시피 가져와 일당을 채웠다. 
 
 그해 여름은 너무 뜨거웠다. 장충단 공원 벤치에서 잠들면 모기가 온몸을 물어뜯었다. 온몸이 부스럼 천지였다. 그래도 집엔 가기 싫었다. 왕십리 중앙시장 식당에서 깡통밥을 얻어먹으며 버텼다. 어깨너머로 배운 구두닦이 기술로,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길바닥에 앉아 구두를 닦았다.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반짝한 광을 내기 위해선 사람의 온기가 꼭 필요하다. 맨손으로 구두약을 발라 아기볼 쓰다듬듯 톡톡톡 두르리면 은근한 빛이 돌기 시작한다. 우상조 기자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반짝한 광을 내기 위해선 사람의 온기가 꼭 필요하다. 맨손으로 구두약을 발라 아기볼 쓰다듬듯 톡톡톡 두르리면 은근한 빛이 돌기 시작한다. 우상조 기자

 
‘구두닦이 성오봉’ 장가 가다
 인생의 전환점은 27살에 찾아왔다. 정확히는 아내, 박임숙(46)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저기 김밥 하나 잡숴보세요.”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한 내게 어느 날 한 여자가 말을 걸었다. 옆 병상, 손을 다쳐 입원한 환자의 이모였다. 나이가 8살이나 아래였는데 매일같이 김밥을 싸와 나눠줬다. 어린 시절부터 밥먹듯 굶기나 했지,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음식을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여자가 너무 예뻐보였다. 퇴원을 하며 용기를 내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여자에겐 건축 일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직업이 '구두닦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다. 그렇게 3개월을 속였다. 명동의 한 사우나에서 일할 때여서 저녁마다 깨끗하게 씻고 구두약 냄새를 뺀 다음 데이트를 했다. 서로 죽고못사는 사이가 됐을 때, 장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내가 "사실은 구두닦이"라고 말했던 날,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직업이야 어떻게 되든, 서로 좋아하면 돼죠.”  
 
아내 박임숙(왼쪽)씨와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직업 탓이었다. 차마 아내에게 말을 못해 매일 저녁 목욕을 했다. 장모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 지 20여 년. 아내는 수백켤레 구두만 보고도 손님이 누군지 기막히게 구분해내는 '달인'이 됐다. 우상조 기자

아내 박임숙(왼쪽)씨와의 결혼은 쉽지 않았다.직업 탓이었다. 차마 아내에게 말을 못해 매일 저녁 목욕을 했다. 장모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 지 20여 년. 아내는 수백켤레 구두만 보고도 손님이 누군지 기막히게 구분해내는 '달인'이 됐다. 우상조 기자

 
 결혼 후에도 계속 구두를 닦았다. 구둣방 차릴 목돈이 없어서,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출장 구두닦이'를 했다. 경기도 일대 경찰서, 공공기관 6곳을 돌았는데, 혼자 구두 수백켤레를 받아왔다 다시 가져다주기가 힘들어 일꾼을 썼다. 수금이 잘 안돼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월급을 주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빚은 5000만원. 눈앞이 캄캄했다. 
 
 그를 일으킨 건 아내였다. 2003년 자기도 구두닦이를 돕겠다고 나섰다. 아내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4살 짜리 아이를 집에 두고 경찰서로 출근해 구두를 가져왔다. 한데 아내가 가져온 구두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경찰관 구두는 지급품이라 다 똑같이 생겼다. 구두 밑창에 ‘어느 과 누구’라고 표시해와야 구분을 하는데, 이름 표시가 하나도 없었다. 아내를 타박하니, 돌아온 답이 기가 찼다. “다 외웠으니 괜찮아요.” 
 
 눈썰미가 좋은 아내는 사람들의 발모양을 외웠다.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온 사람, 신발 밑창이 삐딱하게 기운 사람…. 신발 형태로 신발 주인을 기억했다. 한 번은 900개나 되는 구두 주인을 다 맞추기도 했다. 비결을 물었다. 아내는 말했다. “머리가 비상한 게 아니라 먹고 살려고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직업이니까요.” 그 얘기를 듣고 이를 악물었다. 슬리퍼만 신고 사계절을 버티며 일했다. 옷도 만원 넘는 것은 사지도 입지도 않았다.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을,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 인생의 훈장'. 성오봉씨의 가운데 손가락엔 커다란 굳은 살이 박혀있다.우상조 기자

'내 인생의 훈장'. 성오봉씨의 가운데 손가락엔 커다란 굳은 살이 박혀있다.우상조 기자

 
 사연을 담아오는 구두, 그리고 나의 일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3년 만에 빚을 다 갚다. 휴대폰으로 손님 연락처를 검색해보니 1년에 3000명이 넘었다. 이 정도면 구두를 찾아 ‘출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경기도 수원에 3평짜리 가게를 냈다.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 얼굴을 보면서 삶이 달라졌다. 굽 갈이 하나에 3000원을 받았는데, 굽 수선만 해줬을 때 손님 얼굴과 '서비스'로 반질반질 윤나게 구두까지 닦아 줬을 때 손님 표정이 달랐다. 공짜로 구두를 닦아주기 시작했더니, 입소문이 났다. 굽갈이만 말고 수선을 해줘야 돈이 되겠다 싶어, 버려진 구두를 주워다 연습을 했다. 아파트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도둑으로 몰려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다.  
 
 신발은 ‘작품’이다. 수선이 정확해야 발이 편하다. 연습 밖에 답이 없었다. 가게 문을 닫은 뒤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명품 신발에 가방 수선, 염색에 수선까지 할 수 있게 되자 택배가 오기 시작했다. 땅끝마을 해남, 바다 건너 베트남에서도 택배 상자가 왔다. 안에는 구두와 함께 편지가 들어있었다. 
 
성오봉씨에게 온 수선 택배상자 속에 들어있던 편지. 우상조 기자

성오봉씨에게 온 수선 택배상자 속에 들어있던 편지. 우상조 기자

 
 ‘구두가 다 낡았는데, 10년 전 며느리가 해준 첫 선물이라 아끼고 안버렸어요. 나이 70살이 넘었으니 밑창은 미끄럼방지창으로 해주세요.’ ‘협착증으로 허리 수술을 했어요. 지금 굽이 높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것을 보내서 미안합니다. 오래 신었더니 때도 많이 묻고요. 정든 신발이라 보냅니다.’ 
 
 헌 구두 한 켤레, 한 켤레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구두는 그의 손을 거쳐 주인에게 되돌아갔지만, 그는 손님들이 보내온 편지를 지금껏 서랍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특별취재팀=김현예·정선언·정원엽 기자, 사진 우상조 기자, 디자인 김은교, 영상 조수진 hykim@joongang.co.kr
 
나는 왜 일하는가
 처음에는 가난을 대물림해주기 싫어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내가 일해서 가정이 행복하고, 손님이 행복하다. 
 돈이 먼저가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남보다 싸고 깨끗하게 해줘야 손님이 행복하다. 손님이 행복하면 나 역시 내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구두닦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구두닦이라고 생각한다. 
 일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순간도 없다. 다 떨어지고 갈라진 신발을 새 신발처럼 바꿔 놓으면 짜릿하다. 손님과 약속을 지켰으니까.
 꿈도 있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소외계층에게 내 기술을 전수해 자립을 돕고 싶다. 구두닦는 것은 이론으론 안되는 것이라 직접 가르쳐줘야 한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하루 300켤레의 신발을 닦는다. 나는 구두닦이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구두닦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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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