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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한중 수교 25주년이 더 우울한 상하이와 베이징 한인촌

이렇게 잘 됐었는데… 지난 2014년 1월 상하이 훙취안루 한인 상가의 한 식당 앞에 손님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당시 중국에선 한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인기를 끌면서 '치맥' 등 한류 음식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이렇게 잘 됐었는데… 지난 2014년 1월 상하이 훙취안루 한인 상가의 한 식당 앞에 손님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당시 중국에선 한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큰 인기를 끌면서 '치맥' 등 한류 음식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패션상품 유통업에 종사해 온 50대 남성 강모씨에게 중국 상하이는 제2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10여년전 국내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졌던 그가 달랑 옷가방 하나만 들고 도착해 맨 손으로 재기에 성공한 곳이 상하이다. 그런 그가 상하이를 떠나 다음달 사업 근거지를 베트남 하노이로 옮긴다. 21일 만난 강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손님이 끊기고 매출이 줄었는데 지금도 회복 기미가 없다. 주 고객인 교민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발길 끊은 단골고객에게 연락해보니 상당수가 베트남으로 옮긴 상태였다"고 '결심'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상하이는 한·중 수교 초기 초코파이와 신라면에서 최근의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차이니즈 드림의 성공신화를 써내려 온 곳이다. 중국 진출의 최일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유난히 강했던 상하이 교민들이지만 요즘은 서넛이 모이면 탈(脫) 상하이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교민 신문 '상하이저널'에는 하노이나 호치민 아파트 광고가 실리고 여행업체는 교민들을 모집해 베트남 시장 조사 투어를 보내기도 한다. 물류업체에서 일하는 S씨는 "자동차 관련 업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직종이 중국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같은 지역 한 한식당 내부. 저녁 식사 시간인데도 테이블이 거의 비어 있다.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지난 21일 같은 지역 한 한식당 내부. 저녁 식사 시간인데도 테이블이 거의 비어 있다.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민항(閔行)구 훙취안(虹泉)로 일대의 교민 상권은 궤멸 일보직전의 위기다. 여러개의 지점을 낼 정도로 번성하던 '천사마트'는 지난달 거액의 빚을 남긴 채 문을 닫았다. 21일 밤 둘러본 100곳 이상의 식당중엔 좌석의 3분의 1 이상을 채우고 있는 가게를 찾기 힘들었다. 문을 닫고 '상가 양도' 안내문을 내건 곳도 눈에 띄었다. 한식당 '다락방'의 최재영 사장은 "2002년 중국에 온 이래 가장 힘든 시기"라며 "예전에도 고비가 없진 않았지만 극복 가능했다. 지금은 개인 능력으론 극복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같은 지역 한식당 앞에 '상가 양도'란 안내문이 붙어있고, 그 옆 가게도 간판을 뗀 채 영업을 중단했다.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지난 22일 같은 지역 한식당 앞에 '상가 양도'란 안내문이 붙어있고, 그 옆 가게도 간판을 뗀 채 영업을 중단했다.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지난 21일 같은 지역 한식당 밀집지역의 야외 테이블. 한때 자리가 없어 되돌아갈 정도로 성업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좌석이 비어있다. 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지난 21일 같은 지역 한식당 밀집지역의 야외 테이블. 한때 자리가 없어 되돌아갈 정도로 성업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좌석이 비어있다. 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교민 상권이 된서리를 맞은 이유는 두가지다. 우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배치에 따른 반한감정으로 중국인 고객들이 발길을 끊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민들의 발걸음도 확연히 줄었다. 실적이 나빠진 기업들이 주재원 숫자를 줄였고 남은 주재원들도 경비 절감을 위해 호주머니를 닫고 있다. 올초 주재원수 500여명을 헤아렸던 이랜드의 철수는 교민 상권에 실질적 타격과 심리적 충격을 동시에 안겼다.  
 
베이징의 한인 타운 왕징(望京)도 사정은 비슷하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교민 자녀들이 다니는 베이징 한국국제학교의 학생수 감소다.  2015년까지 이 학교에 들어가려면 결원이 생길때까지 한 학기 이상 기다려야 했지만 지난해부터 사정이 확 달라졌다. 조선진 교장은 "올들어 주재원 가정의 갑작스런 귀임이 잦아졌고 지방 발령과 베트남 발령도 크게 늘었다"며 "초등학교가 특히 심해 3개반을 2개반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지역인 왕징거리의 모습. 한국인이 운영하던 상점이 비면서 임대를 놓는다는 간판이 늘어났다. 신경진 특파원

지난 21일 중국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지역인 왕징거리의 모습. 한국인이 운영하던 상점이 비면서 임대를 놓는다는 간판이 늘어났다. 신경진 특파원

교민 감소로 베이징 집값과 반대로 한인촌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한국 교민들이 집값을 올려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왕징 집값이 한국인 철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늘푸른부동산의 중국인 직원 쑨광윈(孫光允) 은 "주재원이 귀임하고 후임을 안내보내는 경우가 지난해부터 부쩍 많다"며 "왕징 다시양(大西洋)아파트 200㎡ 형의 경우 지난해 월임대료 2만4000위안(약410만원) 이던 게 10% 이상 내렸다"고 말했다. 왕징의 한국인 업소들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한식당 밀집 건물인 '한식미식성'은 올 봄 반한시위의 표적이 될까봐 간판에서 '한식'이란 글자를 떼어내기까지 했다.    
 
중국 베이징의 한인 밀집촌인 왕징거리의 한식당 빌딩인 '한식미식성'은 최근 간판에서 '한식'이란 글자를 떼어냈다. 신경진 특파원

중국 베이징의 한인 밀집촌인 왕징거리의 한식당 빌딩인 '한식미식성'은 최근 간판에서 '한식'이란 글자를 떼어냈다. 신경진 특파원

교민 상권은 사드로 직격탄을 맞긴 했지만 그게 원인의 전부가 아니란 점에 더 심각성이 있다. 상하이 주재 경력 12년의 이동한 코웨이상하이총판 대표는 "중국 진출 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이에 따른 교민·주재원 철수는 사드 이전인 3~4년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라며 "중국 상품의 질이 높아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국 상품이 시장을 뺏긴 게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예전의 황금 경기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교민들 사이에 퍼져 있다. 한·중 우호의 첨병 역할을 자처해 오던 중국 교민들의 깊은 시름속에 24일 한·중 수교는 25주년을 맞는다. 
상하이·베이징=예영준·신경진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송영희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 겸 한인회장은 "현재 중국 교민 상황은 암울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며 "여태까지의 중국 시장 진출 방식은 효용이 다했으니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교민 업체들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모두들 중국을 떠나고 싶어한다. 여태까지 성공은 못했지만 미래를 보며 버텨온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이 중국 시장에서 재미를 본 사람들도 지금 발을 뺄 시기라고 생각한다. 새 정부 출범 직후엔 8월 대통령 방중이 실현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 기대를 했다. 지금은 그런 기대도 접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제가 해결되더라도 원상복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

-사드 문제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 아니란 말인가.

"지금의 위기는 한·중간의 경제 규모 격차, 그에 따른 기업 경쟁력과 자금력의 역전 등이 사드와 맞물려 벌어진 상황이란 데 그 심각성이 있다. 날이 갈수록 중국 상품, 중국 기업의 우월성이 표면화되고 있다. 이제 중국 사람이 못만드는게 거의 없다.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4차산업혁명에서도 앞서가고 있지 않나. 우리가 새로운 전략을 짜지 않으면 정말 암울한 상황을 맞을 것 같다. "

-그럼 어떻게 위기를 돌파해야 하나.

"중국 시장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세워야 한다. 상하이는 이미 뉴욕과 같은 수준이다. 여기서 세계 일류 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베이징·상하이만 고집하지 말고 눈을 지방의 다른 도시로 돌려야 한다. 인구 1000만의 시장에 한국의 부산·대구를 능가하는 인프라와 잠재력을 가진 도시가 중국에는 널려 있다."
상하이=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송영희 중국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 겸 한인회장. 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송영희 중국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 겸 한인회장. 상하이=프리랜서 장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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