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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이 분석한 노무현에게 패한 이유 3가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이유에 대해 “이미지와 연출의 대결에서 완패했다”고 분석했다.

이 전 총재는 22일 발간한 『이회창 회고록』에서 “대통령이라는 국가 지도자의 일에 대한 열정과 판단력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결국 후보 개인의 유권자를 설득하는 능력과 유권자에 대한 이미지”라며 이같이 말했다.

반면 그는 선거 후 외부에서 분석한 패인에 대해서는 결과에 꿰어맞춘 ‘사후약방문’에 비유했다.  
 『이회창 회고록』[사진 김영사]

『이회창 회고록』[사진 김영사]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호남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여기에 수도권 이전 공약으로 충청의 지지기반을 더했는데 나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포용하지 못해 충청권 지지기반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한다”고 소개한 뒤 “(이런 요인들이)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종의 논리적 분석이고 승자 편에서 본 사후약방문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02년 12월 20일 한나라당 중앙당사에서 정계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중앙포토]

2002년 12월 20일 한나라당 중앙당사에서 정계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중앙포토]

또 “이런 분석은 사실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정확한 원인 분석을 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가 스스로 분석한 2002년 대선의 패인은 크게 3가지다.  
 
①중도층에 대한 설득 실패=나는 대통령이라는 국가 지도자의 일에 대한 열정과 판단력 그리고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를 유권자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유권자 중 좌ㆍ우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층 이른바 중도층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나는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대전 유세 중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 [중앙포토]

2002년 대선에서 대전 유세 중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 [중앙포토]

나는 선거 유세나 토론 또는 홍보에서 청중이나 상대방을 이론의 여지 없이 압도할 만큼 힘 있는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거는 설득인데 그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②기득권과 귀족 이미지=이미지에서도 노무현 후보 측이 내세운 귀족과 서민,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오랜 기간 한나라당 총재를 지내고 대선 후보를 두 번씩이나 하면서 대세론도 나오는 등 국민들에게는 지겹도록 오래 보아온 얼굴이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기득세력의 대표주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선거 벽보. [중앙포토]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선거 벽보. [중앙포토]

반면에 노 후보는 나보다 훨씬 먼저 정치권에 들어와 YS와 DJ 사이를 오간, 말하자면 구 정치인이었지만 돌출적인 행동과 대선 후보가 되면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등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금수저 출신의 정몽준 후보와의 사이에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변화와 개혁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③인터넷 홍보 부족=“우리가 인터넷 매체의 활용에서 뒤진 것도 주요한 패인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는 이미 인터넷 매체를 통해 후보와 그 정책을 홍보하고 지지세를 규합해 적극적인 선거참여를 촉구하는 등 인터넷의 활용이 확산되는 시점이었다.
이회창 후보가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여의도 당사를 떠나고 있다. [중앙포토]

이회창 후보가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여의도 당사를 떠나고 있다. [중앙포토]

일부 평론가가 ‘정보화와 인터넷으로 무장한 유목민적인 20~30대가 인터넷을 통해 통합이 가능했던 반면, 나이든 세대는 통합의 축이 결여된 상태였다’고 말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 전 총재는 “결국 2002년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것은 이런 이미지와 연출의 대결이었지 정책이나 시대정신은 핵심적인 요인은 아니었다”며 “ 이미지와 연출의 대결에서 나는 완패했고 이것은 나의 능력 부족이었다. 대선 패배는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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