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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시장은 ‘정부 공인 도박판’ 시즌2?

[고란의 어쩌다 투자] 단타 세력 놀이터 된 가상화폐 시장
 
 불과 6년 전 얘기다. 한국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세계 1위 파생상품(선물ㆍ옵션) 시장의 왕좌를 지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1년 주가지수 선물 거래의 하루 평균 계약 금액은 45조4030억원에 이르렀다.
 
 다른 해외 시장과는 달리 국내에선 개인들도 파생 시장에 뛰어들었다. 수천만원으로 수백억원대 자산을 일군 ‘압구정 미꾸라지’, ‘목포 세발낙지’ 등 재야 고수들이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반대로, 하루 아침에 전재산을 날리고 생을 져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워낙 투기적 성향이 강한 시장이라 ‘정부 공인 도박판’이라는 오명이 붙기도 했다.
 
 금융당국이 ‘한탕’을 노리는 이들을 잡겠다고 규제하면서 시장은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주가지수 선물 거래의 하루 평균 계약 금액인 17조원대로 추락했다.
 
 그런데 2017년, 파생 시장이 얼굴을 바꿔 나타난 분위기다. 심지어 이번에는 ‘정부 공인도 받지 않은 도박판’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자료: 더머클

자료: 더머클

 가상화폐 시장 얘기다. 지난 19일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하루 거래량은 2조6000억원대를 기록하며 코스닥 시장 거래 규모를 넘어섰다. 특히 비트코인에서 갈라져 나온 비트코인캐시(BCH)의 거래량만 1조원을 웃돌았다. 이날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의 BCH 거래량은 전세계 거래량의 60%를 차지했다.  
 
자료: 빗썸

자료: 빗썸

 거래량이 폭증하면서 17일 33만원선이던 BCH 가격은 19일 130만원선까지 뛰었다. CNBC 등 해외 언론은 “한국 시장의 거래량 폭증이 BCH 가격 상승을 불렀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지한, 예언을 현실로 만드는 남자
 
 빗썸의 하루 거래 금액 규모가 코스닥 시장을 따돌린 것은 BCH 가격이 갑자기 급등하면서 투자자들이 확 몰렸기 때문이다. 급증한 수요가 BCH 가격을 밀어올렸고, 오른 가격이 또 다른 수요를 유인했다.
 
 그렇다면 8월 1일 탄생 이후 지지부진하던 BCH 가격이 17일 폭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트리거(방아쇠)’는 우지한이 당겼다.
 
 우지한은 세계 최대 비트코인 채굴업체인 비트메인의 대표다. 현재 가상화폐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다. 지금은 비트코인과 BCH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 비츠미디어

자료: 비츠미디어

 
 앞서 5~6월 세계 2위 가상화폐인 이더리움이 급등했을 때에는 이더리움을 개발한 비탈릭 부테린이라는 94년생 청년이 시장의 중심에 있었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자 이더리움 가격이 20% 이상 하락하기도 했다(며칠 뒤 부테린은 자신의 트위터에 직접 ‘나 살아 있다’는 취지로 인증샷을 올렸다).
 
 비트코인 생태계의 3대 축은 개발자, 채굴업자, 일반 이용자다. 이 가운데 채굴업자는 비트코인의 송금을 도와주는 대가로 비트코인을 얻는 이들이다. 비트코인 거래량이 폭증하면서 채굴업자들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극단적으로 채굴업자들이 없으면 비트코인 송금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채굴의 효율성은 컴퓨터 연산 능력이 커질수록 좋아진다. 그래서 혼자 채굴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같이 할 수록 더 많은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채굴업자들은 일종의 광산인 ‘마이닝풀(mining pool)’을 구성한다.
 
자료: 블록체인닷인포

자료: 블록체인닷인포

 우지한의 비트메인은 세계 1위 마이닝풀인 앤트풀을 이끌고 있다. 가상화폐 지갑 관리 사이트인 블록체인닷인포에 따르면, 최근 4일간 앤트풀은 전체 비트코인 채굴량의 18.4%를 점유했다.
 
 이같은 채굴력으로 우지한이 상당량의 비트코인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8월 1일 비트코인에서 BCH가 쪼개져 나올 때 이전 시점에 보유한 비트코인만큼의 BCH가 일괄 지급됐기 때문에 우지한이 보유한 BCH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비트코인 생태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가 8월 1일 비트코인 분할 이후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썼다.
 
자료: 트위터

자료: 트위터

 “세그윗(SegWit)을 지지하는 풀이 BCH 채굴을 시작하면, 앤트풀은 BCH 채굴을 시작할 것이다.”
 
 이 말을 단순하게 해석하자면, 앤트풀이 조만간 BCH를 채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채굴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앤트풀은 전세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채굴하는 마이닝풀이다. 앤트풀이 BCH 채굴에 뛰어들면 BCH 채굴량은 폭증할 수 있다. 가격 급등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지난 주말 생성된 BCH 블록의 채굴 난이도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당초 BCH는 비트코인에서 분리된 까닭에 기존 비트코인과 채굴 난이도가 같았다. 그런데 가격은 비트코인이 훨씬 비쌌다. 곧, 채굴업자 입장에서는 똑같이 어려운 문제를 풀었는데 보상은 기존 비트코인 더 크니 BCH를 채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BCH 채굴 난이도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BCH 채굴이 더 유리한 상황이 됐다. 블록체인 모니터링 업체 코인댄스에 따르면, 채굴에 따른 수익성은 BCH가 기존 비트코인보다 현재 69% 더 높다.
 
 난이도가 떨어지면 채굴이 늘어난데다, 세계 1위 업자가 채굴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BCH 가격은 폭등했다. 빗썸에서 17일 장중 33만5500원까지 밀렸던 BCH 가격은 19일 136만7000원까지 급등했다.
 
 앞서 우지한은 지난달 25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네스트와의 인터뷰에서 “BCH가 비트코인보다 가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되짚자면 BCH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아나라 BCH 가격을 올리겠다는 ‘의지’였던 셈이다.
 
 비트코인 생태계의 또다른 축인 개발자들은 그러나, BCH의 장기 전망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이다. 출발 자체가 “가상화폐의 기본 바탕인 분권, 탈집중화 정신을 왜곡하는 특정 세력에 의해 탄생한 코인”이기 때문이다. 단기 급등했던 BCH 가격은 22일 오전 9시 30분 현재 66만8000원으로 최고점 대비 반토막이 났다.
 
◇‘공인 도박판’에 KRW 몰렸다
 
 BCH 가격 상승의 트리거는 우지한이 당겼지만, 상승 동력에 연료를 쏟아부은 것은 국내 투자자들이다.  
 
 빗썸의 19일 하루 거래량은 2조6018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18일 장 마감 기준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 대금인 2조4300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빗썸의 거래량은 이달 9일에 1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1조원대를 돌파해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 가운데 거래량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열흘 만에 다시 2조원대를 넘어섰다.  
 
자료: 크립토컴페어

자료: 크립토컴페어

 19일 빗썸이 담당한 BCH 거래량은 전세계 거래량의 40%를 웃돈다. 가상화폐 정보업체 크립토컴페어닷컴에 따르면, BCH 가격이 최고가를 찍었을 즈음엔 전체 BCH 거래량의 51%가 원화(KRW)였다. 이어 비트코인이 31%로 뒤를 이었다(가상화폐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일종의 기축통화다. 비트코인을 가지고 다른 가상화폐를 사는 경우가 많다). 곧 현존하는 법정 통화(국가별 화폐)만 놓고 보면 원화가 전체 거래의 74%를 차지했다는 의미다.
 
 해외 가상화폐 커뮤니티에서도 개발자들은 “BCH의 한국 원화 거래량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한 업계 전문가는 “미국이나 일본, 심지어 중국조차도 몇 년에 걸쳐 가상화폐 시장이 커진데 반해 한국은 올 봄 시장이 급성장 했다”며 “새로 유입된 투자자의 대부분이 가상화폐 시장을 이해해서라기보다는 ‘투기판’으로 여기는 단타 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상화폐 시장은 단타 세력에는 최고의 ‘놀이터’다. 상ㆍ하한가 변동폭 제한이 없고, 24시간 365일 열린다. 규제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지 못하지만, 규제의 틀에 갇혀 운신의 폭을 좁힐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가상화폐 시장 참여자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오른다”는 컨센서스가 있다. 단타로 들어가서 먹고 나오면 다행이지만 혹여 산 가격보다 떨어지더라도 언젠가는 오를테니 들고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란 감정은 아주 옅은 상태다.
 
 그는 “규제가 생기기 전 한국의 파생 시장은 거래량 기준으로 압도적 세계 1위였다”며 “규제 없는, 투기적 성향이 짙은 가상화폐 시장에 돈이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작전 세력의 개입을 의심한다. 특히 글로벌 가격에 비해 국내 가상화폐 가격이 비싸게 거래되는 일명 ‘김치 프리미엄’이 작전 세력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단타 투자자가 워낙 많다보니 글로벌 차익거래 세력이 유입되기 전에 치고 빠지는 식으로 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한 주식시장 전문가는 “가상화폐 시장이 워낙 심리에 좌우되다 보니 가격이 오르면 오른다는 이유로 개미(개인투자자)들이 따라 붙어 매수한다”며 “장기간 조작은 어렵겠지만 수십억원 자금으로 일시적인 가격 조작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거래소들은 그러나, 작전 세력은 없다는 반응이다.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코인원의 김진형 팀장은 “비정상적인 트래픽 발생 여부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지만 어떤 이상 움직임도 관찰하지 못했다”며 “현재까지 특정 세력이 가상화폐 시세를 조작하는 경우는 탐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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