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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울릉도서 배 만든 고흥 사람들, 독도를 독섬이라 불러 … 고종 칙령 입증

이훈석 우리문화가꾸기회 대표
이훈석 대표가 독도 관련 연구 수집 자료를 모은 『독섬 석도 독도』서첩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정동 기자]

이훈석 대표가 독도 관련 연구 수집 자료를 모은 『독섬 석도 독도』서첩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정동 기자]

“전라도 고흥에는 독섬, 석도(石島), 독도(獨島)가 모두 있습니다.”
 
사단법인 우리문화가꾸기회 이훈석(72) 대표는 지난해 12월 박병종 고흥 군수와 나눴던 전화 내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세기 울릉도 조선산업과 전라도 고흥군 그리고 독도에 관한 연관성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을 때였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흥양(지금의 고흥) 전선소 이야기를 봤던 게 떠올라 고흥 군수께 물어봤죠. 혹시 고흥에 독섬이나 석도라는 이름의 섬이 있냐. 그런데 뜻밖에 모두 있다는 답을 들었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전남 고흥군에는 지명이 독섬인 섬이 1개, 독도가 1개, 석도가 2개 존재한다. 예부터 모두 ‘독섬(돌섬의 사투리)’으로 불렸는데 지적도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한자와 음운으로 나뉘어 각기 등재됐다.
 
이 대표와 사단법인 우리문화가꾸기회(이사장 김문수)는 최근 4년 간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입증하는 근거들을 찾고 있었다. 특히 집중한 것은 ‘석도’가 ‘독도’임을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자료들이었다.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고종 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공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의 위 조항은 석도(지금의 독도)가 한국 고유의 영토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로 꼽힌다. 19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를 불법으로 편입하기 5년 전, 이미 대한제국이 석도를 지방행정단위인 울도군의 관할 영역으로 공표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은 ‘석도’가 ‘독도’를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이 대표가 ‘석도=독도’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문헌기록을 찾아냈다. 1938년 발행된 최초의 우리말사전 『조선어사전』의 초판본이다. “이 사전의 379쪽에 보면 ‘독’을 ‘돌(石)의 사투리’로 풀이하고 있어요. 당시 석도가 독도의 다른 명칭이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죠.”
 
이 대표가 올해 2월 고흥으로 내려가 어르신들께 들었던 ‘고흥군 앞바다에 있는 4개의 섬을 모두 독섬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한 줄로 꿰어진다. 조선산업이 발달했던 고흥 사람들이 울릉도와 독도로 건너가 배를 만들었고, 그때 독도를 ‘돌섬’의 사투리인 ‘독섬’으로 불렀으며, 이것이 ‘독도(獨島)’로 변환됐다는 주장과 그 근거 자료다.
 
우리문화가꾸기회와 이 대표는 고흥군·경상북도·전라남도 후원, (주)진행워터웨이 협찬으로 오늘 오후 2시 국회도서관에서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발표하는 ‘독섬, 석도(石島), 독도(獨島)’ 심포지엄을 연다.
 
이 대표의 평생의 관심사는 교육과 문화 사업이다. 1973년 당시 신학도였던 이 대표는 교회 후배들과 함께 노인학교 ‘덕명의숙’을 만들었다. 당시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 등 명사들이 도움을 줄 만큼 주목받았다. IMF 때에는 결식아동들을 위한 ‘곰곰이 학당’을 만들었다. 99년 사단법인 우리문화가꾸기회를 설립하고 아이들을 위한 ‘지붕 없는 학교’를 목표로 경기도 양평에 문화와 역사, 자연을 호흡할 수 있는 환경교육장 ‘세미원’을 열었다.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에게 진취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보니 ‘독도’가 숙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대표는 “더 광범위한 역사의 그물을 쳐서 역사의 작은 편린이라도 낱낱이 모아 독도가 왜 한국의 영토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우리가 하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까지도 이 다툼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다음 연구 목표는 1600년대 순천 사람 안용복과 뇌헌 스님이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 일본까지 간 동해노정도이다.
 
“조선과 일본 역사를 통틀어 최초로 독도에 가 조선 땅임을 천명한 기록이자, 19세기에 고흥 사람들이 울릉도·독도로 진출했던 경로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죠.”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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