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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멋지게 삐딱한 음악

김호정 문화부 기자

김호정 문화부 기자

“그거 알아요? 에릭 사티는 똑같은 셔츠만 입었대요. 여러 벌을 마련해 놓고 더러워지면 그냥 버렸대요.” 3일 개봉해 적은 수의 상영관에서 소소하게 히트하고 있는 영화 ‘파리로 가는 길’에 나오는 대사다. 프랑스의 낭만, 자유로움을 그리기 위해 영화는 사티의 음악 ‘난 널 원해’를 가져다 썼다.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사티는 대중문화가 자주 불러내는 작곡가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는 광고에서도 그의 음악을 쓰고, 배우 전지현은 영화에서 사티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주로 낭만적이고 듣기 좋은 곡들이다.
 
하지만 사티의 진짜 매력은 비꼬는 데에 있다. ‘바싹 말라버린 태아’ ‘불쾌한 절뚝거림’ ‘무기력한 개를 위한 전주곡’ 같은 곡이 사티의 본질과 가깝다. 희한한 제목과 음악의 내용은 별로 상관도 없을뿐더러 슈베르트·쇼팽부터 대중음악까지 가지고 놀듯 패러디하는 싱거운 곡들이다. ‘짜증’이라는 작품은 세 줄짜리 악보, 그것도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음들의 나열 같은 것을 840번 반복하라고 지시해 놨다.
 
사티는 파리 음악원에서 재능이 없다며 쫓겨났고, 파리 몽마르트르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자신의 직업을 경멸했다. 반대로 관객과 연주자가 일생일대의 경험이라도 하는 듯 엄숙하게 앉아 있는 음악회장 역시 한심하게 생각했다. 본인의 음악은 모든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듣길 원했다. 한번은 새로운 곡을 소개할 때 청중이 집중한다는 이유로 공연을 중단시키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음악을 그저 배경음악으로 들어 달라는 간청이다.
 
주류와 비주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두 영역을 모두 비틀었던 예술가다. 시대와 멋지게 엇나갔던 작곡가다. 절박하게 매달렸던 사랑에서도 참패해 평생 혼자 살았고 똑같은 색의 옷만 여러 벌 걸어놓고 입었다. 옷을 조합해 골라 입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습으로 봤던 게 아닐까.
 
지금처럼 달달한 음악으로만 사티를 만나기는 아쉽다. 1963년 ‘짜증’을 정말로 840번 반복한 사람은 존 케이지. 18시간 동안 본 청중 한 명은 뉴욕의 연극배우였다고 한다. 이걸 하라는 사람이나, 진짜 한 사람이나, 그걸 구경한 사람이나 다 괴상하다. 하지만 이들이 괴상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시대를 앞서가느라 불화하기는커녕 쫓아가기도 바쁜 이들에게도 즐길 틈새를 마련해 줬으니 말이다. 
 
김호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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