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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농담으로 인종차별을 허문 남자, 딕 그레고리 별세

2006년 전설적인 뮤지션 제임스 브라운의 장례식에서 연설하는 딕 그레고리. [로이터=연합뉴스]

2006년 전설적인 뮤지션 제임스 브라운의 장례식에서 연설하는 딕 그레고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겸 민권운동가 딕 그레고리가 1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4세. 그는 시사풍자 코미디를 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는 슬랩스틱으로 흑인들을 웃기던 여느 흑인 코미디언들과는 달리 풍자로 백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흑인들은 그럴 능력이 없다고 인식되던 시대였다. 빌 코스비(80) 등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겸 민권운동가
흑인은 못한다 여긴 시사풍자 코미디로 인기
인종차별철폐, 반전운동 등에 평생 바쳐

그는 60년대에 클럽 공연과 레코드로 주당 최고 1만2000달러를 벌어들였고, 당시로선 영향력이 엄청났던 타임지가 그의 프로필을 싣기도 했다. 그는 분리정책은 나쁘다고 말하는 대신 "우리 나라에 흑인 우주비행사가 엄청 많대요. 최초로 태양에 갈 우주선에 태우려고 모아놨답니다"라는 식으로 따끔하게 풍자했다. 유머로 백인들의 인식을 바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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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탬퍼 베이 블랙 헤리티지 페스티벌에서 청중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딕 그레고리. [AP=연합뉴스, Tampa Bay Times]

2016년 탬퍼 베이 블랙 헤리티지 페스티벌에서 청중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딕 그레고리. [AP=연합뉴스, Tampa Bay Times]

그는 잘 전달된 농담 안에 힘이 있다고 믿었다. 옷이 없어 엄마의 드레스를 입고 나가 놀아야 했던, 가난하고 비루한 어린 시절이 남긴 교훈이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들은 어차피 웃을 거다. 내가 농담을 하면 나를 비웃는 대신 나와 함께 웃었다"고 회고한다. 재미있는 아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농담을 무기로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자서전 제목은 『깜둥이(Nigger)』였다.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그는 점차 민권운동가로 변신해갔다. 1962년 미시시피 주에서 흑인 투표권 시위에 동참한 게 시작이었다. 체포된 그는 이듬해 감옥에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말 좋은 구타를 당했다"고 썼다. 한번은 임신한 아내가 백인 보안관에게 배를 발로 걷어차이기도 했다. 시위에 나서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그를 꺼려하는 클럽은 늘어갔다. 
2015년 LA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스타 상징물을 헌정받은 딕 그레고리.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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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람들이 뜯어 말려도 그는 시민 운동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위험에 빠뜨리기로 했다.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등 살해 위협을 받던 흑인 민권운동가들과 함께 최전선에 섰다. 65년엔 시카고 학교의 인종분리 정책에 항의해 거리 행진을 하다 체포됐고, 수백명에게 돌팔매를 맞았다. 하지만 69년 법원에서 폭력에 책임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적 분쟁 속에서도 67년엔 시카고 시장에 출마했고, 다음해엔 자유평화당 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자체 집계로는 150만 표를 받았다. 하지만 공식 집계는 4만7133표였다. 그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몇주간 단식을 했다. 이후로도 수십년간 베트남 전쟁, 평등권, 경찰의 잔혹행위,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약물 남용, 아메리카 인디언 권리 등을 위해 수십번 단식 농성을 벌였다. 
2012년 당시의 딕 그레고리. [AP=연합뉴스]

2012년 당시의 딕 그레고리. [AP=연합뉴스]

단식 경험을 바탕으로 80년대엔 다이어트 분말을 개발했고, 1999년 암에 걸렸으나 화학요법을 거부하고 음식과 운동으로만 치유해 열렬한 섭생 전도사가 되기도 했다. 존 F.케네디 대통령 암살부터 9.11 테러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굴곡진 인생에서 그가 견지한 원칙은 하나였다. "나는 웃긴 유색(colored)인이 아니라, 유색의 웃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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