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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야구부 10%만 프로行…공부해서 大入은 바늘구멍

[2017 스포츠 오디세이] 서울고 감독-서울대 선수 ‘학생야구’를 말하다
2 지난 9일 서울고 야구장에서 만난 유정민 감독(오른쪽)과 서울대 이정호 선수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힘든 한국 학생야구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김춘식 기자

2 지난 9일 서울고 야구장에서 만난 유정민 감독(오른쪽)과 서울대 이정호 선수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힘든 한국 학생야구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김춘식 기자

프로야구 KBO리그가 관중 800만 명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엔 수십억원을 받으며 뛰는 한국 선수들이 있고, 국내에서도 FA(자유계약)로 팀을 옮기는 선수에게 ‘100억대’라는 꼬리표가 달린다.

유정민 서울고 감독
올해 대통령배 우승, 청룡기 준우승
“게임 못 뛰는 아이들 장래 큰 걱정
학부모 주머니서 급여, 눈치 보여”

이정호 서울대 선수
덕수고 1번타자, 공부해서 대입
“후배들 야구한 것 후회 안 했으면
초·중부터 공부·운동 병행해야”

 
프로야구가 활황을 맞자 리틀야구팀과 중·고교 야구팀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팀에 가는 선수는 1년에 100명, 고3 선수의 10% 정도다. ‘제2의 이승엽·류현진’을 꿈꾸다 고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인생의 큰 좌절을 맛보는 90%는 어떻게 될까. 운동을 그만두면 공부해서 제2의 인생을 찾을 수 있을까. 유정민(47) 서울고 야구부 감독과 서울대 야구부 이정호(23) 선수의 만남을 주선한 건 이런 현실을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뜻에서였다.
 
서울고는 지난 6일 끝난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 올해 청룡기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했다. 덕수고와 함께 고교야구 양강(兩强)으로 꼽힌다. 유정민 감독은 선수들이 자율성을 갖고 창의적인 야구를 하도록 돕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1 지난 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5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경남고를 13-9로 누르고 우승한 서울고 선수들이 유정민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 지난 6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5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경남고를 13-9로 누르고 우승한 서울고 선수들이 유정민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울대 야구부는 체육 특기자가 아니라 야구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학생들로 구성됐다. “대학 야구 수준 떨어뜨린다”는 비아냥 속에 창단 28년 만인 2004년 첫 승리를 거둬 ‘반짝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그 후로 아직 1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정호는 2013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입학 당시 큰 관심을 받았다. 덕수고 1번타자 출신인 그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갔다온 뒤 2학기에 복학한다.
 
지난 9일 서울고 야구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알고 보니 유 감독이 LG 트윈스 스카우트를 잠깐 맡았을 당시 ‘덕수고 1번타자 이정호’를 주목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정호 선수는 “후배들이 야구를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다른 길을 찾고, 야구했던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유 감독은 “그런데 우승의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게임 못 뛴 아이들과 면담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힘없이 웃었다.
 
수업 못 따라가 천덕꾸러기 신세
서울고의 대통령배 우승을 축하한다. 자신만의 지도 철학이 있나.
▶유: 아이들에게 절대 고개 숙이지 말라고 한다. 찬스에서 병살타를 칠 수도 있고, 수비에서 실책을 할 수도 있다. 모두 게임의 일부다. 다음에 좋은 플레이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실수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 위축되고 주눅 들게 된다. 자신을 믿고 정신적인 부분을 키워나가도록 돕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서울고는 선수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팀 컬러로 유명한데.
▶유: 내가 초등학교 강팀인 성동초 감독을 오래 했다. 공 하나하나에 사인을 내는 야구로 좋은 성적도 거뒀다. 그런데 내 밑에서 그렇게 야구를 잘하던 아이들이 상급학교에 가서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데 뭐가 잘못됐나 반성했고, 질책보다 칭찬을 해 주는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이정호 선수가 졸업한 덕수고는 서울고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던데.
▶이: 덕수고 정윤진 감독님은 조직력과 작전에 의한 야구를 중시하신다. 겉멋 들지 않고 학생다운 야구, 기본에 충실한 야구를 가르치신다. 난 고교 때 붙박이 주전이 아니어서 경기에 나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그래서 뭐든지 시키는 대로 했고 감독님 지시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현실적으로 고교 야구선수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나.
▶유: 서울고 야구부 선수가 60명이고, 3학년이 17명이다. 이 중에서 프로에 지명받거나 수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선수는 한해 6∼7명 정도다. 나머지 선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큰 고민이다. 운동부가 공부해서 대학 갈 수 있는 문이 넓어졌으면 좋겠는데 지금 입시 제도로는 어렵다. 서울고 야구부 출신으로 서울대에 간 홍승우 선수도 운동 그만둔 뒤 공부에 올인했고 3수 끝에 합격했다.
 
▶이: 내가 서울대 갔을 때 언론에서 주말리그(주중에 공부하고 주말에만 경기를 하는 시스템)의 성공이라고 떠들썩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난 어릴 적부터 수업에 꼬박꼬박 들어갔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부분 야구 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제쳐 놓고 운동만 한다. 그런 친구들에게 고등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를 준다고 해서 일반 학생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
 
▶유: 기초가 안 돼 있는 운동부 학생들에겐 수업 들어가는 자체가 고통이다. 엎드려서 잠을 자거나 휴대전화 만지고 있으면 수업 분위기 망친다고 야단 맞고 천덕꾸러기가 된다.
 
▶이: 초·중학교 때 형성되는 가치나 시냅스(뇌 활동구조)가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고교보다 초·중학교에서 공부-운동 병행 시스템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운동을 그만둬야 할 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야구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는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야구를 하는 것처럼 불행한 건 없다.
 
일본의 중·고등학교에는 방과후 운동부나 음악·영화 등 동아리 활동을 하는 부카츠(部活)가 있다. 학생들 대부분이 한 개 이상의 부카츠를 한다. ‘키리시마가 부카츠 그만뒀대’라는 영화에는 고3인 야구부 주장이 밤 늦게 개인운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이번 대회까지는 열심히 하고, 프로 지명이 안 되면 입시 준비에 올인해야지”라고 말한다. 500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 선수들이 일생의 꿈인 고시엔(甲子園) 전국대회 출전을 목표로 땀을 흘리고, 뛰어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끊임없이 진출하는 일본 야구의 힘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우리 애는 왜 출전 안 시키나” 학부모 불만
이정호 선수는 “내가 왜 힘들게 야구와 공부를 병행했을까. 중학교 때는 어머니가, 고교 때는 감독님이 ‘성적 떨어지면 야구 안 시킨다’고 겁을 주셔서 그랬다. 결국 야구를 하고 싶어서 공부를 했구나 하는 결론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군에서 오래 고민한 끝에 ‘프로에 도전하자’고 마음을 굳힌 것도 내 삶을 끌고 온 게 야구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리틀야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중·고교 팀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 와중에 폭력·입시비리·심판 부정 등 문제점도 커지고 있는데.
▶유: 학교 운동부 지도자 대부분이 계약직이라 신분이 불안정하다. 급여도 학부모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성적에 연연하고 비리의 유혹을 이기기 어렵게 된다. 학부모들은 ‘똑같이 돈 내서 감독 월급 주는데 왜 우리 애만 게임 안 넣어 주나’고 불만을 갖게 된다. 감독이 소신껏 아이들 가르치고 실력대로 경기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신분 문제를 풀어 줬으면 좋겠다.
 
▶이: 은퇴 선수에 대한 적절한 복지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또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건 초등학교부터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운동선수도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학생야구 정상화의 축이라고 생각한다.
 
▶유: 우리도 미국처럼 팀을 3단계로 나눠서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야구부장님과 상의하기도 했다. 프로를 목표로 하는 1단계, 운동과 대학 진학을 병행하는 2단계, 취미로 야구를 즐기는 3단계. 실력이 좋아지면 상위 단계로 올라설 수 있고. 그런데 쉽지 않다. 학부모들이 모두 ‘내 아들은 이치로 같은 재능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배 우승으로 선수단이 훈련을 쉰 서울고 야구장은 텅 비어 있었다. 실내연습장에서 혼자 타격 연습을 하는 선수가 공을 치는 “딱” “딱” 소리만 고요한 운동장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훗날 이 소년은 가장 뜨거웠던 젊음의 한 시기를 함께한 야구공을 그리워하게 될까.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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