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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행복한 악수 가능할까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음반과 영상으로 출시되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음반과 영상으로 출시되었다.

공관병은 강아지를 괴롭혔다. 스트레스 높은 날이면 숟가락을 들고 강아지를 위협하기도 했다. 나와 내무반 동료들은 공관 건물 보수를 하다가 그와 친해졌다. 작업 중간중간 그가 내주던 간식은 꿀맛이었다. 그는 사단장 강아지에 대한 분풀이가 어느 정도 끝나면 우리를 잡고 하소연을 시작했다. 명문대 대학원 물리학과를 다니던 그는 일주일에 두 번씩 사단장 자녀들의 과외를 했다. 햇볕 좋은 날은 사단장 부인의 속옷 빨래를 욕지거리하며 널기도 했다. 근무시간은 말 그대로 밤낮이 따로 없었다.
 

WITH 樂 :
클라우스 구트의 ‘피가로의 결혼’

국방의 의무를 노예 제도로 변질시킨 대한민국 흑역사의 전통은 길다. 공동체를 지키는 국민의 의무가 사적인 주인-노예의 관계로 변질됐다. 로마 시대에도 공동체는 시민이 지켰지 노예가 지킨 것이 아니었다. 어깨에 별을 주렁주렁 단 이들이 시민을 개인 노예로 만들었으니 그것은 공동체를 파괴한 범죄 아닌가?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도 갑질 하는 주인이 등장한다. 알마비바 백작이다. 그는 여자 문제가 복잡하다. 전편에 해당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결혼을 도와준 하인 피가로의 연인 수잔나를 탐낸다. 일명 귀족급 갑질이다. 그럼에도 백작 부인은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하녀 수잔나의 도움을 청한다. 유쾌한 막장드라마인 ‘피가로의 결혼’은 표면상 네 남녀의 연애 소동극이다. 희극적인 오페라, 오페라부파라고 한다.
 
이 오페라는 귀족사회라는 구습이 현실과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모순을 웃음꺼리로 만든다. 루이 16세가 원작 연극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상연 금지를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청년의 치기가 두드러지지만 피가로의 표정과 행동, 노래 속에는 귀족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식이 깔려 있다. 수잔나 역시 부엌데기가 아닌 지성과 매력을 갖춘 현대적 여인이다. 반면 권력으로 여자를 얻고자 하는 백작은 구시대적 인물이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백작부인도 주체적이진 못하다.
 
많은 음반과 영상 중에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독창적인 무대와 연출로 최고다.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실내극’을 연상시키는 무대 연출과 무채색 의상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다른 피가로를 선보인다. 연출의 기본 방향이 오페라부파식의 소동극이 아닌 갈등하는 인물들을 다룬 심리극이기 때문이다. 피가로가 흥에 겨워 “만약 주인께서 나를 찾으신다면”하고 노래 부를 때 백작이 수잔나를 낚아채는 장면이 있다. 이층 계단에서 부감으로 찍은 이 장면은 수잔나에게 다가온 불안과 백작의 힘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폐쇄적인 실내, 건물 내부의 빈 공간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방식, 인물을 왜소하게 처리하거나 음영 깊은 얼굴을 클로즈 업 하는 방식 등도 오페라 연출의 진화를 보여준다.
 
원작에 없는 상상력 넘치는 연출도 있다. 백작의 속셈을 들었을 때 피가로는 계단에서 죽어 있는 까마귀를 발견한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어지는 아리아 ‘춤을 추고 싶다면 나리’에서 천사가 등장해 피가로의 굴종, 분노 등 내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천사는 극중 내내 등장하는데 작중 인물들의 무의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필름 느와르에서 가져온 듯 한 긴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은 귀족에 대해 쌓여있는 피가로의 울분을 공격적으로 그린다.
 
성악가들도 화려하다. 피가로역의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는 굵은 저음이 은빛처럼 울린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에 근사한 눈빛을 가졌다. 그늘진 표정은 익살꾼 피가로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안나 넵트렙코는 현대적인 수잔나에 어울린다. 그녀의 음색 역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비밀 많은 느와르 영화 속 여인처럼 들린다. 다만 연기가 조금 더 능동적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크리스티네 쉐퍼가 맡은 케루비노는 첫 아리아부터 관객의 박수를 받는다. 1막 마지막 피가로의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에서도 곤혹스러워하는 쉐퍼의 표정 연기는 아리아를 부른 피가로보다 뛰어나다. 2막의 아리아 ‘사랑을 아는 여인들’에서는 수잔나와 백작부인, 모두의 여심을 뒤흔든다. 극의 기저에 깔려 있는 동성애적인 긴장을 성공적으로 그려낸다. 독일군 같은 백작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며 마르첼리나, 바질리오 등 조연들도 전체적으로 수준 높다.
 
‘피가로의 결혼’은 어쨌든 행복하게 끝이 난다. 호색한 갑질 백작도, 사랑에 굶주린 백작부인도 모두 잘 살아보자고 말한다. 하인 커플도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린다. 현실에서도 갑과 을의 행복한 악수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사회 전체가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면 해피엔딩을 꿈꾸는 을들도 조금은 더 살맛나지 않을까. ●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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