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장성군에 위치한 백양사 천진암의 전경

정관 스님
세계인 매료시킨 ‘철학자 세프’
정관 스님의 마음 음식
세계인이 열광하는 그의 요리 비결은 무엇일까. 중앙SUNDAY S매거진이 지난 12일 천진암을 다녀왔다. 1박 2일 삼시 세끼, 정관 스님의 마음 음식을 맛봤다.

천진암 초입에 있는 정관 스님의 텃밭
내장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백양사 천진암의 입구에는 정관 스님의 텃밭이 있다. 미슐랭 3스타 식당인 미국 뉴욕의 ‘르 베르나르댕’의 셰프 에릭 리페르가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그 텃밭이다. 밭과 들의 경계 없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자세히 봐야 비로소 빨간 고추와 보라색 가지가 보인다. 비료를 주지 않고 자연에서 저절로 자라나게 두는 게 스님의 농사법이다. 정관 스님은 “담양 오일장에 다녀 올테니 밭도 보고 편히 앉아 쉬고 있으라”고 말했다. 산의 일부 같은 텃밭을 지나 암자에 도착하니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였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보살 한 분이 커피를 내려줬다. 한 달째 머물고 있다는 그는 석 달을 계획하고 천진암에 왔다고 했다. 미국의 요리학교 CIA에 다니는 강승완(27)씨는 “한식의 기본을 배우고 싶어 방학동안 머물렀고 졸업 후 다시 올 계획이다”고 말했다. 15년째 이어진 인연도, 갓 열흘된 인연도 있었다. 국적과 나이는 천차만별이었지만 “정관 스님의 요리와 철학을 배우겠다”는 한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천진암은 거대한 열린 주방 같았다. 정관스님은 제일 바쁘게, 제일 빠르게 움직이며 주방을 진두지휘했다. “지난해에 비해 많이 내려 놓았다”지만 작은 체구의 스님은 총알처럼 날렵했다.
하안거가 해제된 천진암의 밥상은 어떨까. 여름방학을 맞은 스님들의 먹거리 말이다. 정관 스님은 “수행할 때 스님들은 보통 두 끼를 먹지만 해제 후 활동을 많이 할 때는 세 끼를 먹는다”며 “약이 되기도 하지만 그르치게 먹으면 나를 망치는 것 또한 음식”이라고 덧붙였다. 천진암의 세끼 밥상은 나와 음식이 지금 존재하는 이유였다.

스님을 미소 짓게 하는 삼복더위 보양식 ‘홍두깨 칼콩국수’ 저녁상

삼시세끼 저녁상인 칼콩국수를 만들기 위해 스님은 직접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 국수 가락을 만들었다.
“스님들이 여름에는 국수를 제일 좋아해요. 밀가루에 냉기가 있어 열기 조절에 좋지요. 여름철 수행하기 편한 몸을 만들어 줍니다. 스님들이 국수가 하도 좋아 싱긋이 웃는다고 해서 ‘승소(僧笑)’라고도 하지요. 단백질의 보고인 콩국수는 스님들에게 최고 보양식입니다.”
‘승소 국수’를 한 젓가락 들어 먹었다. 순 토종밀인 앉은뱅이 우리밀이 구수하게 감겨 들어왔다. 하도 부드럽게 술술 넘어가서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잊은 채 허겁지겁 먹고 말았다. 지난해 김장철에 담근 짠지와 오이지로 만든 짭짤한 냉국이 고소한 콩국수와 잘 어울렸다.
스님은 음식을 만들 때는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만들고, 먹을 때는 슬로푸드처럼 천천히 먹었다. “음~ 진짜 맛있다”며 정성껏 만든 저녁상에 스스로 집중했다. 자극적인 음식으로 빨리 배를 채워야 했던 속세와는 분명 다른 식사자리였다. 밥상머리에서는 국수를 “후룩후룩” 넘기고, 짠지를 “아작아작” 씹는 여덟 입소리가 오래 합창했다. 맛있고 즐거웠다. 속도 편했다.
늦은 밤이 돼서야 주방이 아닌 선방에서 스님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스님은 “종일 주방에 있다 오후 10시~11시나 돼야 내 시간이 생기는데, 그때부터 컴퓨터 앞에서 강의 자료를 만든다”며 웃었다.
“음식으로 감정을 교류하고 마음으로 먹는다”

점심상으로 만든 나물 한 상(밥을 기준으로 왼쪽부터 고추 볶음·고사리나물·박나물·고들빼기 무침·가지나물·김치·된장찌개)과 단호박 두부찜.

주방 옆 발효실에는 각종 청이 담긴 장독대가 가득하다.
- 사찰음식이란 뭔가.
- “스님들의 수행 음식이자, 자연과 함께하는 제철 음식이다. 오신채(마늘ㆍ부추ㆍ달래ㆍ흥거ㆍ파)를 쓰지 않고, 채소 위주의 저장 음식이 발달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절집이 산으로 쫓겨나지 않았나. 스님들이 산에서 산나물·풀뿌리·나무 열매로 음식을 했다. 어떤 식물이든 다 독이 있는데, 그걸 제거하고 먹어야 하니 식자재에 대한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게 됐다. 일명 약선식(藥膳食)이다. 그게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는 거다. 장아찌 같은 저장음식 종류가 50가지가 넘는다.”
- 스님이라고 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지 않나.
- “어릴적부터 관심이 많았다. 음식을 만들고 스님들한테 늘 물어본다. ‘오늘 방귀 뀌셨나’ ‘트림은 얼마나 하셨느냐’고. 식당으로 치자면 가장 까다로운 손님이 수행하는 스님들이다. 참선하는 사람들은 예민하다. 국수 배합만 놓고서도 오랜 실험을 거쳤다. 오늘도 국수 먹으며 자꾸 물어본 이유다. 내가 실없이 물어보겠나. 음식을 통해 감정상태까지 읽는다.”
- 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기억 남는 순간을 꼽자면.
- “열여덟에 공양간에서 공양주로 밥을 짓는데 어려웠다. 스님들 입맛이 다 다른데 솥은 하나지 않나. 어느날 가마솥에 밥물을 앉혀 놓고 가만히 생각하다, 밥 한쪽을 살짝 밀어 높낮이를 달리해 밥을 지었다. 그랬더니 한 솥에서 된 밥, 보통 밥, 진 밥이 함께 나왔다. 취향에 따라 밥을 펐다. 그 뒤로 밥 잘한다는 소리를 계속 들었다. 절을 옮기게 됐을 때 그 가마솥을 떼가겠다고 할 정도로 음식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출가했지만 전라도 주지로 20년간 살며 온동네를 다니며 식재료를 많이 배웠다. 체화된 레시피가 식재료를 보면 그냥 나온다. 지금껏 똑같은 레시피로 강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 사찰음식이 생경할 법한데, 해외에서 더 인기다.
- “문화는 다르지만 결국 음식은 ‘한 맛(一味)’이다. 간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어떤 식재료든 ‘오미(五味)’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루면 된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는 적절한 맛이다.”
- 마음 음식이란 뭔가.
- “나를 알게 하는 힘과 에너지를 주는 것이 음식이다. 미식도, 탐식도, 과식의 대상도 아니다. 사람은 음식으로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로 음식을 만든다. 정해진 레시피가 아니라 마음 에너지에 따라, 식재료의 본질을 생각하면 누구든지 요리할 수 있다. 식재료를 아는 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화분에 고추든 상추든 한 포기의 식재료를 꼭 키우라고 권한다.”
아침상은 감자콩나물콩죽, 점심상은 탱자청으로 무쳐낸 나물 한상

저녁상으로 준비한 홍두깨 칼콩국수와 제철 메밀나물, 오이지 및 짠지 냉국, 제피 넣은 얼갈이김치.

매주 일요일 외국인을 대상으로 천진암에서 열리고 있는 사찰음식 체험 행사의 모습.
점심상은 외국인 12명과 함께 준비했다. 일요일 오전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찰음식 체험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이다. 백양사의 김동성 템플스테이 팀장은 “지난해부터 시작했는데 넷플릭스 방영 이후 매주 10~20명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님의 모습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마치 연예인을 본 듯 탄성을 질렀다. 스님은 텃밭에서 갓 따온 상처자국 많은 가지를 들고서 수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제멋대로 자란 식재료가 자기 맛을 제일 풍부하게 냅니다.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를 잘 아는 게 중요해요. 사람도 살면서 멍들기도 하잖아요. 식재료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음식을 만들기 위해 대체로 기구를 쓰지 않아요. 열 많은 손바닥 대신 손가락을 사용하세요.”
스님은 제철인 메밀나물을 무칠 때 탱자청을 넣었다. 사찰에 있는 500년 된 탱자 나무에서 딴 탱자로 만들었다. 4년 묵은 된장으로는 국을 끓였다. 시간이 만든 음식에 참가자들은 감탄했다. 멕시코에서 스님을 보기 위해 방한했다는 알마(36)는 “스님이 말하는 방법, 요리하는 방법과 철학, 그 모든 게 놀랍다. 음식과 내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삼시 세끼의 마지막상인 나물 한 상을 참가자들과 함께 먹었다. 멕시코ㆍ노르웨이ㆍ이탈리아ㆍ폴란드ㆍ대만ㆍ홍콩ㆍ한국에서 온 사람들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야미(yummy). 맛있다!” ●
장성(전남)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