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양적 완화의 그늘, 중앙은행에 쌓인 자산들

런던 아이(London Eye)
거품 수준에 접근한 채권에 이어 주식도 최고치로 치닫고 있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 3월 최저치인 6627을 기록했던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 지수는 최근 2만2000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이전의 최고치였던 1만4000선을 되찾기까지는 대략 4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 후 4년 동안은 급등세를 보였다. 금융위기 이후 활기 없는 실물 경제를 감안할 때, 현재의 주가 수준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특히 전 세계의 사적·공적 부채의 증가를 감안하면 더 걱정이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풀린 돈
0% 금리 이어 사상최고 주가 불러
통화 축소 필요한데 경기침체 우려
중앙은행이 '꼬리 리스크' 주범 돼

 
주가 급등은 중앙은행의 느슨한 통화 정책에 따른 저금리의 결과다. 그런데 모든 중앙은행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똑같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거의 10년에 걸친 양적완화 이후 중앙은행의 자산 규모는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늘어났는데, 뾰족한 해결 방법도 없다. 주요 7개 중앙은행이 보유한 자산 총액은 2007년 6조5000억 달러에서 2016년 거의 20조 달러로 늘었다. 이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의 시가총액보다 훨씬 크다. 전체적으로 중앙은행의 자산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40%를 차지한다.
 
한국은행은 누구보다 일찍 완화된 통화정책에 착수해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자산 총액은 같은 기간 달러 기준으로는 17% 증가했지만 원화 기준으로는 50% 이상 늘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GDP 대비 자산 총액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이는 7개 중앙은행 평균인 37%보다 훨씬 낮다. 한국은 분명히 주의가 필요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미국·영국·스위스 중앙은행 자산 5~6배로
한국과는 반대로 스위스국립은행(SNB)은 놀랍게도 GDP의 115%에 해당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자산 규모는 같은 기간 552% 증가했다.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스위스프랑 가치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 결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산 규모도 스위스와 비슷한 비율로 늘었다. 현지 통화 기준으로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578% 늘어난 영국은행(BOE)이다. 달러 기준으로는 319%를 기록했지만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 가치 하락 탓에 증가폭이 컸다. 중국 인민은행(PBOC)의 자산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유럽 중앙은행(ECB)은 총 자산이 5조3840억 달러로 인민은행을 제치고 자산규모가 가장 큰 중앙은행이 됐다.
 
당분간 정책 변경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최근 너무 잦은 금리 인상을 우려하는 발언을 했고,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연말까지 매달 600억 유로(700억 달러)의 유가 증권을 계속 사들이는 방식으로 유로존에 계속해서 돈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8년 Fed 양적 완화의 입안자는 당시 의장이던 벤 버냉키였다. 80년대 초, 그는 케인스경제학이 1930년대의 대공황을 피하는 데 실패한 이유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내놨다. 대공황의 교훈은 금리가 0% 수준으로 낮아지면 유동성 함정이 생기면서 실물 경제를 자극하기 위한 Fed의 정책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버냉키는 금융업체가 기업과 가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신용 메커니즘의 붕괴가 진정한 문제라고 봤다. 신뢰의 상실로 자금 흐름이 막힌 상태이기 때문에 재정 개입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버냉키는 과거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비정통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2009년 리먼의 파산 이후 4주 만에 1조 달러를 시장에 공급했다. 그 후 Fed는 추가적으로 1조 5000억 달러를 풀었다.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실질금리를 0%까지 낮췄고, 신용 메커니즘을 파괴할 수 있는 신뢰의 붕괴를 피하기 위해 유가증권을 사들였다. 대부분의 세계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라 불리는 이런 정책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또 다른 대공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저금리와 대규모 유동성이 주식 시장에만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기대했던 실물 경제의 회복은 실현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문제다. 중앙은행들의 자산을 큰 혼란 없이 축소하려면 세계 경제의 커다란 확장은 필수적이다. 당장은 금융 위기로부터 빠져나오고 있지만 대규모 보유 자산이라는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방안은 여전히 미지수다.
 
가장 두려운 것은 중앙은행의 자산 매각이 경기 회복에 심각한 지장을 줄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메릴린치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현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꼬리 리스크(tail risk)다. 통계적으로 발생 가능성이 낮고 예측이 어렵지만 현실화되면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요소라는 의미다. 위험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의 ‘긴축 발작’ 사태에서 보듯이 중앙은행이 약간의 실수만 해도 시장에서는 의도와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둘째, 금리 인상으로 통화 공급을 죄면 자산 가격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셋째, 중앙은행이 보유한 수조 달러의 자산을 매각하면 최악의 경우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확실한 경기회복 없이는 또 다른 위기
대규모 경제 개입으로 중앙은행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시장을 저금리 자금의 중독자로 만드는 자비로운 거대 조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상적으로 중앙은행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인플레이션 수준을 관리하는 명확한 목표에 집중해야 하며, 금융시장을 지키는 최종 대출자로서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시장을 규제하는 소위 거시 건전성 감독으로, 증권을 사들이는 투자 전문가로 역할을 확장했다. 자신의 판단에 따라 특정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결국 정치적인 판단이다. 게다가 이 같은 개입 때문에 또 다른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을 수도 있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나눠 원래의 기능으로 되돌리고,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자산을 민간업체에 넘겨 처리하는 방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되돌아보면 리먼을 구제하는 것이 훨씬 적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대마불사’원칙은 어차피 구제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은행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다. 그러나 훨씬 큰 도덕적 해이는 금융업체들이 현실 경제에서 도피해 저금리의 달콤한 버블에 빠져 있는 현 상황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의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앙은행에 맞서지 말라는 격언은 오늘날에도 더없이 유용하다. 하지만 경제가 확실히 소생하는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중앙은행들의 한계가 드러나고 그 첫 희생자는 주식시장이 될 것이다. 경계를 게을리 말라(Caveat emptor).
 
 
로리 나이트
전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장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