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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맞춰서 편집하기 때문에 기억이 불완전

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추억은 기억의 조합이다. 사람들은 경험에 대한 기억의 조각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추억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자신이 실제 경험하지 않은 것을 추억하기도 한다. 이러한 허위기억(false memory)은 사실과 상상이 뒤섞이고, 착각과 혼동이 반복되며 발화한다.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5명 중 1명꼴로 허위기억을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 헐대학 연구팀은 16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어린 시절 기억나는 추억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학생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거나 가족과 휴가를 보낸 추억들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그러나 20%의 학생들은 실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경험했다고 착각했다. 가령 한 학생은 어린 시절 하키를 즐겼다고 추억했지만 실제로는 하키 스틱을 만져 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어릴 때 살아 있는 공룡을 본 적이 있다고 회상한 학생도 있었다.
 
우리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기억과 상상의 혼동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머릿속에 저장된 정보를 떠올린다는 점에서 기억과 상상의 작동 방식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계속 상상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진짜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오히려 기억의 정확성을 방해할 수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대학 연구팀은 489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관심 분야와 무관심 분야별로 각각 4건의 뉴스를 보여 주었다. 이후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뉴스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무관심 분야보다 관심 분야의 뉴스 내용을 잘못 기억하고 있는 비율이 더 높았다. 관심 분야일수록 지식이 많거나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와 섞일 수 있는 유사기억도 많은 것이다.
 
이처럼 기억은 정보의 결합에 취약하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허위기억을 주입할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팀은 실제로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을 허위기억으로 심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디즈니랜드에서 경쟁사 캐릭터(벅스 바니)가 사람들과 즐겁게 악수하는 가짜 이미지를 보여 주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눈치챌 수 있는 가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실험 참가자의 30%는 어릴 적에 디즈니랜드에서 실제로 벅스 바니를 봤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허위기억을 넘어 타인의 기억을 아예 자신으로 것으로 착각하는 이른바 기억차용(memory borrowing)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앨런 브라운이 447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실험 참가자의 47%는 다른 이의 개인적 사연을 듣고 나중에 자신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한 경험이 있었다. 반대로 나의 경험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53%에 달했다.
 
기억은 완벽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기억이 있어야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기억나지 않으면 모든 일상은 그 즉시 작동을 멈춘다. 우리의 뇌는 맥락을 갖춘 기억이 있어야 비로소 자아감(내 생각이나 행동이 내 것이라는 감정)을 유지하고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이 불완전한 것도 우리의 뇌가 현재에 맞추어 기억의 조각을 무의식적으로 편집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위해 존재한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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