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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여자는 ‘혼밥’도 못하는 나라

 
“여성 승객은 팔과 다리를 드러내지 마시오.”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군 한 항공사의 복장 규정입니다. 황당하기까지 한 이런 드레스코드를 요구하고 있는 곳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항공사 사우디아 항공. 국적과 상관없이 자사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지침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승객은 이를 알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공항에서 급히 옷을 사 입거나 표를 환불한다고 하네요.    
 
눈과 손, 발을 제외하고 온몸을 가린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 [AP=연합뉴스]

눈과 손, 발을 제외하고 온몸을 가린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 [AP=연합뉴스]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외국 여성에게조차 이런 규정을 내밀고 있을진대, 자국 여성에게 요구하는 건 얼마나 많을까요?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 네 번째 이야기, 중동의 부국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 실상을 들여다봤습니다.
 
#가려가려다가려 #나도미니스커트입고싶다
지난 7월, 단 5초짜리 동영상에 사우디가 들썩였습니다. 여성이라면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온몸을 가려야 하는 이곳에서,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여성의 영상이 SNS를 강타한 것입니다. 이 여성은 구금됐다 곧 풀려났지만, 사우디의 여성 인권에 대해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주목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외부에선 온몸을 가리는 아바야를 입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유적지와 사막을 돌아다닌 여성에 대해 경찰이 불기소하고 석방했다.

외부에선 온몸을 가리는 아바야를 입어야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유적지와 사막을 돌아다닌 여성에 대해 경찰이 불기소하고 석방했다.

 
사실 여성의 복장에 엄격한 건 사우디뿐 아닙니다. 대부분 이슬람권 국가에선 여성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스카프인 ‘히잡’ 등을 착용해야 하죠. 다만 그 정도가 각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사우디의 경우는 무척 엄격합니다. 얼굴ㆍ손ㆍ발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릴 수 있게 망토 형식으로 두르는 ‘아바야’를 히잡과 함께 착용해야 하거든요. 눈 아래 얼굴을 가리는 스카프인 ‘니캅’도 둘러야 합니다.  
 
물론 사우디보다 엄격한 곳도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등 일부 국가에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것에 더해 눈 부분마저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를 강제하고 있죠.
이러한 복장에 대해선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과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사우디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복장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운전하지마 #크게웃지마 #생리중엔코란만지지마
사우디는 여성에게 운전을 금지하는 유일한 국가인데요, 이슬람 율법에 써 있는 게 아닙니다. ‘나쁜 남성에게 여성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정부의 판단 아래 생겨난 지침이라네요.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아주 많은 자유의 박탈을 뜻합니다. 운전해주는 남자 없이는 어디에도 갈 수 없고, 학교에 가거나 일을 하려면 남성의 동의가 필수적이란 얘기거든요.  
 
30년 넘게 사우디아라비아를 취재하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을 지냈던 캐런 앨리엇 하우스가 자신의 책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우디 사회에서 여성 운전의 상징적 중요성을 간과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한 이유입니다.  
 
왜 운전을 못 하게 할까요?  
저자는 “여성이 운전의 자유를 행사하게 되면, 남성이 거머쥔 지배의 고삐가 끊어지고 “와하비즘(엄격한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전체의 핵심 전제, ‘남자는 알라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한다’가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영화로보는사우디인권 #여성감독인터뷰
2012년 ‘와즈다’(하이파 알 맨사우어 감독)란 작품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사우디 최초의 영화였죠.
‘최초’라니 그럴 리가 없다구요? 놀랍지만 사실입니다.
 
사우디에선 영화 공개 상영을 ‘우상 숭배’로 여겨 금지하고 있거든요. 보여줄 수 없으니 만들려는 사람도 없었죠. 그런데 이 최초의 영화를 바로 여성이 만든 겁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작품이 그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는 거예요. ‘와즈다’가 다루고 있는 문제가 바로 사우디 여성의 ‘이동권’입니다.
영화 '와즈다'의 한 장면

영화 '와즈다'의 한 장면

 
영화 속 와즈다는 10대 소녀입니다. 활달하고 똑똑한 소녀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와즈다가 더 자라면 자전거는 그가 여성이란 이유로 완전히 금지 대상이 됩니다.     
 
영화는 금기를 깨고 자전거를 타고자 하는 소녀의 욕망을 따라 달립니다. 맹랑한 소녀를 쫓다 보면 강력하고 폭력적인 억압의 일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성은 크게 웃어도 안 되고, 생리 중에는 맨손으로 코란을 만져서도 안 됩니다. 남편이 아들을 낳겠다며 새로운 부인을 들여도 침묵해야 하죠. 법적으로 1부 4처까지 허락되니까요.
2014년 6월 이 영화의 한국 개봉 당시 감독은 저랑 e메일로 나눈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외국 관객들은 사우디 여인들의 이런 일상에 대해 잘 모를 겁니다. 사우디 여성으로 사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죠. 부모님이 내 성별 때문에 내가 못할 일은 없다고 가르치셨기에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면 세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영화 '와즈다'를 만든 하이파 알 맨사우어 감독

영화 '와즈다'를 만든 하이파 알 맨사우어 감독

영화 '와즈다'의 한 장면

영화 '와즈다'의 한 장면

영화를 촬영할 때 겪은 일도 털어놨죠.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땐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어요. 여성인 내가 낯선 남자들과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기에, 차 안에 숨어서 무전기로 지시해야 했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범퍼카도조용히타 #운전시위 #자전거권쟁취아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우디 여성들은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탈 때 부딪치지 않고 ‘조용히’ 즐긴다고 합니다. 부딪치며 타는 맛에 즐기는 범퍼카를 실제 운전하듯 모는 겁니다. 유일하게 운전대를 잡아볼 수 있는 기회라서죠.  
 
여성들의 불만은 목 끝까지 차올라 있습니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운전 시위’가 일어난 것이 그 예입니다. 시위가 전면 금지돼 있는 나라에서, 가장 억압당하는 존재인 여성들이 뛰쳐나온 거죠. 사우디의 여성 인권 활동가 마날 알 세리프가 SNS를 통해 이 시위를 주도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사우디 여성들 스스로가 움직인 거죠.
이런 운동 덕분일까요. 2013년, 사우디 정부는 여성에게도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허했습니다. 물론 여러 제약을 달았지만요.  
사우디의 한 여성이 정부의 '여성 운전 금지'에 항의하는 뜻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 [중앙포토]

사우디의 한 여성이 정부의 '여성 운전 금지'에 항의하는 뜻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 [중앙포토]

 
#남자는필요없어 #너나보호하세요 #나도혼밥하자
수많은 억압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후견인 제도’입니다. 한마디로 ‘여성은 남성 후견인이 있어야만 뭐든 할 수 있다’고 못박은 건데요, 약 30년 전 도입된 제도입니다. 후견인은 주로 아버지나 남편, 심지어 아들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 제도 때문에 사우디 여성은 남성 후견인의 허락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도, 직장에서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결혼도 마음대로 못하죠. 그뿐 아닙니다. 일상적인 외출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그 즉시 종교경찰에 붙들려 가게 되거든요.  
 
사우디 레스토랑에서 ‘혼밥’하는 여성을 찾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심지어 2000년대 이전까지 여성에겐 신분증도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남성 후견인의 신분증 구석에 이름을 쓰면 그만이었거든요.  
 
캐런 앨리엇 하우스는 “사우디 여성들은 어릴 때에는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지배받다가, 성장하면 남편이란 새로운 지배자를 맞아들인다”며 “아내와 딸 모두 남성 가족이 내키는 대로 육체적ㆍ정신적ㆍ성적인 학대를 받는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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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는못산다 #참정권도쟁취했다
그렇다고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2015년에는 드디어(!) 여성이 참정권을 얻기도 했죠. 국왕이 입법권과 사법권, 행정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절대군주국 사우디에선 사실 남성의 정치 참여도 무척 제한적인데요. 국민이 뜻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지방의회’ 의원 선출에 2015년 4월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겁니다.
사우디 첫 여성 참여 선거.

사우디 첫 여성 참여 선거.

 
2015년 12월 12일 지방선거 날, 여성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은 남성의 2배인 80%에 달했죠. 당선된 여성은 전체 의원의 1%(20명) 남짓이었지만, 그럼에도 큰 전진이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사우디의 공립학교가 역사상 처음으로 여학생을 위한 체육수업을 도입하겠다고 하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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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를 두고, 개혁파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자가 최근 왕위 계승 서열 1위에 오른 덕분이라고 분석하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 뒤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온 사우디 여성들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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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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