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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고, 피아노 치고, 영상 찍고 … 여기 도서관 맞아요?

대학 도서관 ‘시끄러운 변신’
연세대 중앙도서관 1층에서 학생들이 테이블에 앉아 토론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리모델링한 이 도서관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끄러운 도서관’이다. 잠을 자거나 쉴 수 있는 소파도 마련돼 있다. [사진 연세대]

연세대 중앙도서관 1층에서 학생들이 테이블에 앉아 토론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리모델링한 이 도서관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끄러운 도서관’이다. 잠을 자거나 쉴 수 있는 소파도 마련돼 있다. [사진 연세대]

지난 17일 오전 10시30분 연세대 중앙도서관 1층에 들어서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원형 테이블에 분홍색·노란색 의자들은 마치 카페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방학 중에도 독서대를 앞에 놓고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사이에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토론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책 없이 앉아 친구들과 대화만 나누는 학생들도 있었다.

연세·한양대 ‘열린 도서관’
칸막이 대신 카페 같은 원형 테이블
자유롭게 떠들고 쉴 수 있게 개조
한편엔 청년 창업 체험 공간 마련

고려대 크리에이티브 도서관
각종 카메라·조명·마이크 등 설치
공모전에 낼 홍보 동영상 등 촬영
누워 책 보거나 잠자는 곳도 있어

 
통상의 도서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소음이 허용됐다. 이른바 ‘시끄러운 도서관’이다. 2300㎡ 규모의 공간은 연세대가 지난 5월 리모델링했다. 혼자 앉아서 책만 보는 ‘시험공부형’ 도서관을 벗어나 보자는 게 목적이다. 스터디그룹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화학과 곽소현(26)씨는 “시험공부를 할 때는 주로 2층의 칸막이형 도서관을 이용하고 조별 활동을 하거나 토론이 필요할 때는 여기로 내려온다”고 말했다. “외국인 학생과 대화를 나누며 언어를 배우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소파도 있다. 도서관 한편에는 청년 창업을 돕는 체험 공간도 마련됐다. 이 공간엔 창업 스터디를 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3D 프린터가 구비돼 있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시끄러움을 허용한다. 혼자 두꺼운 책에만 집중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꽃피우는 곳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연세대는 이곳이 창업의 메카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실리콘밸리에서 따 온 ‘Y밸리’라는 별칭을 붙였다.
 
하지만 여전히 도서관의 엄숙한 분위기도 남아 있다. 생명공학과 문서영(24)씨는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도서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돼서 좋지만, 옆 사람들 눈치 때문에 카페처럼 자유롭게 떠들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날 도서관에서 전화 통화를 하던 한 학생은 통화가 길어지자 주위를 의식한 듯 밖으로 나갔다. 대학 관계자는 “여러 명이 대화하며 공부할 수 있는 테이블에 혼자서 공부하는 학생이 앉으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앉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사진 한양대]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사진 한양대]

도서관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연세대뿐만 아니라 한양대에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이달 초 중앙도서관인 백남학술정보관 1층과 지하 1층을 리모델링했는데 변화의 콘셉트가 ‘대화하는 열린 도서관’이다. 칸막이 책상과 컴퓨터가 일렬로 배치돼 있던 공간에는 원형의 테이블이 놓였다. 여럿이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파가 생겼고, 전자 피아노도 마련됐다. 엄익상(중문과 교수) 학술정보관장은 “도서관을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제 놀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는 곳이 되고 있다. 인테리어에도 원색을 많이 사용해 젊은 학생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화하는 도서관’ 아래층은 ‘토론하는 도서관’이다. 지하 1층에 ‘하브루타존’이라는 이름으로 5개의 방이 만들어졌다. 한양대 관계자는 “토론하며 답을 찾는 유대인들의 전통적 교육 방법 ‘하브루타’를 우리 도서관에 구현해 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학생 두 명이 들어가 시끄럽게 토론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방음 장치를 했다.
 
정책학과 김나희(22)씨는 “지금까지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은 강의실밖에 없었다. 교수님이 아닌 또래 친구들끼리 자유롭게 떠들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도서관 안에 새로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서승환 백남학술정보관 팀장은 “토론을 통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공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브루타식 교육이 무엇인지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상 장비를 갖춘 도서관도 등장했다. 고려대가 지난 5월 중앙광장 지하 1층의 칸막이형 열람실을 바꿔 만든 곳이다. 이곳에는 각종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 웹캠 등이 구비돼 있다. ‘크리에이터 도서관(Creator Library)’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이상한 도서관’이라는 주제의 학생 공모전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영상 콘텐트를 직접 만들 수 있다. 웹캠과 마이크를 이용해 즉석에서 1인 방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박효진 고려대 중앙도서관 주임은 “자신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찍는 학생부터 쇼핑몰 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학생까지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본인 강의를 촬영하려는 교수들도 있어서 도서관이 더 널리 활용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상 촬영장비가 갖춰진 고려대의 ‘크리에이터 도서관’. [송우영 기자]

영상 촬영장비가 갖춰진 고려대의 ‘크리에이터 도서관’. [송우영 기자]

 
지난 16일 크리에이터 도서관의 한 방에서는 학생 6명이 공모전에 출품할 영상을 찍고 있었다. 같은 학회 소속인 학생들은 법정 다툼을 다룬 책의 주인공이 돼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대사를 외우고 표정 연기를 가다듬으며 웃고 떠들었다. 팀장인 심리학과 박지윤(21)씨는 “영상 촬영을 위해 외부 장소를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학교가 이런 공간을 무료로 제공해 줘서 좋다. 학교 안이어서 편하기도 하고 카메라도 웬만한 외부 스튜디오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는 크리에이터 도서관을 통해 학생들의 창업을 도울 계획이다. 고려대 관계자는 “9월부터 CJ E&M과 함께 공모전을 열어 1인 방송을 할 학생 10~20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이들의 영상 콘텐트 제작을 도와 1인 창업 모델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도서관 안에는 바닥에 누워서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학교 측은 “음식 반입이 가능한 이 마루 공간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누워서 책을 보거나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젠테이션이나 공연도 가능하다.
 
[S BOX] 정보 아케이드, 낮잠 공간 … 미 대학은 90년대부터 변신
대학 도서관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이용자들의 행동 변천 때문에 변하고 있다. ‘한국도서관·정보학회’에 따르면 미국의 대학들은 1990년대 초부터 도서관에 디지털 정보를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정재영 서강대 중앙도서관 부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은 1992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가 ‘정보 아케이드’라는 공간을 만든 이후 많은 대학이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는 카페처럼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공부하는 도서관이 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도서관에는 학생들이 칠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유리 벽과 낮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엄익상 한양대 학술정보관장(중문과 교수)은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대만과 홍콩의 대학들에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열린 분위기의 도서관이 많다.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학 도서관의 변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정재영 서강대 중앙도서관 부장은 “공간 변화에 매몰되다 보면 도서관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연구·학술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카페형 도서관이 바람직한 방향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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