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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과학고 형들 제치고 발명왕, 산골 초등생 덕룡이의 기적

전교생 30명 안동 녹전초등학교 ‘과학명문’ 된 비결
산골학교는 사교육 해방구다. 학교 과학실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자석구슬게임을 하고 있는 안덕룡군(맨 오른쪽)과 5학년 친구들. 덕룡군 왼쪽이 권오일 지도교사.[프리랜서 공정식]

산골학교는 사교육 해방구다. 학교 과학실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자석구슬게임을 하고 있는 안덕룡군(맨 오른쪽)과 5학년 친구들. 덕룡군 왼쪽이 권오일 지도교사.[프리랜서 공정식]

사방에 굽은 소나무 가득한 산. 평지가 부족해 벼농사는 쉽지 않다. 과수원과 소 키우기, 밭농사 정도면 나름 ‘부농(富農)’이란 소리를 듣는다. 시내 구경이라도 하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두 시간은 나가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강국답게 산골에서도 인터넷으로 세상 구경을 할 수 있지만, 그건 피부로 느끼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자석 이용 거리 조절 가능한 구슬 게임
전국 학생 과학발명품대회 대통령상

노인 치매 예방 등에도 활용 가능성
창의·탐구·경제성 측면서 가장 우수

녹전초, 매년 각종 과학대회 휩쓸어
과학 전문성·열정 많은 교사들 큰 힘

태블릿PC 17대, 드론도 1대 구비
교육 기자재 도시 학교 수준 넘어

 
11세 산골 소년 덕룡이가 사는 곳은 경북 안동시 녹전면 갈현리. 안동 시내에서도 버스를 타고 40여㎞, 녹전면 소재지에서도 6㎞ 가까이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덕룡이의 꿈은 ‘CEO(최고경영자)’였다. 검은색 고급승용차 뒷자리에 앉을 수 있고, 세상을 두루 구경할 수도 있다. “돈을 많이 벌어 농사로 고생하는 엄마·아빠를 편하게 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녹전초등학교는 한때 전교생 700명을 수용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녹전초등학교는 한때 전교생 700명을 수용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최근 덕룡군의 꿈이 사장님에서 ‘과학자 또는 발명가’로 바뀌었다. 지난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제39회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은 덕분이다. 영재만 다닌다는 과학고 2년생도 덕룡군을 넘지 못하고 국무총리상에 그쳤다. 1학기 초인 지난 3월 말 안동시 대회와 5월 경북도 대회에서 연이어 특상을 받아 전국대회까지 진출하면서 낳은 성과다.
 
덕룡군의 작품은 ‘거리 조절이 가능한 당기고 밀고 구슬게임’이다. 자석의 힘으로 쇠구슬을 밀어내는 과학원리를 이용했다. 거리 조절이 가능한 다섯 가지 구슬 채를 이용해 게임판에서 구슬 채 골프게임, 그래스 컬링 게임, 게임게이트 통과 게임, 구슬 채 볼링 게임 등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다. 자석과 자석 사이에 플라스틱판의 개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자력을 조절해 거리 조절을 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장규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은 창의성과 탐구성·실용성·노력도·경제성 측면에서 가장 우수한 출품작으로 인정받았다”며 “단순한 과학완구로서의 활용뿐 아니라 노인 치매 예방 등 건강용품으로서의 활용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창의적이고 훌륭한 과학작품이 반드시 도시의 풍요로운 환경과 조건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덧붙였다.
 
교내에는 골프연습장도 있다.[프리랜서 공정식]

교내에는 골프연습장도 있다.[프리랜서 공정식]

덕룡군이 다니는 학교는 전교생이라고는 30명밖에 되지 않는 산골학교 녹전초등학교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개교한 이 학교는 60~70년대 전교생이 700명에 달했으나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이어진 저출산·고령화로 폐교 일보직전까지 몰렸다. 그나마도 7㎞나 더 떨어진 분교와 일주일에 한두 번씩 통합수업을 할 때야 전교생 30명을 채울 수 있다.
 
녹전초등학교는 시골 소학교이지만 나름 ‘과학명문’이다. 덕룡군 외에도 지난 6월 열린 경북청소년과학탐구대회에서도 금상 1팀, 장려상 1팀의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에도 과학전람회·경북청소년과학탐구대회에서 총 4개 팀이 특상·동상 등의 성과를 올렸고,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매년 크고 작은 과학 관련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산골 초등학교생이 전국 단위 발명대회에서 영재들만 다닌다는 과학고생을 제치고 대통령상까지 받은 비결이 뭘까. 더구나 서울 등 대도시에는 과학탐구대회와 발명품경진대회 준비를 위한 학원이 성행하는데 사교육이라고는 받아본 적도, 받아볼 수도 없는 아이들이 매년 일궈 내는 성과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안덕룡군이 자신이 고안한 자석과 구슬을 이용한구슬채(사진 아래) 장비와 놀이판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의 꿈은 이제 과학자다.[프리랜서 공정식]

안덕룡군이 자신이 고안한 자석과 구슬을 이용한구슬채(사진 아래) 장비와 놀이판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의 꿈은 이제 과학자다.[프리랜서 공정식]

안덕룡군(사진 위)이 자신이 고안한 자석과 구슬을 이용한구슬채(오른쪽) 장비와 놀이판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의 꿈은 이제 과학자다.[프리랜서 공정식]

안덕룡군(사진 위)이 자신이 고안한 자석과 구슬을 이용한구슬채(오른쪽) 장비와 놀이판을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의 꿈은 이제 과학자다.[프리랜서 공정식]

 
비결은 ‘사람’, 즉 선생님이었다. 덕룡군을 지도한 권오일 교사는 안동시교육청 산하 발명교육센터에서 수년간 근무를 하다 2015년부터 녹전초등학교로 옮겨 교편을 잡았다. 최근까지 권 교사의 지도로 과학 관련 대회에서 수상한 학생이 4명이나 된다. 녹전초등학교에는 권 교사를 포함, 지역발명교육연구회 소속 교사만 6명, 안동시교육청 부설 영재교육원 발명영재 지도 강사 2명 등 대다수 교사들이 과학 관련 활동을 하고 있었다. 과학 관련 교사 역량 강화 연수가 있으면 교사 전원이 참여해 전문성을 키웠다.
 
권 교사는 “어찌하다 보니 과학에 관심 많은 교사가 많은 게 녹전초등학교의 전통이 돼 버렸다”며 “매년 좋은 선생님들이 이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덕룡군의 경우도 최초 아이디어는 직접 냈지만 시·도대회와 전국대회를 거치면서 권 교사와 같은 과학지도교사의 도움과 경북과학교육원 컨설팅, 안동발명교육센터 도구 및 시설 사용 등을 통해 발명품이 조금씩 진화했다.
 
김성인 녹전초등학교 교장은 “아이들은 비어 있는 하얀색 도화지와 같아서 선생님 역할이 중요하다”며 “전문성과 열정·애정을 갖춘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밀착해 과학교육을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녹전초등학교는 과학교육 외에도 도시학교 뺨칠 정도의 질 높은 교육 여건을 갖추고 있다. 전교생 30명에 교장을 포함한 교사의 수가 12명으로, 교사 한 명당 학생 수가 2.5명이다. 행정실장 등 직원을 포함하면 학생 30명을 위한 교직원이 22명에 달한다. 과학 관련 교육 기자재와 각종 시설도 도시의 수준을 넘어선다. 과학실에는 태블릿PC만 17대, 드론도 한 대 비치돼 있다.
 
정규수업이 끝난 뒤에도 영어·미술·방송댄스·골프 등 11가지의 방과후 수업이 오후 4시20분까지 이어진다. 여름방학(7월 31일~8월 20일) 중에도 학교는 여전히 돌아간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골프수업은 학생 수 감소로 비어 버린 교실을 허물고 지은 제대로 된 골프 연습장에서 할 수 있다. 산골마을 학교지만 ‘산 넘고 물 건너 10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는 말은 옛 얘기다. 학생들은 전원 스쿨버스로 등하교한다.
 
김 교장은 “학기 중은 물론 방학 중에도 방과후 수업이 이어지고 도시 학교와 달리 전액 무료인 데다 전교생이 다 참여한다”며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농사일에 바쁜 부모가 일을 마칠 때까지 아이들에게 다양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S BOX] 일대일 맞춤 교육, 방과후 학습 무료 … 농어촌 학교라서 좋아요
행정단위 읍·면으로 구분되는 농어촌 지역 초등학교는 도시 지역과 달리 다양한 경험과 사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예산 지원이 많다.
 
시·도 교육청마다 차이가 있지만 안동 지역의 경우 우선 방과후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1~2학년은 돌봄 프로그램, 3~6학년은 학력과 특기 신장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다양한 방과후 교실이 무료로 제공된다. 학생들의 체험 위주 교육활동을 위한 당일 현장체험학습, 1박2일의 도시문화체험학습·스키캠프 등도 무료다. 이외에 예절교실, 발명교실, 예술문화체험교실, 환경 교육, 법사랑 교육, 경찰서 교통안전, 소방서 안전교육, 스포츠센터 수영교실 등을 다양한 기관과 연계해 제공한다. 모든 교육경비는 학교에서 댄다. 급식·체험·학습준비물은 물론 수영교실에 필요한 수영복과 수영모자까지도 학교 경비로 지출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방과후학교운영지원금은 농산어촌은 학급당 180만원으로, 도시(학급당 52만원)보다 월등히 많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도 도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학생 수가 적은 소학급이다 보니 정규 교과 지도에서 일대일 맞춤교육 활동이 가능하다.
 
안동=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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