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영화 ‘접속’ 그 후 20년 … 사랑보다 증오가 지배하는 사이버 세상

1997년 개봉한 영화 ‘접속’. 꼭 20년이 됐다. 당대의 청춘 남녀 아이콘이었던 배우 한석규·전도연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다. 그해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여배우 전도연은 최고의 스타가 됐다. 영화 속 두 남녀 주인공이 PC통신을 통해 연애를 하는 것이 당시에는 뉴트렌드였다.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남녀가 컴퓨터에 연결된 전화선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채팅. 밤새 전화요금을 무릅쓰고 파란색 모니터 화면에서 서로를 찾고 마음을 전하던 그 시절의 남녀들은 서로 ‘언젠가 만나야 할’ 운명 같은 것을 믿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영화는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는 말을 유행시키며 PC통신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전화나 인터넷으로 남녀가 연애하는 것을 ‘랜선 연애’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험악해졌는지 시도 때도 없이 사진과 메시지가 오고 가는 요즘, 남녀 간의 관계는 점점 이상해져 가는 것 같다. 마치 ‘종의 전쟁’을 벌이듯이 남혐(남성혐오), 여혐(여성혐오)의 언어가 난무한다. 급기야 최근 여성우월주의를 자처하는 여성 유튜버 ‘갓건배’가 남성들을 대상으로 욕설 방송을 하고 이를 본 일부 유튜버가 ‘죽이겠다’고 직접 찾아가는 일까지 벌어져 큰 논란이 됐다.
 
남녀 사이에 사랑 대신 증오와 편견이 비집고 들어가더니 서로를 저주하는 극단적인 신조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상대 쪽에서 받은 방식으로 되돌려 준다는 ‘미러링’, 한국 남자는 벌레 같다는 ‘한남충’, 페미니즘이 나치와 같다며 붙인 ‘페미나치’를 비롯해 표현하기 민망한 수많은 욕설이 등장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분란을 일으킨 채널들은 조회수가 오르면서 이들 유튜버의 광고수익도 커진다는 점이다.
 
인터넷 정보가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혐오적이라며 별도로 여성주의 정보집합체를 목적으로 하는 ‘페미위키’도 등장했다. 페미위키에선 ‘한남충’이라는 표현을 여성을 비하한 ‘김치녀’의 미러링이라고 설명한다. 또 이를 모욕죄로 판단한 법원의 판결을 ‘여성혐오적 비하에는 꿈쩍 않던 법원이 보여준 이중 잣대’로 해석한다.
 
인터넷의 다양한 사건과 서브컬처, 용어를 다루는 ‘나무위키’ 사이트는 대한민국 젠더 분쟁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성 갈등 역사의 시작을 1998년 군 가산점 논쟁으로 본다. 이 논쟁으로 당시 PC통신 등에서 활동한 1세대 페미니즘 칼럼니스트들이 주목받으며 남성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는 것이다.
 
이렇듯 성 평등 문제는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복잡한 문제이지만 대다수 남녀는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만나는 데 관심이 많다. 인터넷에는 이성의 언어를 연구하는 ‘여자어, 남자어 번역’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괜찮아’라는 말은 남자에게는 그냥 괜찮다는 뜻이지만, 여자에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녀관계 진전을 허락하는 의미의 ‘그린라이트’를 알아내는 방법도 관심사다. 영화 대사로 나와 유명해진 ‘라면 먹고 갈래?’는 이제 대표적인 그린라이트 용어가 됐다.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역시 인터넷 연애 상담. 대표적으로 ‘전차남’이라는 유명한 일본 이야기가 있다. 한 번도 연애를 못해 본 남성이 취객 사이에서 곤란에 처한 여성을 도와준 뒤 여성에게 선물을 받게 되는데 이후 여성에게 연락하는 방법, 옷차림 등에 대해 네티즌들로부터 조언을 받아 사랑에 성공한다는 낭만적인 러브스토리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꽃을 사랑하면서도 물을 주지 않는 사람처럼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태어날 때부터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이유로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사랑도 미움도 결국 배워서 생기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의 사랑. 미워하는 방법이 아닌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