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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힘들 땐 같이 울어요, 조금은 힘이 되겠지요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7월 출간된 신간 중 세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시처럼 일기처럼 편지처럼 …
독백하듯 써 내려간 시인의 산문
사랑과 사람 보듬는 시인의 심성
정답고 포근하고 고운 의지 충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난다
 
산문이라 하지만 시일 수도 있다. 일기 같기도 하고 편지이기도 하다. 독백처럼 흐르다가 잠언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 다른 무엇이라 부르면 어떠랴. 마음 가닿는 데로 읊조리는 듯 찬찬히, 천천히 발성하는 작가의 목울대는 읽는 이의 귓가에서 파닥거리다가 가슴으로 스며든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19쪽)
 
박준(34) 시인은 시 짓는 일을 유서 쓰는 것처럼 느낀다. 숱한 사라짐의 기록이 그의 시 속에 들어온다. 시인은 사람이 사람에게 남긴 말이 유언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에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라 했다. 그가 우리에게 건넨 첫 산문집은 이런 포근하고 정다우며 고운 의지로 충만하다. 책 어느 곳을 펼쳐 읽더라도 독자는 가벼운 비애에 차분하게 젖어 들 수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꼭 울음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일부러 시작할 수도 없고/ 그치려 해도 잘 그쳐지지 않는.//흐르고 흘러가다/ 툭툭 떨어지기도 하며.”(70쪽)
 
여행은, “말수가 적고 소극적인 아이”였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의 시인에게 새로운 취향을 탄생시킨 동력이었던 모양이다. 책과 노트북을 챙겨 떠난 여행길에서 미각에 입 열고, 시각에 눈 떴다. ‘그해 인천’ ‘그해 경주’ ‘그해 여수’ ‘그해 묵호’ ‘그해 삼척’ 등 연작 형식으로 되풀이되는 글에서 그는 기다리는 일과 기억하는 일이 닮아있음을 토로한다. 통영, 태백으로 이어진 발걸음은 사랑과 사람을 보듬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박준 시인[사진 난다]

박준 시인[사진 난다]

“이 시기의 남행은 봄 마중이다. (…) 마중을 나가서는 고개를 길게 빼두고 눈빛도 조금 멀리 두고 상대를 기다리지 않는가. 그러다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음을 지어 보이곤 하지 않는가. 막 들기 시작하는 봄빛처럼, 환하게.”(98~99쪽)
 
인생 여정에서 술을 빼놓을 수 없다. “단지 술이 그 자체로 좋았다”는 고백으로 시작하지만 술친구 자랑으로 끝난다. “봄을 반기며 마셨고 여름 더위를 식히자고 마셨고 가을이면 서늘하다고 마셨고 겨울이면 적막하다고 마셨다. 게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시는 술은 더 좋았다.”(61쪽)
 
이렇듯 시인이 걸어가는 모든 길의 귀착점은 여지없이 사람이다. 60여 편의 글은 시인의 영혼에서 잉태되는 순간부터 ‘당신’을 향했다. “새로운 시대란 오래된 달력을 넘길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보는 혹은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188쪽)
 
박 시인은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서명을 청하는 독자에게 “울어요, 우리”라고 적어주었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척도 중 하나는 울 줄 아는 태도에 있는지 모른다. 눈물로 하나 되는 순간, 너와 나는 사라진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란 긴 제목 또한 ‘함께 우는’ 통감(痛感)을 에둘러 북돋우고 있다. 책의 뒤표지에 얹힌 글은 앞표지의 제목과 이었을 때, 비로소 우리 모두를 연결시킨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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