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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작한 이원석 작가 "저항과 해방 의지 담으려 했다"

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가 14일 오후 인천 부평공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가 14일 오후 인천 부평공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인천 부평 조병창에서 일한 분들의 불안한 모습과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담고 싶었다.”
 
지난 12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인천시 부평공원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51) 작가를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시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가 강제징용 조각상과 인연을 맺은 것은 민족미술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만든 ‘희망 촛불탑’이 계기가 됐다. ‘희망 촛불탑’은 지난해 말 촛불민심이 한창일 때 광화문 광장에 세웠다.
이원석 작가가 민족미술협의회 동료들과 제작한 희망의 촛불탑. 이 탑은 지난해 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 민심의 중심에 섰다. [사진 이원석 작가]

이원석 작가가 민족미술협의회 동료들과 제작한 희망의 촛불탑. 이 탑은 지난해 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 민심의 중심에 섰다. [사진 이원석 작가]

 
그는 올 2월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안서를 받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가 동상 추진을 위한 작가 공모에 나섰을 때 주변에서 촛불탑을 세운 이씨를 추천한 것이다.  
 
동상 제작 작업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우선 인천 부평 조병창에 대해 아는 주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역 주민들을 찾아가 물어봤는데 ‘현 부평공원이 1939년 당시 미쓰비시(三菱) 중공업 공장부지였다’는 사실보다 ‘3개의 (왕)릉이 있었던 곳’으로 알고 있었다. 미쓰비시의 한자인 ‘삼릉’을 ‘과거 3개의 릉이 있었다’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과 60년 전 일인데도 주민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주민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동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이후 기초적인 고증 작업을 시작했다. 인터넷과 신문 기사, 관련 서적을 두루 찾았다. 징용의 개념부터 시작해 조병창까지, 부평문화원의 자문도 받았다. 
한 달여 뒤 인천 부평 조병창의 강제징용은 해외로 끌려간 다른 지역의 사례와 달리 국내에서 조선인들이 착취 당하고 고통 받은 현장이란 사실을 알았다.  
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가 14일 오후 인천 부평공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 작가가 14일 오후 인천 부평공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그는 “인천 부평은 제국주의 치하의 조병창이어서 수동적이면서 박해와 침탈·인권침해·노동착취 등이 행해졌다”며 “하지만 분명 그 안에서는 해방과 독립을 열망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찾아낸 인물이 고(故) 이연형(2009년 87세 사망)할아버지와 지영례(89) 할머니다. 그는 이씨의 딸과 지 할머니를 찾아내 그들의 경험과 기억을 직접 들었다.    
 
그는 “지 할머니는 당시 일본군들이 정신대('일본군 위안부')로 끌고 가기 위해 집집마다 처녀가 있는지 조사하는 것을 보고 징용을 선택했다. 당시 징용 당했다고 하면 정신대로 끌고 가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 할머니는 조병창 의무실에서 일하면서 팔과 다리가 잘린 어린 조선인들을 무수히 많이 보면서 너무 힘들어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소녀 동상의 불안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연형씨 자녀들로부터는 "아버지가 조병창에 끌려갔다가 그 안에서 노동자들을 선동해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씨가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옥고를 치른 사실도 확인했다.   
이원석 작가가 제작한 징용 노동자상. 장진영 기자

이원석 작가가 제작한 징용 노동자상. 장진영 기자

 
이씨는 이들 실존하는 동시대 인물을 부녀지간으로 표현했다. 딸은 공포가 다가오지만 어디인지 몰라 두려움에 찬 시선이 강조됐다. 아버지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저항의 의지로 언제든지 공격이 가능한 해머를 쥐고 의연하게 맞서려는 모습을 표현했다.   
지난 12일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당한 이들의 애환을 담은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을 만든 이원석 작가. 작업실에 놓은 원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지난 12일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당한 이들의 애환을 담은 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을 만든 이원석 작가. 작업실에 놓은 원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그는 동상에 대해 아쉬움도 많지만 만족한다고 했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삶을 모두 담아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도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계속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평공원에 세운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해방의 예감’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고양=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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