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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취준남’]<상>‘자존감 절벽’에 선 20대 후반 남자들

여자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했다. 후배들도 하나둘씩 취업한다. 토익·자격증 등을 준비하느라 아르바이트를 못 해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막막한 미래 때문에 한숨만 나온다. 맛있는 안주를 먹고 싶지만 얄팍한 주머니 사정이 허락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자존감이 바닥인 나는…대한민국 ‘취준남(취업 준비하는 남자)’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청년 취업난에 20대가 신음하고 있다. 신음 소리는 20대 후반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25~28세가 주축인 취준남들 사이에서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고 비관하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2000년대 이후 최고인 9.8%였다. 지난 6월 청년 실업률은 10.5%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은 9.3%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3%포인트 증가했다.

취업난에 직면한 20대 후반 남성들의 자조
“여자 동기, 후배들은 하나둘 취업하는데,
부모님께 손 벌리는 내 처지 찌질해 보여”
‘지연된 사춘기’로 심리적 위축 진단도
한국적 성역할 개념도 압박감으로 작용
“자아정체성 확립 시스템 개선 필요”

 
한 취업준비생이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 취업준비생이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위축되는 20대 후반 취준남들
 
취업 스트레스는 남녀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군 복무 등으로 여성보다 사회 진출 시기가 늦은 남성들의 압박감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난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기업 649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입사한 신입사원의 평균연령을 조사한 결과 남성은 28세(20.1%), 27세(14.3%), 34세 이상(12.5%) 순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26세(17.1%), 25세(15.0%), 24세 이하(14.2%) 순이었다.
 
취업을 위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 김모(26)씨는 “여자인 친구들은 거의 모두 직장을 다니고 있어 서로 마음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건 남자애들뿐이다”며 “요즘에는 만나면 누가 더 불행한지 한탄하기 바쁘다”고 한숨을 쉬었다. 취업준비생 전모(28)씨는 “직장인 친구들과 나의 대화 주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도 “나와 친구들 사이의 묘한 거리감이 생기다 보니 어느 순간 말 자체를 안 한다”고 털어놨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 윤모(27)씨는 “수험생활을 하는 3년 동안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떨어지면 또 손을 벌려야 한다. 염치 없는 아들 같아 스스로 한심하다”고 토로했다. 대학생 이모(26)씨는 “또래의 여자 친구들은 내가 아직 학생이라며 애 취급을 하는데, 같은 대학생인 여자 후배들은 나보고 ‘화석’이라고 한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내 처지가 마치 ‘찌질이’ 같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의 자존감에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히는 '자존감 도둑'은 '나 자신'(59.3%)이었다. [그래픽 잡코리아]

취업준비생들의 자존감에 가장 많은 상처를 입히는 '자존감 도둑'은 '나 자신'(59.3%)이었다. [그래픽 잡코리아]

 
'마음의 병' 40% 증가
 
최근 몇 년새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20대 남성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0년에 1만5800명이었던 20대 남성 우울증 환자 수는 2015년 2만2200명으로 40% 증가했다. 같은 기간 3만 명에서 2만9500명으로 약 2% 감소한 20대 여성의 우울증 환자 수와 대비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최근 취준생 7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선 취준생의 88.4%가 “자존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는 ‘나 자신’을 꼽은 이들이 59.3%로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취업 준비 과정에서 과도한 경쟁이 유발하는 스트레스가 이같은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남성의 20대 중·후반은 사춘기처럼 과도기적인 특성이 있어 심리 위축이 더 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정원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과장은 “인생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답을 찾는, 소위 ‘철이 든다’는 시기는 남성이 여성보다 늦게 나타난다. 레이스가 늦은 남성들이 20대 후반에 더 곤혹스러워 하는 이유다”고 분석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대 후반의 남성들은 ‘지연된 사춘기’를 겪고 있다. 자아정체성을 충분히 형성할 수 있는 훈련 없이 취업이라는 현실에 직면하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고 설명했다. 
 
"20대 취준녀들이 더 힘들어" 지적도
 
취준남들의 위기감 자체가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여성들의 취업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취업 적령기를 넘긴 ‘취준녀’들은 남성들보다 더 가파른 절벽에 맞닥뜨리게 된다. 
 
통계청이 지난 11일에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여성 고용률은 60.7%로 20대 남성(57.6%)보다 3.1%포인트 높았다. 하지만 30대의 경우 남성은 90.6%의 고용률을 보이는 반면 여성은 59.5%에 머물렀다. 
 
일자리의 질도 여성이 남성보다 열악한 편이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2016 비정규직 노동통계’에 따르면 남성 정규직 종사자 비율은 61.5%지만, 여성의 경우 38.5%에 그쳤다. 비정규직은 여성이 54.9%로 남성보다 9.8%포인트 더 높았다. 지난 6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신선미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대졸자의 첫 일자리 만족에 영향을 주는 일자리 특성’ 보고서에서도 첫 일자리에 만족하는 남성의 비율은 51.0%로 여성(45.9%)보다 높았다.
 
송 교수는 “남성 중심주의가 잔존하는 한국에는 ‘남성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높이 설정돼있다. 그러한 편견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 남성 스스로 고통을 겪는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두 얼굴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한 서울 소재 대학의 한 남학생이 방학 중인데도 취업 준비를 위해 학교에 나왔다. 김현동 기자

지난 1월 한 서울 소재 대학의 한 남학생이 방학 중인데도 취업 준비를 위해 학교에 나왔다. 김현동 기자

 
"성역할 부담이 압박감 키워" 
 
남성성을 강조하는 유교적 사회문화가 20대 후반 남성들의 부담감을 키우고 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인식이 남아있다. 남성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있지만, 정작 본인은 준비가 안 돼있어 느끼는 압박감이 취준남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과 성적·스펙 위주의 일률적인 채용 관행은 취준남들의 한숨을 더욱 깊게 한다. 송인한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 교육과정이 학생들 스스로 고민하고 자기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를 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국립정신건강센터 최정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과장의 진단은 되새겨 볼만 하다. 그는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소신껏 자유롭게 살겠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때 취준남이 느끼는 외로움이나 괴로움이 사라질 수 있다. 단순 수치에 의존하는 쉽고 간결한 채용 방식에서 탈피해야 20대 남성들이 창조적으로 공부하고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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