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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진실이 밝혀져도 갈등이 커지는 이유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어렸을 때 가끔 인류 종말의 날을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단체에 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특정 날짜에 세상이 망한다고 주장하고, 그 신도들은 보통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을 다 털어서 바로 그날 한자리에 모여 종교의식을 행하곤 했다. 집단자살과 같은 불상사가 벌어질까 봐 건물 밖에서 경찰이 대기하고 가족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고, 이 모습은 뉴스에 생중계됐다. ‘설마…’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했지만, ‘혹시…’ 하는 두려움도 분명히 있었다. 물론 그 모든 날에 그런 종말은 없었기에 우리는 지금 멀쩡히 살고 있다.
 

사드 사태는 인지부조화의 갈등
전자파가 인체 무해하다고 해도
반대파가 쉽게 생각 안 바꿀 것
국민을 사드 갈등에 밀어넣었으면
그곳서 빼주는 것도 리더의 역할

어린 마음에 ‘만약 종말이 안 오면, 저 사람들 얼마나 머쓱하고 민망할까?’라고 궁금했었다. 보통 자정에 세상이 망한다고 광적으로 열광하던 사람들은 자정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면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동안 잘못 생각했던 것들을 반성하며 다시는 그런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사는 게 당연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일상의 인간은 다를 수 있다고 심리학은 얘기한다. 그들 중 최소한 일부는 더 강한 믿음을 가지고 더 열정적으로 그 종교에 빠지게 된다. ‘그분이 우리의 열정과 믿음을 보고 기회를 한 번 더 주셨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라는 계시다’ 등 더 강한 신념으로 더 공격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황당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로 설명한다. 인간은 믿음과 행동 사이에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매우 강력한 동기가 있는데, 이 일관성이 깨지면 어떻게든 다시 그 일관성을 회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종말이 온다는 믿음에 난리를 쳤던 자신의 행동과 결국 종말이 오지 않았다는 진실 간에 불일치를 어떻게든 해결했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의 광적 행동이 세상에 너무 크게 알려지다 보면, 이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그냥 인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게 된다. 그러니 오히려 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그 내적 갈등을 해결해 버리는 것이다. 이 예가 사회심리학 교과서에 나올 만큼, 그런 비합리적인 인간행동은 모든 인간에게서 보편적으로 일어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바로 인지부조화의 갈등 속에 있을지 모른다. 최근 경북 성주에서는 국방부의 사드(THAAD) 레이더 전자파 및 소음 측정이 있었고, 그 결과는 인체에 무해한 수준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스스로 관련 전문가가 아닌 한 정부의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다. 특히 원래 사드 배치에 부정적이었던 정권의 조사 결과이니 굳이 그 진위를 의심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이 위해성 여부가 사드 배치 반대 주장의 한 축이었는데, 그 반대 주장을 하던 사람들이 이 측정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물론 ‘아! 위해성은 없구나. 그건 내가 잘못 생각했네’라고 쿨하게 인정할 수도 있다. 최소한 위해성만이라도(여전히 사드 배치를 반대할 다른 논리는 많기에).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너무 멀리 가버렸을지도 모른다. 단지 마음속으로 조용히 반대한 것이 아니라, 사드가 위해하다고 이미 공개적으로 너무 강하게 반복해서 얘기했다. 도로를 점거하고 불법적인 검문검색을 하고 공권력의 합법적인 집행을 막았다. 그 행동은 거의 매일 뉴스에 나왔고,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다. 확신에 차서, 잘못된 사드 배치를 바로잡기 위해서 이 정도의 사소한(?) 불법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이들이 대통령의 배치 결정과 전자파 측정 결과로 한순간에 자신의 생각을 바꿀까? 그게 그렇게 쉽다면, 우리는 왜 늘 이런 갈등과 혼란 속에 살고 있겠나?
 
사이비 종교의 신도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이들의 경우는 분명히 본질적으로 여러 면에서 다르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인지부조화의 위험성은 공통적이다. 인지부조화는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쪽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결국 그 모든 혼란의 책임은 공통적으로 리더가 져야 한다. 보통 사이비 종교의 신도는 감옥에 안 가지만 교주는 감옥에 간다. 똑같이 그 사드 배치 찬성과 반대 의견을 주도하고 불법행동을 부추기고, 지금 와서 모른 척하며 슬쩍 발을 빼는 정치인과 리더들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도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면, 반대하는 뜻을 같이했던 이들에게 지금까지의 행동을 버리고 빠져나올 확실한 명분도 줘야 한다. 북핵의 심각성은 모두 다 동의한다고 생각하면서 전자파 측정 결과 정도를 툭 던져놓고 뭉개고 있으면, 우리 사회는 더 심각한 갈등으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국민을 갈등에 밀어넣었으면 알아서 빠져나오라 하지 말고 그 갈등에서 빼주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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