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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인공지능이 골라준 옷 어때요 … 패션계 넷플릭스 떴다

개인 맞춤형 ‘큐레이틸’ 유통 패러다임을 바꾼다 
스티치 픽스 홈페이지. ‘당신만을 위해 고른 품목’임을 강조한다. 스타일리스트가 작성한 편지, 코디 제안 카드로 친밀감을 더한다. [사진 스티치 픽스]

스티치 픽스 홈페이지. ‘당신만을 위해 고른 품목’임을 강조한다. 스타일리스트가 작성한 편지, 코디 제안 카드로 친밀감을 더한다. [사진 스티치 픽스]

“필요한 것은 내게 어울리는 원피스 딱 한 벌인데 수만 벌을 봐야 한다니.”
 
2009년 하버드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던 카트리나 레이크(35)는 온라인 쇼핑을 하던 중 이렇게 한탄했다. 바쁜 사람에겐 온라인쇼핑도 번거롭다. 결국 아무거나 고르고 ‘운’에 맡길 때가 많다. 당연히 쇼핑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
 
카트리나 레이크 스티치 픽스 CEO

카트리나 레이크 스티치 픽스 CEO

레이크는 혼자 패션 추천 사업을 시작했다. 친구들을 동원해 보스턴 지역 의류 선호 데이터를 확보하고 여기에 맞춰 추천 의상을 사서 회원에게 택배로 배송하는 사업 모델이었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하지만 옷을 일반 소매점에서 사다 보니 수익이 나지 않아 본격적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2011년 75만 달러를 투자받아 패션 큐레이팅 업체 ‘스티치 픽스(Stitch Fix)’를 차렸다. 의류 브랜드와 수급 계약을 맺고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가입자를 위해 스타일링 된 패션 아이템 5개를 보내 준다. 가입자는 신체 사이즈, 취향 등을 알려 주고 언제 필요한 옷인지를 밝힐 수도 있다. 가령 “전 남자친구가 오는 동창회에서 입을 옷”과 같은 주문이 가능하다. 이 서비스는 상품 홍수 속에서 허덕이는 ‘햄릿’을 빠르게 흡수했다.
 
스티치 픽스의 성공은 더는 유통업에서 다양한 상품 확보나 빠른 배송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소비자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다. 이젠 공급자가 철저히 소비자에 맞춰야 한다. 대중을 위한 유통이 아닌 ‘개인을 위한 유통’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이유다. 사업자 입장에서 큐레이틸(Curated+Retail), 소비자 입장에선 큐레이핑(Curated+Shopping) 시대로의 전환이다.
 
패러다임 전환을 빠르게 포착한 스티치 픽스가 ‘패션계의 넷플릭스’로 등극한 것은 순식간이었다. 직원은 2012년 5명에서 현재 5700명으로 늘었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니콘 기업이 됐다. 스티치 픽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7억7000만 달러(약 8800억원)로 올해는 3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지난달 말엔 기업공개(IPO)를 위한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 증권가 추산 기업가치는 30억~40억 달러(약 3조4000억~4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용자들이 보내 온 후기. 주문자는 20~70대 여성으로 다양하다. 유튜브엔 스티치 픽스 상품을 평가하는 동영상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사진 스티치 픽스]

이용자들이 보내 온 후기. 주문자는 20~70대 여성으로 다양하다. 유튜브엔 스티치 픽스 상품을 평가하는 동영상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사진 스티치 픽스]

사업 모델은 언뜻 보면 밑지는 장사 같다. 주문이 들어오면 스타일리스트가 배정된다. 스타일리스트는 5개의 아이템을 고르고 각각 어떻게 입을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카탈로그, 직접 쓴 편지를 상자에 담아 배송한다. 아이템당 가격은 평균 50~60달러 정도지만 주문자의 예산에 맞춰 준다. 소비자는 입어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템은 반송 봉투에 넣어 되돌려 보낸다. 5개를 모두 사면 25%를 할인해 준다. 배송 비용은 스티치 픽스가 부담한다.
 
이 모델엔 여러 리스크가 있다. 물건을 받아보고 더욱 싼 구입처를 찾으면 반송하는 ‘체리피커’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스티치 픽스의 의류 판매가엔 스타일링 비용(한 달에 20달러)이 더해지기 때문에 최저가를 제안할 수 없다. 우려와는 달리 스티치 픽스 이용자의 80%는 1개 이상의 아이템을 구매한다. 가격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한 소비자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인간 스타일리스트 3700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스티치 픽스의 ‘원천기술’은 패션이 아닌 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있다. ‘패션업으로 위장한 데이터 회사’(포춘)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데이터 과학·엔지니어링 부사장이었던 에릭 콜슨이 2012년 합류해 최고알고리즘경영자(CAO)를 맡고 있다. 그가 이끄는 분석팀(80여 명)은 선호 스타일, 패션트렌드 등에 따라 수백 가지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적용하고 있다.
 
이들은 신체 사이즈, 피부톤과 같은 기본 정보에 분석된 정보를 더해 가입자의 마음에 들 확률이 높은 품목을 찾아낸다. 이미지 인식 기능을 통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취향도 데이터로 변환하고 있다. 콜슨은 “스티치 픽스에선 ‘판매’보다 우리와 회원의 공생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가치(마음에 드는 옷)를 찾아내면 우리 분석이 맞는 것이라 함께 성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유통에서는 적절한 데이터를 가장 빨리 분석해 소비자에게 즉각 제공할 수 있는 업체만이 살아남을 전망이다. 세계 유통업 플랫폼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는 아마존은 일찌감치 이를 간파했다. 데이터를 활용한 쇼핑 관련 실험을 다양한 형태로 시도해 왔다. 아마존의 AI 스피커 ‘에코’는 음성명령으로 상품 주문·결제·배송 신청을 한 번에 할 수 있다. 환경에 따라 어울릴 만한 옷을 추천해 주거나 말동무도 해준다. 구글 역시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이용한 쇼핑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거물들의 틈바구니에서 독특한 아이디어로 ‘제2의 스티치 픽스’를 꿈꾸는 스타트업도 꾸준히 나온다. 개인화된 온라인 부티크를 표방하는 ‘글림스’의 경우 주문자의 소셜미디어를 주로 분석한다. 페이스북에서 누른 ‘좋아요’나 친구의 수, 핀터레스트에 올린 사진 등을 통해 취향을 유추하고 이에 맞춘 카탈로그를 제작해 제시하는 식이다.
 
네이버 이미지 인식 앱 스마트 렌즈.

네이버 이미지 인식 앱 스마트 렌즈.

국내 유통가에서도 데이터 기반 큐레이션이 한창이다. 네이버가 최근 선보인 이미지 검색 서비스 ‘스마트 렌즈’도 그중 하나다. 이 서비스는 제품 사진을 찍으면 유사한 상품을 추천해 준다.
11번가 앱의 쇼핑봇 바로와의 대화.

11번가 앱의 쇼핑봇 바로와의 대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온라인 거래가 진행되는 11번가는 2014년부터 개인화된 큐레이션 서비스를 목표로 조직을 정비해 왔다. 현재 개발인력은 130명으로 이 중 30명이 AI 전문가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지난 3월엔 AI 쇼핑챗봇 ‘바로’를 선보이기도 했다. 바로의 채팅창에 원하는 걸 적으면 간단한 응대와 제품 추천이 가능하다.
 
큐레이틸의 득세에 따른 또 하나의 변화는 ‘소형 매장의 귀환’이다. 대형 오프라인 매장은 쇠락하지만 개성 강한 특화된 매장은 명맥을 이어 나간다는 것이다. 타깃·베스트바이·이케아와 같은 창고형 매장을 둔 유통업체들이 소규모 점포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들은 도심에 테마별 소규모 매장을 여러 개 만들어 소비자를 공략하는 한편 외곽에 위치한 대형 몰은 정리하는 추세다. 여기에 아마존과 같은 ‘태생적 온라인 유통업체’도 특화된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판매 플랫폼을 다양화하고 있다.
 
[S BOX] 정보 과잉 시대, 불필요한 것 걸러주는 ‘큐레이션’ 각광
‘큐레이터(Curator)’라고 하면 우선 전시회 등의 문화 기획자를 떠올린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요즘은 그 의미가 많이 확대됐다.
 
큐레이션의 역사는 길다. 라틴어 ‘돌보다(Curare)’에서 비롯된 이 용어는 당초 신부나 수사와 같은 종교인을 지칭했다. 이후 박물관·도서관 등에서 문화적 자산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옥스퍼드대 브룩스 국제센터 연구원 마이클 바스카는 책 『큐레이션』에서 현대의 큐레이션을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로 정의한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담장을 넘어 패션·인터넷·금융·유통·여행·음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정보 피로도가 높은 ‘과잉 사회’에서 큐레이션은 더욱 빛을 발한다. 바스카에 따르면 ‘더 많은 선택’을 경쟁력으로 삼았던 전략은 무용지물이 됐다. 앞으로는 ‘더 적은’ 하지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기업에서는 디지털 자산을 수집하고 분류·관리하는 디지털 큐레이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파편화된 정보를 꿰맞춰 의미 있는 콘텐트, 자산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론상으로는 이 작업을 통해 누구나 콘텐트 아카이브에서 최대치를 뽑아낼 수 있고, 구성원 간 공유가 수월해져 조직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전영선 기자 azul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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