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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 대화 열린다” 청와대 왜?

벼랑 끝에서 과연 대화의 문이 열릴까. 북한과 미국의 격한 말폭탄을 지켜보던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현 상황을 '벼랑 끝'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994년, 2005년, 2012년 사례 때문
“메뉴엔 선제타격론, 전격대화 늘 있어”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에서다. 그러나 NSC 회의 결론은 “우리 정부가 '대화의 문'을 열어두자"는 것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동안 사례를 보면 북·미가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전격적인 대화 국면으로 접어든 적이 있었다”며 “북·미간 선제타격론과 전격 대화는 늘 동시에 올라와 있는 메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대략 세가지 사례를 벼랑끝 대치에서 나온 주요 합의사례로 꼽고 있다. 
1994년 10월 21일 강석주 북한대표가 갈루치 미국대표와 제네바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중앙포토]

1994년 10월 21일 강석주 북한대표가 갈루치 미국대표와 제네바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중앙포토]

 
①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최근 국가안보실 안팎에서 자주 언급되는 게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다.
 제네바합의는 제1차 북핵위기시 나왔다. 북한은 93년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의 영변 핵시설 사찰을 거부하고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했다. 이듬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탈퇴하면서 미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선제타격 작전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94년 6월 지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면서 상황이 급진전했다. 같은해 10월 북한과 미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본 합의문을 체결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경수로 2기를 지어준다는 내용이었다.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의 국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남북한과 미·중·러·일 등 6개국 대표들이 북한의 핵 포기 등 6개 항의 합의문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되면서 9·19 공동성명은 사실상 사문화됐고 6자회담도 2008년 12월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한국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상 당시 직책). [중앙포토]

2005년 9월 19일 중국 베이징의 국빈관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6자회담에서 남북한과 미·중·러·일 등 6개국 대표들이 북한의 핵 포기 등 6개 항의 합의문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이후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되면서 9·19 공동성명은 사실상 사문화됐고 6자회담도 2008년 12월 이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한국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상 당시 직책). [중앙포토]

 
②2005년 9·19 공동성명=하지만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평양 방문 때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인정하면서 제2차 북핵위기가 닥쳤다. 당시에도 선제격론이 거론됐다. 하지만 중국 등 6자 회담 당사국들이 중재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다는 내용의 2005년 9·19 공동성명과 같은 굵직한 합의문이 도출됐다. 다시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있었지만 이듬해 미국이 북·미 양자협상에 적극 임하면서 2.13 합의(핵 시설 폐쇄 )와 10.3 합의(핵 프로그램 신고 및 핵시설 불능화) 등 북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타임 테이블에 합의했다.
2011년 11월 25일(현지시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고위급 회담을 가진 후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를 떠나고 있다.[중앙포토]

2011년 11월 25일(현지시간)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고위급 회담을 가진 후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를 떠나고 있다.[중앙포토]

 
③2012년 2·29 합의=2009년 5월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제재국면이 열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 1874호를 채택했다. 이에 북한은 우라늄 농축에 착수하겠다고 반발했다. 지난 7월 4일과 28일 등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직후 전개된 상황과 비슷하다. 유엔 안보리가 지난 6일 북한의 연간 수출 3분의 1을 봉쇄하는 대북제재 2371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자 북한은 “천백 배로 결산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2011년 미국과 북한은 긴장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7월과 10월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그해 12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상황 속에서도 이듬해 2월 제3차 고위급 회담이 열려 북한의 핵 활동 중단과 미국의 대북 영양 지원을 맞바꾸는 2·29 합의를 도출해냈다.  
북한에 대한 강성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뉴스]

북한에 대한 강성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 미 대통령. [연합뉴스]

 
최근 '한반도 8월위기설'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언급한 이후 북한은 ‘괌 포위 사격’ 이라는 위협으로 응수했다. 다만 9~10일 연속 6개의 성명을 쏟아낸 북한이 11일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청와대는 일단 미국과 긴밀히 접촉한다는 계획이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11일 오전 8시부터 40분간 허버트 맥마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했다. 정 실장의 요청으로 이뤄진 통화였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양측은 한ㆍ미 양국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취해나갈 단계별 조치에 대해 긴밀하고 투명하게 공조해나간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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