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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당신이라면 유턴했을까

[매거진M] 계엄군의 총성이 한바탕 휩쓸고 간 1980년 5월의 어느 날, 광주의 텅 빈 거리엔 주인 없는 신발들이 나뒹굴었다. 그건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를 준비하며 장훈(42) 감독이 본 흑백 사진 속 풍경. ‘저 신발 주인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됐을까.’ 그 잔혹한 세월 속에 남겨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이라는 역사의 무게에 망설이던 그가, 그날의 광주로 운전대를 돌린 이유다.
 
장훈 감독 / 사진=정경애(STUDIO 706)

장훈 감독 / 사진=정경애(STUDIO 706)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봉 첫 주말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택시운전사’를 만들며 20~30대 관객을 가장 많이 생각했다고.
“나는 민주화운동을 직접 겪은 분들과 이후 태어난 세대 사이에 ‘낀 세대’다. 5·18 때 다섯 살이어서 당시 기억은 전혀 없지만, 희생당한 광주 시민에 대한 부채감은 늘 있었다. 그 희생의 결과로 우리가 지금의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시대를 골라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과거와 현재는 연결된다. ‘택시운전사’가, 중간 세대로서 내가 더 어린 세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2015년 제작사 더 램프로부터 연출을 제안 받고 수락하기까지 일주일간 망설였다 들었다.
“겪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광주의 비극을 다룬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엄유나 작가가 쓴 시나리오의 ‘인물’들이 마음에 남았다. 광주 시민이나 계엄군의 시선으로 5·18을 다룬 소설·영화들은 기존에 있었다. 그런데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나 서울의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은 제3자다. 같은 제3자 입장에서 공감 가는 바가 많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피터를 태우고 광주에 가서 충격 받는 만섭이 꼭 나 자신 같이 느껴졌다.”
 
-‘택시운전사’의 토대가 된 건 실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회고다. 2003년 그가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한 시점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그가 한국에 와서 광주를 취재한 게 1980년 5월 20일이다. 22일 독일 매체를 통해 5·18을 세계 최초로 보도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그는 23일 다시 광주로 가서 27일까지 머물며 취재했다. 미국 등 외신도 그의 최초 보도를 뉴스로 다뤘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만 몰랐다. 한국은 이후로도 수년간 언론 통제가 있었다. 힌츠페터의 공로를 조명한 것도 한참이 흐른 2003년이 돼서다.”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생전 힌츠페터를 직접 만났다고.
“어떻게 그 위험한 현장을 취재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기자니까 가야지’ 하시더라. 사실 기운이 좀 빠졌다. 투철한 사명감이나 한국과의 인연을 말할 줄 알았거든. 그런데 힘주지 않고 들려준 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너무나 와 닿더라. 영화에서 피터가 왜 기자가 됐느냐는 질문에 보디랭귀지로 ‘돈 때문’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 힌츠페터가 나한테 그랬다(웃음). 그런데 만섭이 광주에 간 것도 돈(택시비) 때문이고, 혼자서 도망치려다 다시 광주로 돌아간 건 돈을 받아 놓고 손님(피터)을 그곳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한 일조차 힘든 시대가 있었던 거다.”
 
-연출 톤은 어떻게 잡았나.
“두 이방인의 시선에 비친 광주와 그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의도적인 해석은 일부러 피했다. 만섭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관객 각자가 ‘나라면 어땠을까’ 느끼고 판단하기를 바랐다. 유일하게 해석이 들어간 장면이 광주 MBC 화재 장면이다. 한밤중 화재 현장에 간 만섭은 계엄군의 트럭에 잡혀가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스스로도 죽을 뻔 한다. 그 순간이 만섭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악몽처럼 느껴졌으면 했다.”
 
-영화 말미 금남로 유혈 진압 장면이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더라.
"최대한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정말 찍고 싶었던 건, 비로소 그 광경을 직시하는 만섭의 표정이다. 총을 맞고 쓰러진 광주 시민들이 구출되고, 계엄군이 두 번째로 총구를 든다. 그걸 본 만섭은 광주 사람들을 향해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민주화운동 따위 관심 없고 어린 딸이 기다리는 서울로 도망갈 궁리만 하던 인물이 스스로의 의지로 광주로 돌아와 그날의 현장을 끝까지 목격하는 것이다. 바로 그 표정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다.”
'택시운전사' 촬영장. / 사진=쇼박스

'택시운전사' 촬영장. / 사진=쇼박스

 
-촬영 중 세 번 울었다고.
“만섭이 광주로 유턴할 때, 금남로에 쓰러진 사람들을 보고 눈물 흘릴 때, 피터를 택시에 태우고 광주를 빠져나오려다 잠시 발길을 떼지 못할 때. 편집하고 CG·음악 하면서 영화를 정말 많이 봤는데도, 기술시사 때 송강호 선배 연기하는 걸 보니까 또 눈물이 났다. 내 영화 보고 운 건 처음이다.”
 
-왜 송강호였나.
“만섭 역에 송강호 선배 말고 떠오르는 배우가 없지 않나?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랬다. 만섭은 소시민인데, 디테일한 감정이 요구되는 어려운 역할이다. 결과적으로 송 선배가 시나리오보다 훨씬 다채롭고 특별한 캐릭터로 만들어 줬다. 어떤 경지에 도달한 예술가는 본인의 해석에서 나오는 표현이 있다. 감독들도 머릿속에 어느 정도 ‘이 컷에서 이 정도 느낌 아닐까’ 하는 연출적인 정답이 있지만, 송 선배는 항상 그 이상의 다른 해답을 보여 준다. 특별한 문제로 NG가 나지 않는 한 여러 테이크를 가면 다 다른 OK를 낸다. 한 번 보고 ‘컷, OK’ 하기가 어렵다. 감독으로서 되게 행복한 고민인데, 정말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생각지 못한 연기가 나오면 어쩔 때는 굉장히 당황스럽다. ‘아 이걸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구나’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잖나. 영화 전체에서 어떤 조합이 최선일지 계속 짜 맞춰야 하니까.”
 
-가장 고민한 장면은.
“만섭이 순천까지 갔다가 광주로 유턴하는 장면은 다섯 테이크 이상 찍었는데, 다 다르게 좋았다. 어떤 스태프는 그가 혜은이의 ‘제3 한강교’를 부르다가 차츰 감정이 올라오는 테이크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조금 더 건조하고 세련되게 가는 테이크가 좋다는 이도 있었다. 지금 테이크는, 노래를 하다가 차를 멈추고 마지막 가서야 울컥하잖나. 나한테는 이게 제일 마음에 와닿았다. 평범한 소시민이 다시 위험천만한 사지로 돌아갈 용기를 내는 게 사실 어렵잖나. 그 어려움을 다 짊어지고 마치 내가 유턴하는 기분이 들었다.”
'택시운전사' 촬영장 / 사진=쇼박스

'택시운전사' 촬영장 / 사진=쇼박스

 
-유턴 장면을 기점으로 후반부는 상당 부분 송강호의 얼굴 클로즈업에 의존한다. 만섭의 선택과 변화를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기보다, 배우의 연기력에 기댄다는 인상도 있었다.
“순천 장면이 중요한 만큼 사실 되게 많은 장치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영화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카센터에서 만섭은 피터의 카메라 필름 캔이 택시 안에 하나 떨어져 있는 걸 본다. 그러고는 수리비 때문에 피터가 택시비로 준 만원짜리를 꺼낸다. 또 금남로를 처음 빠져나올 때, 그에게 주먹밥을 줬던 대학생이 피 흘리며 택시에 부딪히잖나. 카센터 직원이 앞 범퍼에 묻은 피를 보고 뭐냐고 묻자, 만섭이 그걸 잊으려는 듯 박박 닦는 장면도 있었다. 여러 편집본을 시도했고, 송 선배의 연기만으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지금처럼 결정했다. ‘택시운전사’는 결국 만섭의 감정을 쫓아가는 영화니까. 그의 클로즈업으로 설득이 안 됐다면 기존 요소를 더 넣었을 것이다.”
 
-편집된 신들 중엔 만섭이 서울 기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장면도 있었다고.
“이 영화는 한편으로 언론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을 보고 보도하려 한 자, 진실을 봤지만 보도하지 못한 자, 진실을 보고도 보도하지 않은 자. 5·18 당시 광주 기자들이 붓을 꺾고 신문사를 떠나며 쓴 글이 있잖나. 자신이 목격한 진실을 (검열로 인해) 한 줄도 쓸 수 없음을 비통해 하면서. 광주의 최 기자(박혁권)는 그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본인이 쓰지 못한 취재 수첩을 만섭에게 건네며 서울에 알려 달라고 한다. 그런데 영화 초반 서울에서 만섭에게 택시비 대신 명함을 줬던 임신부 남편(허정도)이 바로 기자다. 그 서울 기자는 만섭이 준 수첩을 대충 받아 혼자 사무실에서 읽다 박박 찢어 버린다. ‘누구 인생 망치려고…’라면서. 그 선하게, 보통 사람처럼 생긴 기자가 말이다.”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덜어낸 장면들이 아쉽지 않나.
“다른 상업영화에 비하면 많지 않다. 지금 러닝타임이 137분인데, 현장 편집본에서 20분가량 덜어냈다. 영화는 이성적으로 설계해서 정서적으로 전달해야 하잖나. 모든 이야기를 관객에게 주입할 수는 없다. 지금이 최선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광주 택시 운전사들이 만섭과 피터의 탈출을 돕는 카체이싱 장면은 다소 인위적으로 다가왔다.
“전체 영화 톤과 달라 제일 고민했던 장면이다. 원래 시나리오 초고에선 광주 택시 수십 대가 나타나는 설정이었다. 실제 5·18 때 광주 택시 운전사들은 목숨 걸고 앞장서 부상자를 나르고 시위를 도왔다. 그들의 희생을 표현하기 위한 허구의 장면이었다. 운전하는 분들이다 보니, 카 액션의 형태가 됐는데, 액션이 화려하게 찍힐수록 다른 부분을 해칠 수 있겠더라. 일단 규모를 줄였다. 만섭과 피터를 아는 몇몇이 와서 돕는 느낌. 차체가 부딪치는 액션보다 운전대를 잡은 인물들을 찍으려 했다.”
 
-스펙터클보다는 사람에 집중한 건가.
“영화를 준비하며 본 자료 중에는 시위대가 공수 부대 진압에 밀리자, 광주 시내 버스와 택시 수십 대가 금남로에 나타나 공수 부대를 밀고 올라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뤘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5·18 사건 리포트의 한 대목을 더 잊을 수 없었다. 기자들이 자동차로 광주를 빠져나오는 위험한 상황에서 어떤 고등학생이 바리케이트를 열어 줬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학생은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그런 마음의 빚은 평생 남는다. 카체이싱 장면이 그렇게 남길 바랐다.”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여느 군인들과 달랐던 박 중사(엄태구)의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공수 부대가 군가를 부르는 자료 영상에서 한 군인이 혼자 노래를 안 부르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야 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극중 박 중사는 힌츠페터 기자의 실제 경험에서 따온 캐릭터다. 그런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광주를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더라.”
 
-‘택시운전사’가 개봉하는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후반작업 때문에 직접 가진 못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광화문 집회 현장을 뉴스로 지켜보며 수많은 만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조금은 더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된 게 아닐까.”
 
-남북문제를 끌어들인 ‘의형제’(2010)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고지전’(2011), 그리고 ‘택시운전사’까지 시대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데.
“결국 다 사람에 대한 영화다. 한 개인으로 온전히 잘 살려면,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사회에 얽힌 문제들도 감당해야 한다. ‘택시운전사’를 만드는 내내 나라면 만섭처럼 유턴할 수 있었을까 많이 고민했다. 그 상황이 돼 보지 않은 이상 쉽게 이야기하기 어렵더라. 양심이 움직이는 대로, 심장이 뛰는 방향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차기작은.
“‘택시운전사’ 전 준비하던 시나리오가 있는데, 평범한 아버지와 아픈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원하는 만큼 안 나와서 보류해 놓은 상태다. 차기작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에 관한 사극 ‘궁리’가 될 듯하다.”
 
-처음으로 전 국민이 아는 위인을 다루게 됐다.
“이윤택 작가의 원작 소설을 좋아한다. 연극으로 공연된 적도 있는데, 어떤 영화가 될지 말하긴 이른 것 같다. 아직은 머릿속이 ‘택시운전사’ 생각으로 가득하다.”
 
 
'택시운전사'의 참고가 된 영화
‘알제리 전투’(1966,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
1954년부터 9년간 프랑스 식민 통치에 저항한 알제리 무장 독립군의 투쟁과 프랑스군의 잔혹한 폭력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흑백영화.

“이번 영화에 가장 많이 참고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특히 군중신이 압도적인데, 광주 금남로에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장면에서 훌륭한 참고가 됐다.” (장훈 감독)

 
‘사울의 아들’(2015, 라즐로 네메스 감독)
'사울의 아들'

'사울의 아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시체 처리반 인부 사울(게자 뢰리히)은 가스실에서 나온 뒤 숨을 거둔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라 주장하며, 나치의 눈을 피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 주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울의 얼굴이 화면을 채운다. 그가 처한 상황은 그 배경으로 보일 뿐이다. 시점의 통일성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영화다.” (장훈 감독)

 
‘타인의 삶’(2006,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감시하는 자와 감시 당하는 자.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뜻밖의 변화를 맞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동독, 요주의 극작가와 배우 커플을 감시하다, 그들의 삶에 감화되는 비밀경찰의 이야기.

“‘택시운전사’ 후반부로 가면서 피터와 만섭 사이에 생겨나는 감정선을 고민하며 참고했다.” (장훈 감독)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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