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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감독은 하늘 … 한국식 도제 관행이 부른 영화계 인권침해

캐스팅됐던 여배우가 촬영 중 폭력을 당했다며 감독을 고소한 영화 ‘뫼비우스’.

캐스팅됐던 여배우가 촬영 중 폭력을 당했다며 감독을 고소한 영화 ‘뫼비우스’.

“죄송하지만 해외 참고사례로 뽑을 만한 게 없어요.” 전화기 너머의 한인철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 팀장이 말했다. 한팀장은 4월 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스웨덴·영국·프랑스·독일에서 영화계 성폭력, 인권침해 근절을 위한 참고 자료를 얻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왜 영화계 내 폭력을 정부 기관에서 방지하고 해결해야 하느냐고 말이에요.”
 

제자 가르치듯 배우 다루는 풍토
외국엔 위계에 의한 폭력 드물어
‘촬영장 가이드라인’ 힘 모아야

8일은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에 대응하는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연 날이었다. 이들은 “영화에 캐스팅 됐던 여배우가 감독에게 뺨을 수차례 맞고 시나리오에 없던 성적 행위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영화계·여성계·법조계 단체들은 이 일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었고 영화계에 만연해 있으며,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영화계에서는 어떤 매뉴얼이 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조사해달라”고 기자들에게 부탁한 참석자도 있었다.
 
그래서 알아본 참이었지만 참고할만한 매뉴얼은 찾을 수 없었다. 영화평론가 박우성은 “한국 영화계의 독특한 문화가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 감독이 제작진을 데리고 작품을 찍는다는 점”이라며 “독특한 도제 시스템과 오랜 가부장 문화가 결합한 한국 영화계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여배우가 진짜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논란이 일었던 ‘다른 길이 있다’.

여배우가 진짜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논란이 일었던 ‘다른 길이 있다’.

영진위 한팀장이 유럽에서 ‘이상한 시선’을 받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유럽에서는 일단 영화계 내에서 위계에 의한 폭력·성폭력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일어났다고 해도 디테일한 형사법으로 처리가 된다”고 전했다. 44년 전의 이탈리아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여주인공이 최근에야 “당시 협의되지 않은 성행위 촬영으로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던 사건은 해외에선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2년, 2013년, 2015년, 올해 나온 영화에서 성폭력, 인권침해 논란이 일어났던 한국과는 문제가 다르다. 2012년 영화 ‘전망좋은 집’은 여배우의 노출신 삭제와 재삽입 때문에, 2013년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는 폭력·강요를 받았다는 주장으로, 2015년 한 저예산 영화는 남배우가 합의되지 않은 성적 행위를 했다는 주장으로, 올해 ‘다른 길이 있다’는 여성 배우가 실제 연탄 가스를 마셨다는 의혹으로 영화인들이 잇따라 논란에 휩싸이는 곳이 한국이다.
 
유럽 등지에선 이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면 법이 해결한다. 국내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성폭력의 해결은 더 어렵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촬영 중 일어난 성폭력은 강간 행위가 아니다보니 일단 신고 자체가 늦어진다”며 “힘겹게 피해 사실을 알려도 기소까지 가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영미법에는 성추행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있지만 우리나라 법엔 정확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일반적인 폭행·폭언의 경우엔 한국 촬영장의 독특한 위계질서가 공론화를 가로막는다.
 
물론 참고할 해외 사례가 꼭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창의적 해법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지 모른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법들이 꽤 된다. 감독, 배우, 촬영감독 등이 모인 여성영화인모임을 비롯한 영화계 단체들은 상시적인 성폭력 대응기구를 만들 참이다. 그러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영진위는 이미 영화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의례적인 교육이 되지 않도록 기존 영화인들이 성폭력 예방 강의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따서 강사로 투입된다. 다양한 사례를 모아서 촬영 현장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논의 중이다.
 
영진위에 등록된 영화인만 16만3000명. 참고할만한 외국의 해법도 없다는 건 상황을 더 깜깜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번에도 해결을 못하면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하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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