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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마오 “중국 오성홍기에 조선열사의 피가 스며있다”

선혈-북·중관계의 패스워드 
북한 김정은의 핵 도발은 끊임없다. 중국도 제동을 건다. 중국의 압박은 얼마 뒤에 느슨해진다. 그 패턴은 반복된다. 유엔의 8·5 대북 제재 조치가 나왔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응징이다. 중국도 동참했다. 하지만 중국은 결정타를 날리지 않는다. 원유 차단은 제외됐다.
 

마오쩌둥이 장제스와 내전 때
김일성, 소총 10만 정과 포병 지원
혈맹보다 강한 선혈관계

‘선혈’ 내막 알아야 북·중 사이 이해
김정은 ICBM 발사에 대한
중국의 시각은 교묘해져

중국의 북한 핵문제 다루기는 절묘하다. 방식은 질책과 엄호를 섞는다. 그 때문에 ‘중국 역할론’은 혼란스럽다. 거기에 쏠린 기대감은 순진하다. 중국은 선명한 해결책을 거부한다. 초점은 분산되면서 흐려진다. 왜 그럴까. 중국은 북한을 포기하지 않는다. 두 나라에 얽힌 뿌리는 깊고 질기다. 그 속에 지정학적 숙명이 있다. 전략적 계산이 깔렸다. 우호조약은 강력하다. 은밀하면서 결정적인 비사(秘史)가 존재한다. 그 내막을 캐는 패스워드가 있다.
 
1954년 10월 천안문 망루에 오른 마오쩌둥(오른쪽)과 김일성(중국 건국 5주년 열병식). [중앙포토]

1954년 10월 천안문 망루에 오른 마오쩌둥(오른쪽)과 김일성(중국 건국 5주년 열병식). [중앙포토]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발언은 미묘했다. “중국과 북한은 선혈로 응고된(鮮血凝成的) 관계다.” 이 말은 혈맹(血盟)으로 통역됐다. 청와대는 ‘통역 실수’라고 했다. 중국 외교의 공식 용어에 혈맹은 없다. 과거 중국은 제3세계의 비동맹외교를 이끌었다. 동맹관계는 동등하다. 중화(中華)세계관에선 등가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배경에선 잘못된 통역이다. 하지만 선혈은 혈맹보다 강력하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선혈관계는 피를 흘려 공고화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선혈.- 피가 살아 숨 쉰다. 이미지는 비장미(悲壯美)를 드러낸다. 시진핑의 단어 선택은 역사성을 갖는다. 선혈은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어휘다. 마오는 언어의 마술사다. 그는 총과 글, 말로 중국을 평정했다.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1949년 10월 1일이다. 그 무렵 마오는 이렇게 말했다. “在中華人民共和國五星紅旗上 染有朝鮮共産主義者和人民的鮮血(중화인민공화국 오성홍기에는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인민의 선혈이 스며 있다).” 피는 황색 별 다섯의 깃발을 붉게 물들였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마오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지원)를 외쳤다. 그는 ‘조선혁명열사(烈士)의 선혈’을 기억했다.
 
선혈은 북·중 지도자들의 역사적 암호다. 선혈을 알아야 두 나라 사이의 진실을 안다. 선혈은 세 번 쏟아지고 아물었다. 처음 흘린 피는 제국 일본 시절. 양측은 공동전선(동북항일연군)도 구축했다. 두 번째는 국·공(國·共) 내전(1946~49). 세 번째 흘린 피는 6·25(1950~53) 때다. 마오가 최초로 강조했던 선혈은 두 번째다.
 
2017년 북한의 월간지 ‘금수강산’(1월호)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지난해 『중국 동북해방전쟁을 도와』가 발행되었다.”(첫 발간 2009년) 동북해방전쟁은 국·공 내전이다. 2010년 5월 중국의 상하이 엑스포가 있었다. 조선관(북한관)은 초라했다. 그 속에 특별한 기념품이 있었다. 북한이 낸 화보집 『조중 친선은 세기를 이어(朝中友誼 世代相傳)』다. 그곳에서 나는 그 화보집을 샀다. 거기에 선혈의 비사가 뜻밖에 담겨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이 끝난다. 일본 관동군은 패주했다. 소련이 만주(동북 3성)를 점령했다. 46년 중반 소련군 철수가 시작됐다. 동북지역에서 내전이 본격화됐다.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장개석) 부대가 선제공격을 했다. 마오쩌둥의 공산군은 시련과 열세였다. 마오는 김일성에게 긴급 군사지원을 요청한다. 화보집은 이렇게 기술했다. “김일성 주석께서는 1946년 봄 모택동 주석의 특사로 평양에 온 중공중앙 동북국 부(副)서기 진운(陳雲·천윈)을 접견하시였다.”
 
화보집은 비밀을 해제하듯 했다. “…그(진운)가 제기한 문제들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은 무기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정규무력 건설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 필요한 것이 무기였다. 이런 형편에서 10만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를 무상(無償)으로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한 일군은 그이(김일성)께 1만 정쯤 주었으면 하는 의견을 말씀드리였다. 주석께서는 진심으로 중국혁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10만 정의 무기와 탄약을 동북민주련군에 넘겨주도록 하시었다. ‘황색폭약’, 포병련대와 공병부대도 보내주시였다.” 10만 정 무기는 일본군 99식, 38식 소총. 패주한 일본군이 버린 무기다. 일본군은 함경북도 나남(19사단)에 주둔했다. 황색폭탄은 흥남질소비료공장에서 만들었다.
 
항일투쟁에서 김일성 활약의 과장, 왜곡 논란이 있다. 하지만 일제패망 후 국·공 내전 부분은 다를 것이다. 화보집은 중국어 번역을 넣었다. 중국 관람객들에게 파는 기념품이다. 그 때문에 객관적 사실에 근거했을 것이다. 김일성은 북한 땅을 공산군의 후방, 병참기지로 제공했다. 북한은 신발(15만 켤레)도 만들어 보냈다. 중국 상하이→남포→남양→두만강→중국 투먼은 주요 비밀통로였다. 그 길로 공산군의 물자와 군대가 지나갔다.
 
그 비사는 반세기 이상 대외비였다. 중국은 공개를 꺼렸다. 이유는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중국 전문가 김명호(성공회대) 교수는 “동북전쟁의 승리 과정에서 북한 지원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무리는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2010년 전후 북한은 달라졌다. 그 내용을 본격 소개했다. 강인덕 전 장관은 “북한 입장에선 중국이 한국전쟁 때 도와줬지만 국·공 내전 때 자신들도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화보집은 역사 기술의 북한식 반격이다.
 
그 시절에 베이징과 평양 사이는 불편했다. 북한의 권력 세습기였다. 북한은 중국의 후원이 필요했다. 화보집의 메시지는 우회적이지만 분명했다. 대(代)를 이어 선혈의 우의를 다지자는 것이다. 중국은 수용했다. 2010년 8월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 주석은 중국혁명 승리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선혈의 비사는 북·중 밀착의 근원이다. 중국은 여기에 역사적 비원(悲願)을 추가한다. 19세기 말 중국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20세기 전반기 중국의 대표는 마오쩌둥과 장제스다. 둘은 적대적이다. 하지만 한반도에 대한 접근 자세는 일치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중국의 종주권(宗主權) 상실을 개탄했다. 그들의 열망은 그 영향력의 회복이다. 그 유지(遺志)는 시진핑의 ‘중국 몽(夢)’ 속으로 전수됐다. 지난 4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개한 정상회담 대화록이다. 속방(屬邦)과 조공(朝貢)의 과거를 떠올린다.
 
베이징 지도자들은 선대의 염원을 실천하려 한다. 핵심은 미국의 동북아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최종 단계는 한·미 동맹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다. 중국은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통 방식을 채택한 듯하다. 미국과 북한의 견제와 대치다. 북한의 핵 역량은 진화했다. 북한 ICBM은 LA를 위협한다. 핵탄두의 소형화에도 성공했다.(8일 워싱턴포스트) ICBM은 ‘게임 체인저’다. 그것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을 흔든다.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요구한다. 평화 흥정의 대가는 주한미군 철수다. 미군의 퇴장은 중국의 숙원이기도 하다.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분쟁지역이다. 북한 핵무기는 미국의 발목을 잡는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묶어 둔다. 그 효과는 중국의 대양 작전에 유연성을 제공한다.
 
북한 핵무기는 중국에 부담스러운 요소도 있다. 통제의 어려움을 준다. 북한은 국제사회 왕따다. 하지만 중국의 우선순위는 선명하다. 그것은 비원의 실현을 위한 북한 핵무기의 활용이다. 그것이 중국이 북한을 감싸는 이유일 것이다. 중국은 한·미 동맹의 약화에 직접 나선다. 사드 배치는 한·미 결속의 상징이다. 중국의 사드 반대는 끈질기다. 그 의도는 한·미 간 불화와 갈등의 유발로 비춰진다. 그것은 북·중 밀착의 새로운 소재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미·중 빅딜론은 유효하다. 그것는 양국 합작에 의한 김정은 정권 붕괴(핵무기 제거) 시나리오다. 그 대가는 주한미군 철수다. 빅딜론은 미국의 고민을 반영한다. 하지만 중국의 선택 가능성은 미지수다. 북·중 사이 의리와 선혈의 효험은 오래간다.
 
북한 경제는 중국에 예속돼 있다. 북한 무역량의 90%가 중국과의 교역이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에 당당하다. 그 배짱 좋은 자세는 선혈 덕분이다. 북한은 중국에 대해 역사적 채무의 변제를 거론한다. 다른 이유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 상승이다. 그 가치는 해양 세력의 대륙 진출을 막는 방파제다. 북한은 그 역할을 단련해 전개하고 있다. 선혈의 드라마는 확장한다.
 
한반도 정세는 긴박하다. 북·중 우호협력조약은 새롭게 조명된다. 그 조약 2조는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다. 한·미 동맹보다 직설적이고 신속하다. 평양과 베이징 관계는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됐다. 중국의 북한 ICBM 해법은 우회적이다. 중국의 방안은 쌍중단(雙中斷)이다. 북한의 핵 개발과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이다. 중국의 속셈은 동북아의 주도권 장악이다.
 
ICBM은 절대 무기다. 억제책은 하나다. 핵으로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한국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핵 없는 나라의 좌절과 비애를 맛볼 것이다. 그 속에 강대국의 코리아 패싱,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이 있다. 반면에 북·중의 선혈식 밀착은 다져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반전을 모색해야 한다. 한·미 동맹의 긴밀화가 절실하다. 한국 사회는 ICBM 위기에 둔감하다. 안보의 주인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박보균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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