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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23) '100km/h 이하'로 느끼는 짜릿함…한국 모터스포츠의 '풀뿌리' 짐카나

[사진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사진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저 멀리서부터 배기음이 들려온다. 눈 깜짝할 사이, '슈웅' 바람 소리와 함께 '콰광' 천둥소리를 내고 지나간 레이스카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서킷에서 펼쳐지는 카레이싱의 모습이다. 
 
총 길이가 3~4km에 달하는 서킷에서 펼쳐지는 카레이싱은 관람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기도 하지만, 1~2분 간격으로 눈과 귀가 쉬는 순간이 찾아온다.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차량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은? 전체 랩타임의 10%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관람객이 볼 수 없는 것.  
짐카나는 본래 말을 타고 장애물을 피해 깃발을 뽑는 경기였다. [중앙포토]

짐카나는 본래 말을 타고 장애물을 피해 깃발을 뽑는 경기였다. [중앙포토]

 
출발 지점부터 결승선까지 모두를 지켜볼 수 있는 모터스포츠가 있다면 어떨까. 드라이버가 뽐내는 운전실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면 말이다. 그것도 스마트폰을 통해 충분히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을법한 거리에서. 가능하다. '짐카나(Gymkhana)'라면 말이다.
 
<짐카나, 모터스포츠의 막내? 맏형!>
[사진 밸리비즈]

[사진 밸리비즈]

작은 규모의 경기장에서 진행되다 보니 모터스포츠의 '막내'로 치부되기 일쑤지만, 짐카나는 모든 모터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역사가 긴 '맏형'이라고 볼 수 있다.  
 
짐카나라는 말의 어원은 인도에서 비롯됐다. 말을 타고 이곳저곳에 놓인 작은 깃발을 낚아채는 '징기스칸 레이스(Genghis Khan's race)'를 일컫는 것으로, 경기에 참여한 레이서들은 말을 타고 복잡한 코스를 누비며 말이 얼마나 잘 조련 됐는지, 또 레이서들이 얼마나 용맹하고 재능이 있는지를 뽐냈다. 인도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지에는 이러한 경기가 펼쳐진 '짐카나 클럽'이 여전히 남아있다. 
 
말로 하는 짐카나(왼쪽)와 차로 하는 짐카나의 코스. [중앙포토]

말로 하는 짐카나(왼쪽)와 차로 하는 짐카나의 코스. [중앙포토]

자동차가 등장하며 마차를 대체한 것과 같이, 이후 짐카나에서도 말과 마차는 자동차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모터스포츠의 한 종목이 된 짐카나는 바로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차량의 성능 보다 드라이빙 테크닉의 기본기가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짐카나인 만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운전 교육에서도 이는 빠지지 않는다. 국내 모터스포츠의 제1 전성기였던 1980~1990년대, '짐카나 3회 이상 출전'은 드라이버 라이선스 취득에 있어서 필수 조건이었을 정도. 오늘날에도 국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신차 체험 프로그램에서도 짐카나는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다.
 
<친절한 모터스포츠, 짐카나>
[사진 수아라 메르데카]

[사진 수아라 메르데카]

많은 이들이 '모터스포츠' 하면 '스피드'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직선구간에서 적게는 150km/h, 많게는 200~300km/h까지 내달리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직선구간이 끝나면? 안 보인다. 한바퀴를 돌아 다시 메인 스트레이트로 오기 전 까진 그저 '이제 여기쯤 갔나보네' 귀로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짐카나는 이런 면에서 서킷에서 펼쳐지는 카레이싱과는 다른 성격을 띄고 있다. 콘이 놓여진 사이 사이를 따라 차량을 움직이다 보니 100km/h를 넘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일렬로 늘어선 콘 사이를 좌우로 오가는 '슬라롬(Slalom)' 코스나 '피겨 에잇(Figuer eight)'으로 불리는 8자형 코스, 좁은 반경의 원을 그리는 코스,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떠올리게 하는 T자형 코스 등. 좁은 공간에 이처럼 복잡한 코스가 복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진 박상욱 기자

사진 박상욱 기자

 
때문에 일반적인 짐카나에서 소위 '최고속도'는 60~80km/h 언저리에 불과하다. 숫자만 놓고 '에이 그게 재미있겠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서킷에서 진행되는 카레이싱 못지 않게, 또는 더욱 박진감 넘친다. 경기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입장에서나, 경기에 참여하는 드라이버의 입장에서나 모두 말이다.
 
짐카나의 친절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허허벌판이라 할지라도, 콘이 놓이는 곳이라면 어디나 짐카나 경기장이 될 수 있다. 경기를 위해 먼 지방을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넓은 공터, 주차장이라면 어디든 가능하다.  
 
<짐카나, 콘으로 시작해 콘으로 끝난다>
[사진 인비저블 선]

[사진 인비저블 선]

코스는 경기 직전까지도 비밀에 붙여진다. 경기장이 뻔히 정해져있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짐카나의 코스는 '파이론(러버콘 또는 꼬깔로 불리는 원뿔)'을 놓는 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운전실력뿐 아니라 코스에 대한 빠른 숙지와 적응이 관건인 이유다.
 
다음의 그림은 지난 5월 28일 경기 화성 오토시티에서 진행된 2017 KARA 짐카나 챔피언십 1라운드의 코스다. 코스는 경기 전날인 27일 KARA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그림을 통해 코스를 눈으로 익히는 것과 실제 주행에 임하는 것은 천지차이지만, 코스 공개를 손꼽아 기다린 참가자들은 이를 빨리 암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사진 KARA 홈페이지]

[사진 KARA 홈페이지]

 
선수전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됐다. 코스는 양쪽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맞붙은 선수가 동시에 출발해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가 승리를 차지한다. 출발 직후 슬라롬을 지난 선수들은 곧이어 8자 선회를 한다. 이후 정해진 반경 이내에서 원선회를 하고나면 후진이 필수인 T자형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피니시 라인을 지난다고 끝이 아니다. 차량을 피니시 라인의 콘에 맞춰 멈춰야만 한다. 과속을 했거나 브레이킹이 늦어져 콘을 건드린다면, 페널티(가산초)가 부여된다. 앞선 코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콘을 건드리면 페널티가 부과된다.
 
그저 눈으로 바라봤을 뿐인데 벌써부터 어지럽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반전 코스는 이보다 훨씬 단순하다. 선수전과 마찬가지로, 시작 직후 슬라롬이 펼쳐지지만 이후 코스는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사진 KARA 홈페이지]

[사진 KARA 홈페이지]

 
보이기만 쉬울뿐, 이를 최대한 빠른 시간에 달려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아무리 단순해 보여도 분명 정해진 방향이 아닌 '마이 웨이'를 가는 선수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코스를 안전히 완주하더라도 랩타임이 느리면 소용 없다. 조금이라도 과욕을 부린다면 차는 여지없이 밀려나 콘을 건드릴 것이다. 콘을 따라 선회를 할 수 있는 접지력의 한계를 최대한 빨리 찾는 것이 관건인 셈. 게다가 연습 없이 달리는 만큼, 한계점을 찾기도 전에 도전 기회가 끝나버릴 수도 있다.
 
이같은 이유로 고출력 스포츠카보다 소형차가 짐카나 경기에 주로 등장한다. 출력보다 차량의 밸런스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한 만큼, 작고 가벼운 국산 1.6리터 터보 차량과 무거운 외산 6.3리터 자연흡기 차량이 짐카나에서 맞붙었을 때, 6.3리터 차량의 우승을 장담할 수 없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이변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 바로 짐카나의 매력일 터.
 
짐카나 차량의 평균 주행속도가 서킷 주행 대비 느릴지라도, 드라이버의 움직임은 서킷 주행 못지 않게, 또는 서킷 주행 때보다도 더 빠르다. 좌우로 콘을 피해가거나 좁은 반경의 원을 돌아나가는 등 스티어링휠의 급격한 조작뿐 아니라 급격한 가·감속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기를 지켜보는 관람객의 입장에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짜릿함을 느끼기 쉽다. 눈 앞에서 차량이 콘 하나 하나를 스쳐지나갈 때마다 관중석에선 연신 탄성 또는 탄식이 들려온다.  
 
<모터스포츠의 '풀뿌리', 짐카나>
[사진 KARA 제공]

[사진 KARA 제공]

짐카나는 모터스포츠의 '풀뿌리'라고도 불린다. 서킷에서 고속으로 내달리는 카레이싱보다 진입장벽이 훨씬 낮아, 일반인들의 모터스포츠 입문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헬멧과 장갑 등 기본적인 안전장구만 있으면 얼마든 참가가 가능하다. 또 상대적으로 속도가 낮고, 값비싼 방호벽이 아닌 고무로 만든 콘 사이를 오가는 만큼 차량이 코스를 이탈하는 상황에서 운전자가 다치거나 차량이 파손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안전의 측면에서도 부담이 적고, 이는 곧 비용의 측면에서도 부담이 적어짐을 의미한다.
 
<다시 기지개 켜는 한국 짐카나>
[사진 KARA 홈페이지]

[사진 KARA 홈페이지]

과거 한국 모터스포츠의 '풀뿌리' 역할을 했던 짐카나는 한동안 그 명맥이 끊어졌다. 간간이 소규모 이벤트 또는 시승행사의 한 코너로만 경험할 수 있었을 뿐. 그러다 지난해부터 (사)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협회장 손관수)가 공인하는 짐카나 공식 경기가 부활했다. '모터스포츠 풀뿌리'가 다시금 자리잡게 된 것이다.
 
[사진 KARA 홈페이지]

[사진 KARA 홈페이지]

지난해의 성공적인 시즌 마무리에 힘입어 올해에도 3라운드에 걸쳐 짐카나 챔피언십이 개최된다. 2017 KARA 짐카나 챔피언십은 지난 5월 1라운드를 시작으로 시즌 2년차에 접어들었다. 2라운드는 다음달 9, 10일 양일간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된다. 올해 시즌의 우승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국가대표로서 국제대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국가대표인 만큼 협회 차원에서 항공과 숙박 지원도 이뤄진다.
 
챔피언십은 '모터스포츠의 대중화'라는 역할도 부여받았다. 일반전에 참가하는 드라이버에게 KARA 드라이버 라이선스(C등급) 취득 자격을 주는 것이다. C등급 라이선스로는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모든 KARA 공인 아마추어 카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다. 짐카나로 처음 입문한 드라이버들이 짐카나뿐 아니라 서킷에서의 모터스포츠에도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사진 KARA 제공]

[사진 KARA 제공]

짐카나의 부활로 매전 성황리에 대회가 열린 데에 이어 올해엔 국제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자동차연맹(FIA)가 공인하는 아시아 지역 국제 짐카나 대회인 '2017 아시아 오토 짐카나 컴페티션(AAGC, Asia Auto Gymkhana Competition)'의 2라운드 경기가 오는 19~20일 양일간 인천 영종도의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열린다. 국내에서 아시아 짐카나 국제대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KARA 홈페이지]

[사진 KARA 홈페이지]

이번 2라운드 경기엔 12개국(한국 포함) 32명의 드라이버가 참가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AAGC는 올해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한국, 대만, 태국에서 총 4라운드로 펼쳐진다.
 
<본격적인 다이어리의 시작>
2017년도 모터스포츠 시즌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지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중앙포토]

[중앙포토]

2015~2016년 2년간,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무턱대고 모터스포츠에 뛰어들며 '꼴찌는 나의 것'을 외쳐댔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제대로 한 것.
 
그리고 모터스포츠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 2017년,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단 한 경기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라이선스 갱신 주행이 올해의 마지막 서킷 주행이 될 줄이야. 
 
모터스포츠 다이어리를 시작한지 어느덧 24주가 됐다. 안타까움도 그만큼 점점 커져갔다. 올해도 역시나 '꼴지는 나의 것'을 외치며 '참가에 의미'라는 말의 참 뜻을 실천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에 다음주부터 말 그대로 '다이어리'를 시작하고자 한다. 25주만의 '지각' 다이어리다. 경기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 과정부터 실제 경기 참가까지의 모든 과정을 다뤄보고자 한다. 다만, 앞서 20여회에 걸친 다이어리에서 이론과 시뮬레이터 실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만큼, 지난 2년과 같은 '맨땅에 헤딩'은 최대한 피해보려 한다. 
 
물론 '꼴지는 나의 것'은 올해도 유효한 캐치프레이즈겠지만 말이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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