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江南人流]80년대 저리 가라, 과장된 복고 패션

올해 ‘최신’ 트렌드를 쫓고자 한다면 1970~80년대 영화나 하다못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라도 다시 한번 돌려보는 게 좋겠다. 무슨 말이냐고? 올해 패션계의 키워드가 바로 그 당시의 옷을 소환한 ‘복고’란 얘기다. 물론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 패션이 되돌아오는 현상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과거 등장했던 수많은 복고 중 형태나 색감, 입는 법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하고, 또 과장됐다. 과연 우리는 이걸 소화해낼 수 있을까. 글=윤경희·유지연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중앙포토
2017년 발렌시아가의 봄여름 컬렉션 쇼에 등장한 모델. 80년대 옷보다 더 큰 어깨의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사진 발렌시아가]

2017년 발렌시아가의 봄여름 컬렉션 쇼에 등장한 모델. 80년대 옷보다 더 큰 어깨의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사진 발렌시아가]

 

거대한 재킷에 배바지…
이걸 진짜 입으라고?
더 크고 화려해진 복고 트렌드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복고가 나타났다
화려한 꽃무늬도 올해의 복고 트렌드로 등장했다. 위로부터 드리스 반 노튼·미우미우·프라다  ·

화려한 꽃무늬도 올해의 복고 트렌드로 등장했다. 위로부터 드리스 반 노튼·미우미우·프라다  ·

올해 유명 패션 하우스들의 컬렉션은 복고라는 단어 없이 설명되지 않는다. 발렌시아가·셀린느·질샌더의 봄·여름 컬렉션 무대에 선 앳된 얼굴의 모델들은 아빠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큼직한 어깨의 재킷을 걸치고 런웨이를 걸었다. 겐조의 남성복 컬렉션에선 바지를 허리 한참 위까지 추켜 올리고 그 안으로 상의를 쑤셔 넣은 ‘배바지’ 스타일이 등장했다.
겐조(위)와 발렌시아가 컬렉션 쇼에선 바지 안에 상의를 넣고 위로 치켜 올려 입는 ‘배바지’ 스타일이 등장했다.

겐조(위)와 발렌시아가 컬렉션 쇼에선 바지 안에 상의를 넣고 위로 치켜 올려 입는 ‘배바지’ 스타일이 등장했다.

이 뿐이랴. 70년대 존 트라볼타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1977)에서 입었던 나팔바지(아크네 스튜디오)와 반짝이는 메탈릭 소재 원피스(생로랑), 80년대 가수 마돈나로 대표되는 컬러풀한 재킷·스타킹의 디스코풍 패션(구찌)도 곳곳에서 소환됐다. 그 다른 한쪽에선 할머니 장롱에서 몇십 년은 묵혀 있었던 것 같은 스웨터(프라다)나 큼직한 꽃무늬가 들어간 코트(드리스 반 노튼) 등이 '그러니 룩'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허리벨트도 되살아났다. 알렉산더 맥퀸, 드리스 반 노튼 등의 패션 하우스들이 원피스·재킷·모피 등 다양한 옷 위에 단단하고 두툼한 가죽벨트를 둘렀다.
가수 마돈나가 80년대 입었던 화려한 의상(사진 위)과‘토요일 밤의 열기’ 속 존 트라볼타의 판탈롱 슈트가 올해의 패션 트렌드로 등장했다.

가수 마돈나가 80년대 입었던 화려한 의상(사진 위)과‘토요일 밤의 열기’ 속 존 트라볼타의 판탈롱 슈트가 올해의 패션 트렌드로 등장했다.

해외 컬렉션만 아니라 국내 브랜드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푸시버튼의 컬렉션에선 영화 ‘써니’의 주인공들처럼 큼직한 청바지 속에 두툼한 스웻셔츠를 넣어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고, 럭키슈에뜨의 경우 와인색 스트라이프 원단으로 만든 판타롱 슈트와 무릎 길리의 긴 술이 소매에 달린 재킷이 복고 무드의 동참을 알렸다.
아크네 스튜디오(왼쪽)와 럭키 슈에뜨(아래)가 선보인 판탈롱 슈트.

아크네 스튜디오(왼쪽)와 럭키 슈에뜨(아래)가 선보인 판탈롱 슈트.

복고는 패션만이 아니라 뷰티에서도 강력한 키워드다. 한동안 청순함·깨끗함을 강조하기 위해 잊혀졌던 아이 메이크업이 올해의 메이크업 트렌드로 떠올랐다. 화장품 브랜드 맥의 김혜림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올해는 눈에 여러 가지 컬러를 화려하게 바르는 ‘빅 아이’(big eye)가 대세”라며 “가볍게 음영만 주던 아이 메이크업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예컨대 눈두덩이는 물론 눈썹 너머까지 넓게 금빛 아이섀도를 칠하거나 아이홀(눈썹 뼈 바로 밑의 들어간 부분)을 여러 색으로 어둡게 칠해 강조하는 식이다. 아이섀도의 귀환으로 과거엔 기피되기 일쑤였던 글리터(반짝이) 아이섀도가 이제는 인기 상품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맥의 인기 글리터 섀도인 ‘대즐 아이 섀도’는 최근 매장에서 제품을 구할 수 없는 귀한 제품이 됐다.
옷과 화장에 따라 헤어 스타일도 복고로 변하는 건 당연지사. 70년대 히피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잔물결 웨이브의 히피 펌, 헤어롤을 말아 앞머리에 한껏 힘을 주는 '컬리뱅 스타일'이 다시 유행 중이다. 또 80년대 가수 신디 로퍼가 했던 염색처럼 부위 별로 다른 색을 물들이기도 한다. 남자들의 경우 '울프컷'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뒷머리만 길게 기른 이 스타일은 80년대 ‘맥가이버(미국 드라마 주인공) 머리’ ‘김병지(축구선수) 머리’라 불리며 유행했는데, 최근엔 가수 지드래곤이 재현하며 화제가 됐다.
올해 나타난 80년대 복고는 그 시대보다 훨씬 화려하고 커진, 과장된 형태로 변신했다. ① 구찌의 올 가을 광고 이미지. 장식이 가득 달린 재킷과 원피스를 입은 모델들을 내세웠다. ② 눈두덩 가득 반짝이는 글리터 아이섀도를 칠한 르 코펜의 모델. ③ 80년대 스타일로 뒷머리만 기른 가수 지드래곤.

올해 나타난 80년대 복고는 그 시대보다 훨씬 화려하고 커진, 과장된 형태로 변신했다. ① 구찌의 올 가을 광고 이미지. 장식이 가득 달린 재킷과 원피스를 입은 모델들을 내세웠다. ② 눈두덩 가득 반짝이는 글리터 아이섀도를 칠한 르 코펜의 모델. ③ 80년대 스타일로 뒷머리만 기른 가수 지드래곤.

 
80년대 보다 더 커지고 뒤틀어진, 과장된 모습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패션에서도 통한다. 1년에 두 번씩 새로운 옷을 선보여야 하는 디자이너에겐 끊임없이 ‘영감’이 필요하다. 영화나 예술, 사회 현상 등 여러 가지에서 영감을 받지만 과거 트렌드가 모티브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민주킴’의 김민주 디자이너도 마찬가지. 그는 지금껏 컬렉션을 준비할 때마다 발렌시아가의 창립자인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1895~1972)의 옷을 보며 영감을 받는다. “요즘 패션계에는 과거의 것을 모던하게 풀어낸다는 게 숙제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특히 패션은 아마 한번 보여졌던 것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더 새로워 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80년대 디스코풍 패션을 보여준 모델들. 위로부터 생로랑·겐조·구찌.

 80년대 디스코풍 패션을 보여준 모델들. 위로부터 생로랑·겐조·구찌.

돌체앤가바나

돌체앤가바나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아무리 복고가 반복되는 트렌드라 해도 올해는 그 정도가 남다르다는 사실이다. ‘이걸 진짜 입으라고?’라는 의문이 들 만큼 컬렉션마다 과장의 경쟁이라서다. 발렌시아가 대표적이다. 베트멍의 수장이었던 뎀나 즈바살리아 디렉터는 2017 봄·여름 컬렉션에서 모델 어깨의 두 배쯤 되는 크기의 과장된 어깨의 코트와 재킷을 남성복, 여성복 컬렉션 모두에서 대거 선보였다. 가을 컬렉션에선 그보다 어깨가 줄어들긴 했지만 이번엔 큼직한 재킷, 코트의 한쪽 섶을 반대쪽 어깨까지 끌어올려 입는 해체주의적인 스타일링에 도전했다.
커다랗게 부풀린 소매를 보여준 샤넬

커다랗게 부풀린 소매를 보여준 샤넬

샤넬은 또 어떤가. 2017 가을 컬렉션에서 보여준 어깨부터 손목 끝까지 동그랗게 부풀린 소매는 마치 솜을 가득 넣은 봉제 인형의 팔처럼 보인다. 돌체앤가바나가 선보인 거대한 퍼프 소매 역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구찌는 장식으로 승부를 봤다. 가을 컬렉션으로 내놓은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은 옷 전체에 구슬과 보석, 반짝이를 단 재킷과 원피스를 입었다. 유럽 왕실의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옷 하나 가득 붙어있는 모습이 화려하고 아름답긴 하지만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옷도 옷이지만 입는 방식은 더 별나다. 지금까지 공식처럼 여겨져 온 스타일링의 틀을 다 깬다. 상의를 바지 속에 밀어 넣어 입는 배바지는 흔한 스타일이다. 흘러내릴 정도로 큼직한 정장 재킷 허리에 잘록하게 벨트를 맨다든지, 코트·재킷 등 큼직한 옷 여러 개를 겹겹이 겹쳐 입는다. 최근 패션계를 주도하는 발렌시아가와 구찌는 올 가을 컬렉션에서는 한 번에 가방 두 세 개를 든 모델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구찌·발렌시아가 쇼에서 한번에 여러 개의 가방을 든 모델들.

구찌·발렌시아가 쇼에서 한번에 여러 개의 가방을 든 모델들.

 
미니멀리즘 반격, 스트리트 패션 영향도
그런데 궁금하다. 대체 왜 지금, 이렇게까지 디자이너들은 극단적 과장을 자처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공통적 의견이 있다. 한동안 지속된 미니멀리즘 트렌드에 대한 반격이라는 것이다. 간호섭 홍익대 교수(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는 “오랫동안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아온 패션계가 새로운 것을 찾아 정반대에 있는 화려하고 과장된 형태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과거 장식적 요소가 많았던 70~80년대 패션을 소재로 삼게 됐다는 이야기다. 패션전문 홍보사 비주크리에이티브의 설수영 이사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그는 “한 가지 트렌드가 한참 유행하면 그 다음엔 그와 완전히 상반된 무드가 유행된다”며 “캐주얼한 미니멀리즘, 스포티즘, 스트리트 패션에 질린 사람들이 잘 차려 입는 것, 장식적인 것, 화려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과장된 복고 패션의 형태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롱부츠를 신은 발렌시아가의 남성복 모델.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롱부츠를 신은 발렌시아가의 남성복 모델.

 
최신 트렌드에 복고가 더해진 '시너지'라는 의견도 있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올해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인 ‘오버 사이즈’와 남성, 여성을 나누지 않는 ‘젠더리스’ 룩이 70~80년대 복고에 버무려져 더 과장된 형태가 됐다"고 설명한다. 80년대의 ‘파워 슈트’(어깨를 강조한 옷)나 디스코 룩에서 옷의 요소들을 빌어왔지만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보다 더 크고, 더 길고, 더 화려해졌다는 얘기다. 과거에서 가져온 것은 소재와 아이템, 컬러 등의 요소일뿐이고 그 모습을 해체하고 뒤틀어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발렌시아가가 올해 봄 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파워 숄더 코트.

발렌시아가가 올해 봄 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파워 숄더 코트.

스타일링 관점에서 하나 더 보태자면 최근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는 스트리트 패션의 영향도 있었다. 커스텀멜로우의 손형오 디자인 실장은 "스트리트 패션을 하이패션의 세계로 끌어 올린 베트멍·발렌시아가가 인기를 얻으며 다른 패션 하우스들 또한 이를 받아들였다"며 " "복고패션을 과거의 입는 법대로 입기보다, 큼직한 상의를 여러 개 겹쳐 입거나 슈트를 격식에 맞춘 스타일 대신 헐렁하고 자유롭게 입는 등 스트리트 스타일로 풀어낸다”고 말했다. 오버사이즈, 화려한 여러 컬러의 조합, 겹쳐 입기 등 복고 패션을 스트리트 패션의 착장법으로 풀어내다보니 더 과장된 형태로 나타나게 됐다는 의미다.
아버지 양복을 입은 것 처럼 큼직한 재킷을 걸친 모델. 드리스 반 노튼.

아버지 양복을 입은 것 처럼 큼직한 재킷을 걸친 모델. 드리스 반 노튼.

어쨌거나 이 시점에서 대중에게 중요한 건 이런 과장의 복고가 과연 길거리에도 등장할 것인가다. 패션잡지 아레나의 성범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현실에선 어렵다”고 딱 잘라 말한다. 복고라는 이름, 그리고 요즘 각광 받는 브랜드에서 보여졌기 때문에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패션쇼 밖의 일반인이 소화하긴 힘든 스타일이란 얘기다. 그는 "이런 과장된 형태와 스타일링의 옷을 입으려면 상당한 경지에 이른 스타일 고수여야 가능할 것"이라며 "쇼에서 보여지는 건 영감을 주는 '꿈' 같은 옷으로 여기서 어느 한 부분만을 차용해 최소화시킨 것이 리얼웨이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한없이 낯설다 결국은 따라하게 되는 게 유행의 속성이기도 하다. 이것이 과장된 복고를 올해의 패션 키워드 이상으로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바지 위로 양말을 올려 신는 스타일링을 선보인 구찌.

바지 위로 양말을 올려 신는 스타일링을 선보인 구찌.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