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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 72주기…한국인 피해자 “어제처럼 기억 생생”

어릴 적 일본 히로시마에 살다가 원폭 피해를 당한 조옥이(80ㆍ여)씨. 하준호 기자

어릴 적 일본 히로시마에 살다가 원폭 피해를 당한 조옥이(80ㆍ여)씨. 하준호 기자

조옥이(80ㆍ여)씨는 72년 전의 ‘그날’을 어제처럼 기억했다. 당시 일본 히로시마의 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다니던 조씨는 그날 아침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월요일 아침의 하늘은 유난히 화창했다. 워낙 공습경보가 자주 울리던 시기였기에 대피하지는 않았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자 사이렌 소리가 잦아들었다. 조씨네 식구가 아침을 먹으려 식탁에 모여든 그때였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벽걸이 시계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지진이 난 것처럼 집 전체가 흔들렸고, 창밖에선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 피어올랐다.
 
원폭 피해자 조옥이(80ㆍ여)씨가 5살 무렵 일본 히로시마에서 찍은 가족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씨의 어머니고, 그 위가 조씨의 아버지다. 어머니에게 안겨 있는 아이가 조씨다. [조옥이씨 제공]

원폭 피해자 조옥이(80ㆍ여)씨가 5살 무렵 일본 히로시마에서 찍은 가족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가 조씨의 어머니고, 그 위가 조씨의 아버지다. 어머니에게 안겨 있는 아이가 조씨다. [조옥이씨 제공]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쳤어. 태풍이 온 것처럼 바람이 몰아치더니 갑자기 한밤중처럼 사방이 어두컴컴해졌어. 쥐고 있던 숟가락을 놓을 생각도 못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들을 따라 방공호까지 기어갔지.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였어. 하늘에는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다녔는데, 그중 2개가 마을 근처 바닷가에 떨어졌어.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더라고.”
 
바깥에서 셔츠를 풀어헤치고 더위를 식히던 5촌 당숙은 폭발열과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돼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후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일찍 떴다. 이후 태어난 당숙의 아이들은 모두 정신 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조씨는 실내에 있어 큰 화를 면했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그날 이후로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 불안 장애를 달고 살다 보니 심근경색이 와서 일본에 건너가 치료도 받았어. 20여 년 전부터는 대상포진이 왔는데, 치료해도 소용이 없더라고. 지금은 신경통을 달고 살아.”
 
히로시마 폭격 당시 원폭 구름의 모습. [중앙포토]

히로시마 폭격 당시 원폭 구름의 모습. [중앙포토]

미군의 B-29 폭격기가 세계 최초의 핵무기인 ‘리틀보이’를 히로시마 상공에서 떨어뜨린 건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5년 8월 6일이다. 폭발로 생긴 구름은 16㎞ 상공까지 솟아올랐고, 반경 1.6㎞ 내 모든 곳이 초토화됐다. 히로시마에 살던 한국인 2만여 명이 사망했다. 3일 후에 투하된 나가사키 원폭에 의한 피해자까지 합하면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총 5만 여명에 이른다. 올 7월 현재 2358명의 원폭 피해자가 생존해있다.
 
6일 오전 경남 합천군 합천원폭자료관에서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전 경남 합천군 합천원폭자료관에서 개관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히로시마 원폭 72주기인 6일 경남 합천에 ‘합천원폭자료관’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원폭 피해자 자료관으로, 피해자들의 진술 자료 등을 모았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원폭 피해자의 25% 정도가 합천에서 살고 있어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린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는 제72주기 원폭 희생자 추모제가 열려 숨진 원폭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지난 5일 히로시마 현지에서도 한국인 원폭 희생자에 대한 위령제가 열렸다. 위령제에 참석한 서장은 주히로시마 총영사는 “(원폭 피해자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고 우리를 위협하는 핵무기의 공포에 맞서 싸울 것이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원폭 피해 생존자들의 건강검진을 지원하고 진료비ㆍ진료보조비ㆍ원호수당(원폭 피해 보상금) 등을 지급한다. 피해자가 숨질 경우 유족에게 장례비도 지원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로 신고되지 않았던 이들의 추가 접수도 받고 있다. 폭발 당시 2㎞ 지역 안에 있던 사람과 태아 등이 대상이다. 지난해 통과된 ‘한국인 원자폭탄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5월 30일부터 시행돼 피해자들의 연령과 형편 등에 대한 실태조사와 의료지원의 법적 근거도 마련됐다.
 
2차대전 당시 강제연행 등으로 일본에 끌려와 히로시마(廣島) 원폭 투하로 희생된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제가 5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72년을 하루 앞두고 평화기념공원내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서장은 총영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주히로시마 총영사관 제공=연합뉴스]

2차대전 당시 강제연행 등으로 일본에 끌려와 히로시마(廣島) 원폭 투하로 희생된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제가 5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히로시마 원폭투하 72년을 하루 앞두고 평화기념공원내 한국인원폭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열린 위령제에서 서장은 총영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주히로시마 총영사관 제공=연합뉴스]

지난 2002년 일본에서 원호법이 개정됨에 따라 길게는 수십 년간 원호수당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도 소급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씨도 매달 30만원 안팎의 원호수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를 상대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데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조씨 역시 당시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히로시마를 다녀왔다고 한다. 강휘우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은 “앞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피해자를 위해 관계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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